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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y 26. 2021

Connecting the dots

내 과거의 모든 연관성에 대해

  기자의 꿈을 접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문을 외우는 것이었다. 영어 공부를 진하게 해보고 싶었다. 동시에 인생 공부도, 아니 인생 공부는 더 진하게 처음부터 해야 했다. 20대 중반, 오래 준비해 온 꿈을 갑자기 놓아버린 나에게 스티브 잡스 연설은, 새로운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장래 희망란에 ‘기자’를 적었다. 최종 꿈은 ‘상해특파원’이었다. 특파원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자가 되어야 했다. ‘상해’ 특파원이 되기 위해 중국어를 전공하고, 차례로 신문방송과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지역신문 대학생 기자, 중국 전문 잡지 인턴 기자를 경험하고, 오랫동안 기자 스터디를 이끌었다. 모두 나를 ‘김기자’로 불렀다. 언제, 어느 신문사로 입사할지가 문제였지, 기자가 되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다. 기자가 되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은 피했다. 앞만 보고 치열하게 준비하고 꿈꿨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 따위 없었다.

  그랬던 내가 갑자기 꿈을 접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는 아니었다. 사회를 향한 시선이 깊어질수록, 인간 본성과 내면에 대한 의문도 깊어졌다.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내가 기자가 된다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권태로운 기자 선배의 모습에서, 기자가 되고 특파원이 되고 난 후 밀려올 공허함에 대해서도 두려웠다. 평생을 그리던 꿈이 이루어지면 그 후의 삶은 어찌 되어야 하는지 미리 막막해졌다. 막막함이 갈수록 먹먹해지는데 답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답답함에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종교 철학을 공부해 보길 권했다. 20대 중반, 벌어먹고살 것을 고민해야 했으나 어쩐지 그런 것은 당장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결국 인간의 마음을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의 심성을 공부하고, 내 마음의 뿌리를 단단히 다져보고 싶었다. 돈을 버는 것은 하찮게 느껴졌다. 당장 월급 200만 원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월급을 받기 시작하면, 나는 인생의 파도에서 휩쓸리다 어느새 파도에 먹혀버릴 것만 같았다.

  사회에 나가기 전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는 연습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내 발아래 뿌리를 내리고 단단히 밟아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기자의 꿈을 버리자, 방향키가 사라진 나의 세상은 갑자기 넓어졌다. 작은 설렘과 거대한 불안이 공존하는 곳으로 나아가야 했다. 황량한 사막처럼 느껴졌지만, 나는 그 사막의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최초의 방랑자가 된 것만 같았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이 되는, 낯설고 아름다운 여정이 눈 앞에 놓여 있었다. 그 지점에서 나는 ‘stay hungry, stay foolish’를 중얼거렸고, ‘생의 모든 점을 연결하라’는 문장을 주문처럼 외웠다.


  생각지도 않았던 호프집 아르바이트와 편의점 밤샘 아르바이트를 했다. 돈을 버는 어려움을 몸으로 배웠다. 난생처음 연애를 하고 이별을 하며 수많은 밤을 울며 지새웠다. 종교 철학을 공부하다 우연히 장학생으로 대만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한국어 선생님을 경험하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중국어를 가르치며 대만 정부 지원으로 국제 정치 석사를 공부할 수 있었다. 석사 동기가 맺어준 인연으로 결혼을 하고, 한국어 선생님이라는 꿈을 위해 자격증도 따고 한국어학당에서 경험도 쌓았다. 지금은 엄마 나이 7살이 되어, 매일 세 딸에게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다.


     

  기자가 되었다면, 지금쯤 아마도 ‘상해특파원’이 되었을 것이다. 나의 인생은 ‘열심히 준비하여 기자가 되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한 문장으로 정리되었을 것이다. 기자의 꿈을 접은 덕분에, 그때부터 나는 여러 장소에서 다양한 의미의 ‘점’을 찍을 수 있었다. 그 경험을 하던 당시에는, 그 일들이 전혀 연관 없어 보였기에 ‘이것들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의 인생에 도움이 될까’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나는 왜 이리 무모한 짓들을 하고 있는 걸까, 이 모든 것에서 과연 의미를 찾는 날이 오기는 할까, 라는 생각들로 불안한 날들이 어둠 속에서 쌓여 갔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나를 믿어야만 했다. 그런 날이 오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쓸모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세뇌해야 했다. 자꾸 스티브 잡스를 불러들였다.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이 문장만이 먹먹한 불안 속에서 유일하게 선명해졌다. 지금의 나는 너무나도 젊기에 'look forward'에 충실하기로 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look backward' 했을 때 점들이 이어져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금은, 돌아보면 내 삶의 발자국이 조금은 남겨져 있는 인생의 지점인 것 같다. 결국 모든 지점의 경험은 유의미했고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줬다. 다양한 경험은 인생을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여러 경로의 삶의 모습, 다른 층위와 다른 각도의 삶에 대해 아이들에게 조금은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무엇보다, 모든 경험이 지금의 나의 글쓰기에 소중한 ‘재료’가 되고 있다. 결국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수많은 경로를 거쳐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다양한 주제를 담을 수 있는 글을 위한 소재들이, 내 안에 쌓인 경험에서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들이 빛이 날 수 있게 빚을 손을 갖지 못한 것이 다만 애석할 뿐이다.

  글을 쓸 때마다 20대 중반 꿈을 접고 흔들리던 나의 시절에 감사하게 된다. 이 모든 연관성에 대해, 지금도 이어지 있는 내 인생의 수많은 점들에 대해, connecting the dots.     





대문사진 출처: 유튜브 'Fearless Soul' 썸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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