의도는 단 하나였어요,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요
분명 5분 전까지만 해도 멀쩡한 만 원이었다. 막내 응가를 치우고 와서 보니, 만 원짜리가 두 동강이 나 있는 것이다!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갑자기 부글부글부글부글거린다. 빠른 속도로 끓어오르더니, 넘치는 순간 내 목에서 사람 아닌 금수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그 목소리가 담은 의미는, 첫째 딸 이름이다.
"너 이리 와! 이거 무슨 짓을 한 거야!"
갑자기 괴물이 된 엄마 때문에 다섯 살 둘째와 세 살 막내도 온갖 눈치를 다 끌어모아 상황을 살핀다. 이럴 땐 조심해야 하는 거다. 희생양은 큰언니다. 첫째는 울고 싶지만 꾹 참는 특유의 표정으로 내 앞에 섰다.
그냥 만 원이 아니다. 이 번주에 있는 6번째 생일을 맞이해 할머니가 준 돈이었다. 첫째는 만 원을 들고 몇 번이나 물었다. 엄마 이거로 솜사탕 살 수 있어요? 지우개 살 수 있어요? 체리 공부책 얼마나 살 수 있어요? 스스럼없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솜사탕 30개 살 수 있지, 지우개 30개 넘게 살 수 있어(아이에게 30보다 큰 숫자는 아직 없다), 체리 공부책은.. 우리 같이 마트에 가서 체리 공부책 얼마나 살 수 있는지 볼까? 라며 아이 안에 부풀어진 희망에 더 바람을 채워 넣은 엄마였다. 그랬던 엄마가 지금은 괴물이 되어 불러 세운 것이다.
너무나도 괘씸했다.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화나고 실망스러웠다. 돈을 가위로 자르다니, 그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식탁 위에 올려 두다니.
"너 돈이 어떤 건지 몰라? ㅇㅇ이가 지금까지 먹고 자고 드레스 사고 할머니 집에 가고 하는 게 다 돈으로 하는 거야. 이 카드 보이지? 이 카드 안에 돈이 들어 있는 거야. 이 돈으로 ㅇㅇ이 아이스크림 먹고 티브이도 보고 이 집에서 사는 거라고. 그걸 몰라서 돈을 이렇게 잘라? 가위 가지고 와!"
아이는 가위를 좋아했다. 가위를 쥐고 자기가 좋아하는 하트도 오리고 패티 옷도 만들어 주고 신발도 만들어 줬다. 가위가 있으면 못할 것이 없었다. 그 가위로 만 원짜리를 잘랐다.
"돈 자르는 가위 같은 거 필요 없어. 엄마 버릴 거야!"
아이가 보는 앞에서 보란 듯이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쓰레기통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이의 보물을 먹어 치우곤 무심하게 서 있었다. 눈물을 참던 아이는 결국 가위의 비극 앞에서 무너졌다.
"엄마 그게 아니고 파마 할머니가 돈 자르라고 했어요."
이게 이제 하다 하다 할머니를 핑계 삼아? 더 화가 났다. 말도 안 된다. 친정엄마랑 통화하는 걸 잘 듣지 못했지만, 할머니가 그렇게 말할 리가 없다. 할머니가 돈을 자르라고 했다니, 이 무슨 가당치도 않은 말인가.
"엄마한테 거짓말까지 해? 너 오늘 집 밖에서 자 볼래?"
아이에게 할 말 안 할 말 다 쏟아 냈다. 더 이상 엄마의 감정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
엄마의 감정이 남아있는 게 이상한 하루였다. 시댁에서 1박 2일 있다가 집에 왔다. 토요일 밤 거의 밤을 새웠다. 한의원을 다녀와도 어깨와 목 근육 통증이 가시지를 않았다. 둘째와 셋째는 할머니 집만 가면 엄마 옆에서 잔다. 두 아이 모두 자는 내내 360도 회전을 평균 다섯 차례를 하며 돌아다닌다. 엄마 배 위에서 자다가 가랑이 사이에서 자다가 허벅지를 베고 잔다. 하루 종일 피곤하고 졸렸지만, 시댁에서는 어쩐지 늦잠도 낮잠도 금기시된다. 커피 카페인도 아무 소용이 없다. 정신력으로 버티고 75킬로를 달려 집으로 왔다. 도착해서는 짐을 정리하고 아이들 빨래를 돌리고 발 디딜 곳 없는 집을 청소하다가, 아차 일요일이지, 하며 황급히 분리수거를 다녀왔다. 마무리 짓지 못한 청소를 대충 끝내고 아이들 밥을 차려 줬다. 냉동실 볶음밥 키트를 뜯었다. 막내가 다가와 바지를 잡아 끈다. 역시나 응가다. 치우고 와서 밥을 차려 주고, 막내를 먹이기 시작한다. 다 먹은 막내가 여기저기 사고 치러 다니는 것을 보며, 동네 앞산만큼 쌓인 빨래를 개고 있었다. 아이들이 다 먹은 걸 보고 욕조에 물을 받으며 아이들 옷을 벗겨, 양치기가 양을 몰듯 훠어이 아이들을 욕조에 집어넣었다. 라면을 급히 끓여 먹고 설거지를 했다. 아이들을 씻겨 내오고 옷을 입힌다. 다 개지 못한 빨래를 막내가 온 집에 질질 끌고 다닌다. 그래, 엄마가 잘못했지,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다른 일 한 엄마가 잘못했어. 아이들 어린이집 식판과 낮잠이불을 정리해 놓고, 감기약을 먹인다. 막내가 또 응가를 했다. 씻기고 오니, 만원이 두 동강이 나 있었던 것이다.
종일, 힘들었다. 어디 말할 데도 없다. 주말부부 하며 애셋을 혼자 키우는 엄마들은 다 이렇게 힘들다. 나도 알고 있다. 그래서 어디 말할 수도 없다. 말해 봤자 돌아오는 뻔한 대답들은 너무나도 뻔해서 말하기가 싫을 정도이다. 다들 그만큼 힘들어, 애 키우는 게 원래 힘들지, 군인가족들은 다들 그러고 살아, 그러게 왜 셋을 낳았어.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힘들다고 말 안 하며 지냈다. 어쭙잖은 위로를 기대하느니 실망이 커서 그냥 드러내지 않고 산 지 꽤 되었다. 그래, 나도 알아, 다들 이 정도는 힘들어. 너무 힘들고 졸린데, 집에 오는 차에서 숙면을 한 녀석들은 기운이 펄펄 넘쳐 도저히 잘 생각이 없었다.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두 동강 난 만 원 권 지폐 한 장이 결국 나의 모성을 두 동강 내버린 것이다.
"엄마 오늘 너희랑 안 자. 너네끼리 자!"
소리를 버럭 지르고 불을 끄니 어둠 속에서 첫째의 울음이 확대되었다.
"진짜예요. 진짜 파마 할머니가 돈 자르라고 한 거라고요."
친정엄마에게 전화했다.
"엄마, 진짜 엄마가 자르라고 한 거야?"
"아니. 다음에 할머니, 할아버지 보면 자기 만 원 준다고 하기에 '그럼 돈을 잘라서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하면 되겠네'라고 말해 준 거야. ㅇㅇ아, 할머니가 잘못했어. 미안해. 할머니가 미안해."
막내를 재우는 내내 눈물이 그치지를 않았다. 몸과 마음이 지치니 별별 것에 짜증이 넘친다. 그깟 만 원, 은행에 가면 해결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이를 다그치고 몰아세웠다. 엄마로서 바닥이다. 아이의 속사정 따위 묻지도 않고 내 속의 모든 짜증을 아이에게 뒤집어 씌웠다. 엄마가 이만큼이나 힘든데, 라며 내 속사정만을 앞세웠다.
막내가 잠들고 나서 아이 옆으로 가 누웠다. ㅇㅇ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몰랐어. 파마 할머니 이야기 들으니 ㅇㅇ이가 잘못한 게 아니야. 미안해, 엄마가 앞으로는 ㅇㅇ이 말 잘 들어볼게. 첫째 딸은 늘 나보다 한 마음 앞서 있다.
"엄마 화나게 해서 미안해요. 그리고 엄마 용서해 줄게요."
다행이다. 금방 용서받을 수 있었다. 아이의 너그러운 마음은 매번 배우려 해도, 내 속이 좁아서 아이는 늘 나보다 먼저 용서해 준다. 이번에도 아이가 먼저 용서해 주었다. 엄마, 그만 울고 싶은데 눈물이 자꾸 나요. 그리고 숨이 꺼꺼 이렇게 쉬어져요, 라며 눈물을 훔친다. 눈물이 그만날 때까지 그냥 울어도 돼, 그리고 숨이 꺼꺼 쉬어지면 그냥 그렇게 숨 쉬어.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더 울어도 돼. 참지 말고 그냥 울어. 말해 주면서 나 역시 아이 옆에서,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숨기지 않고 그렇게 눈물이 나게 두었다. 그깟 만원이 뭐라고, 7살 딸과 엄마 나이 7살 엄마가 같이 안고 울며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이라 은행 대기가 꽤 길었다. 다른 이들의 손에는 카드나 통장이 들려 있었는데, 내 손에는 두 동강 만 원이 들려 있었다.
"아이가 가위로 자른 건데, 교환 가능할까요."
돈을 받아 들면서 은행 직원은 빙긋이 웃는다.
"그럼요. 훼손이 심각하지 않아서 교환해 드릴 수 있어요. 아이가 그랬다니, 저도 아이 키우는 엄마라서 해 드릴게요. 원래 가위로 자르는 건 교환이 안 되거든요. 의도가 있어서 훼손하는 건 교환할 수 없어요. 그런데, 아이가 의도가 있나요. 아이들은 생각 없이 그러잖아요."
우리 아이에게는 의도가 있었다. 완벽한 의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기쁜 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표현.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의도가 있을까.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기뻐하는 모습을 그리며, 행복한 마음으로 가위로 돈을 자른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의도를 품고서.
직원은 테이프로 돈을 붙이더니, 이내 신 권 한 장을 주었다. 아이에게 보여 주고 싶다고 하자, 테이프로 붙인 돈을 건네주었다.
그제야 두 동강 난 모정(母情)도 하나로 붙는 기분이 들었다. 새로 받아 쥔 신권처럼, 마음도 산뜻해졌다. 이렇게나 아무렇지도 않게 해결될 일을, 오히려 새롭게 태어날 일을 두고 아이의 마음에 상흔을 남겼다. 한없이 부족하고 모자란 엄마이다. 아이에게 감정적으로 대하지 말자, 라는 말을 책이나 티브이로 이틀에 한 번씩 보고 듣지만, 이럴 때는 남의 일이 되고야 만다. 아이에게 대하는 부정적 감정은 늘 더 큰 감정이 되어 나를 뒤집어쓴다는 사실을 새기며, 은행 문을 열고 나왔다.
아이의 하원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어제와는 다른 엄마가 되어, 아이의 손을 잡고 마트를 가야겠다. 빳빳해진 만 원을 들고 더 새로워진 마음을 붙잡고 솜사탕과 지우개와 체리 공부책을 사 줘야겠다. 만 원은, 그것이 지닌 가치보다 훨씬 더 크게 아이의 행복으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