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Jun 04. 2021

엎어진 모둠회가 가르쳐 주었다

잘못이 잘못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스페셜 특A 모둠회 한가운데에 뿌려진 금가루는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태어나서 금가루를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이렇게나 멋진 음식을 서빙하는 내가 자랑스럽게 여겨질 정도였다. 이 멋진 음식을 받아 든 방 안의 손님들의 표정이 기대가 되었다.     

  방의 문을 열기만 하면 되었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분명 자신이 있었다. 이렇게 멋진 음식을 바닥에 내려놓는 것은 음식과 손님 모두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한 손으로 거대한 접시의 가운데에 균형을 잘 잡아 받치고 한 손으로는 천천히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 순간,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어어’ 소리가 나왔다. 한 손으로 감당하기에 스페셜 특A 모둠회는 너무나도 무거웠다. 균형을 잃은 접시는 기우뚱하더니 이내 바닥으로 향했다. 금가루 얹은 모둠회의 절반은 순백의 무채와 함께 범벅이 되었다. 금가루도 무채 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을 3초만 되돌리고 싶었다. 15만 원짜리 모둠회가 엉망이 되는 데는 3초면 충분했다.       

  방문이 반쯤 열려 있었기 때문에 손님들도 모둠회의 마지막 운명을 목격할 수 있었다. 칠순 잔치 주인공의 며느리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어떻게 해’ 한마디 하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계란찜을 퍼먹었다. 할머니는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와 바닥의 접시를 번갈아 가며 보았다. 큰엄마에게 졸라서 겨우 얻어낸 나의 첫 서빙은 그렇게 완벽하게 실패했다. 어쩔 줄 몰라하며 서 있는 나를 본 친척 언니는 뛰어와 연신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며 빠른 손놀림으로 바닥의 무채와 모둠회를 쓸어 담았다. 

  개업한 지 얼마 안 된 대형 횟집 사장님이 된 큰엄마는 나를 황급히 주방으로 끌어들였다.      

  “너 이제 다시는 서빙하지 마.”      

  한마디만 하고는 주방장에게 서비스 많이 챙기라고 했다. 나를 노려보던 주방장은 나가서 담배를 한 대 피웠다.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말을 하면서 주방장은 수족관 안으로 그물을 집어넣었다. 회를 뜨는 내내 쌍시옷으로 시작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주방장 손의 광어보다 내가 더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때부터 나는 주방 한구석에서 수저만 닦았다. 설거지하던 친척 오빠가 다가와 ‘괜찮아’라고 말해 주었지만, 그 말 한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그 후로, 바쁠 때 가끔 홀에 나가 상 치우는 것을 도울 수는 있었지만 서빙은 허락되지 않았다.



           




  잘해보고 싶은 마음, 자신감 넘치는 마음이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 나는 안전하게 접시를 바닥에 내려두고 두 손으로 문을 열고 음식을 상 위에 놓았어야 했다. 쓸데없는 자신감과 가벼운 행동이 모두에게 피해를 입혔다. 15살 그날의 사건은, 사춘기 시절의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동안 자진해서 무언가를 할 수 없었다. 나서서 일을 했다가 그르칠까 봐 두려웠다. 식당을 갈 때마다 종업원들의 손만 바라봤다. 큰 접시를 볼 때마다 그날의 손님들과 주방장과 큰엄마의 얼굴이 떠올랐다. 가끔 종업원들이 실수하는 것을 볼 때면 여지없이 금가루 올린 모둠회의 최후가 생각났다.          


  10년이 지난 여름,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기억 속의 사람들에게 붙잡혀 살 수는 없었다. 모든 음식과 그릇은 반드시 두 손으로 날랐다. 엎질러진 그릇이 떠오를 때면 괜스레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두 달의 아르바이트 내내 단 한 번도 실수는 없었다.

      

  “너처럼 진중하게 일을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사장님이 해준 말이었다. 10년 전의 잘못이 내 안에서 만회되는 순간이었다. 그날의 잘못이 나를 진중한 사람으로 만들어 줬다. 시급을 더 줄 테니 학기 중에도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장님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으며 홀 매니저로 한동안 더 일했다.     

  누구든 잘못된 결정과 행동을 할 수 있다. 다행히 모든 잘못에는 교훈이 있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일을 그르친 것에서 배우고 그것을 발판 삼아 더 나아가면 되는 일이다. 잘못한 것에 대한 상처에만 골몰해 있다가 그것이 주는 교훈과 만회의 기회를 놓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잘못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Connecting the dot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