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Oct 27. 2021

마음이 큰 사람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너른 들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보리밭 같았다. 바람이 불자 물결을 가장한 초록이 넘실댔다. 나는 혼자 서서 넘실대는 들판을 보고 있었다. 안온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갑자기 어디선가 솔잎이 바람에 실려 왔다. 소나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눈물이 떨어졌다. 쓸쓸함, 고독함, 외로움, 이러한 단어가 그나마 비슷한 감정인 것 같았다. 눈물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어디선가 밝은 빛이 흘러나왔다. 내 안에서였다. 내 가슴에서 새어 나온 밝은 빛은 햇살이었다. 내가 품은 햇살,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어느새 주위는 어두워졌다. 넘실대는 초록은 온데간데없고 어둠과 침묵만 내 곁을 지켰다. 나는 내 가슴 안의 햇살을 살며시 손에 담아 주위를 밝혔다. 주위가 밝아졌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들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따뜻하고 밝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때, 눈을 떴다.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내가 무언가가 된 듯한 생각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은 며칠 동안 이어졌다. 어느 날 티브이에서 그 노래를 듣고 나서야 나는 내 꿈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그 노래의 가사가 그대로 꿈에 펼쳐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꿈을 꾸기 며칠 전, 그 노래를 처음 들었다. 후렴구의 끝날 듯이 계속 이어지는 ‘라라 라라라라라 우리들의 사랑으로’라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그러고는 더 들을 일이 없었는데, 그 노래 가사가 내 꿈을 찾아온 것이다. 내가 여덟 살 때의 일이었다.

  “아빠, 나 이상한 꿈을 꿨어.”

  내 이야기를 다 들은 아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땅을 보던 아빠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고 말했다.

  “너는 크게 될 거야. 이 세상에서 유명해지며 크게 된다기보다, 마음이 큰 사람이 될 거야. 그 노래 가사는 그냥 일반 가요가 아니야. 큰 사랑을 노래한 거다. 그걸 한 번 듣고 꿈으로 나타내는 거,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여덟 살 여자아이에게 사랑은, 그저 잘생긴 남자아이를 좋아하는 거였다. 손을 내밀었는데 밝아지고 사람들이 옆에 있고, 이게 도대체 무슨 사랑이라는 건지. 꿈도 아빠의 말도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가사도 꿈도 다 이상했다. 마음이 큰 건 뭐고, 큰 사랑이라는 건 또 뭐지.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서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학창 시절, 그 노래를 가끔 들을 때가 있었다. 대부분 수련회에서 밤에 동그랗게 앉아 촛불을 들고 그 노래를 듣고 불렀다. 정말 서로가 서로에게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주는’ 분위기였다. 그럴 때는 그 노래의 주인이 나라고 옆 친구에게 조용히 말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후에도 몇 번 그 노래를 들을 기회가 있었고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꿈 생각도 났지만, 큰 감흥이 없었다. 아빠가 해준 말도 떠올랐다. 여전히 노래도 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내가 큰 사람이라는 아빠의 말은 갈수록 거리감이 들었다. 그저 당신의 딸을 특별하게 여기고 싶은 아빠의 소망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30대의 험난한 시간을 거쳐 오면서, 나는 의식적으로 그 노래와 꿈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사회와 현실과 육아에 치이며 내가 작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때마다, ‘큰 사랑을 품은 큰 사람’이라는 아빠의 말을 여덟 살 그날에서 끄집어냈다. 노래의 가사와 아빠의 해몽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작고 좁은 사람이었다.




  요즈음은 어렴풋하게 그 노래의 의미와 아빠가 한 말의 뜻을 알 듯도 하다.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쓸 때마다, 온 우주를 떠돌아다닌다. 비록 공간은 한 평도 안 되는 식탁이지만, 마음의 공간에서는 못 가는 곳이 없고 쓰지 못할 것이 없다. 내 과거를 헤집으며 용서를 구하고 차마 꺼내지 못했던 사랑을 풀어놓는다. 역사와 철학과 종교의 영역을 서성이다가 문득 ‘인류애’ 앞에 서게 된다. 너무 거창한가 싶어 피식하게 되지만, '작은 노트북 앞에서 인류애와 거창함을 들먹일 수 있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하며 내 안의 우주를 계속 팽창시키고야 마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떠올리게 된다, 내 꿈의 형태로 왔던 그 진리를.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세 아이를 키우며 글을 쓰는 삶이 내 마음의 가장자리를 넓혀주고 있다. 아빠가 맞았다. 나는 매일 마음이 큰 사람이 되고 있다.





사진 출처: 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엎어진 모둠회가 가르쳐 주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