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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Oct 19. 2021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 작당모의(作黨謨議) 1차 문제(文題) : 교정 >

브런치북 발행 규칙상 '작당모의' 브런치북 발행을 위해 제(진샤) 이름으로 재발행을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 부탁 드립니다. 원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 발행 작가: 초이스(https://brunch.co.kr/@williams8201/58)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다들 놀란다. 드라마 PD 집에 TV가 없다고?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2년 전 여름이었나? 딸이 엄마 아빠 청소 도와준다고 TV에 물걸레질하는 바람에 액정이 고장나버렸다. 재빨리 햇볕에 1차 말리고 드라이기로 2차 말린 후 다음날 조심스레 전원을 켜봤는데 다행히 정상적으로 나오.... 기는 개뿔! 화면 가운데를 기준으로 좌우가 똑같은 ‘데칼코마니’가 되어 버렸다. 그 유명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집에서 보게 될 줄이야. 아! 이게 광고에서 말하는 ‘TV 예술이 되다!’ 그건가?  


  혼수로 산 TV인데... 우리 집에서 그나마 제일 값나가는 건데...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렸다. 뒤늦게 액정을 손바닥으로 두드려보기도 하고, 끌어안고 끓어오르는 체온으로 물기를 기화시켰지만 화면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괜히 건드리는 바람에 오디오까지 망가져버렸다. 그날 하필 국가대표 축구경기가 있었다.    

 “꼭 봐야겠어?” 아내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그래도 녹색과 살색은 구분할 수 있잖아?”     


  그렇게 ‘아Q’처럼 정신 승리하며 고장 난 TV를 켰다. 현란한 프랙털 구조가 반복되자 007 오프닝 시퀀스 보는 것 같아 처음에는 좋았다. 뭐랄까? 스포츠와 영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영상의 ‘짬짜면’이랄까? 그때 왼쪽 손흥민과 오른쪽 손흥민이 동시에 찬 공이 화면 가운데서 사라져 버렸다. 마치 여러 명의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노스에게 동시에 채찍 휘두르는 장면처럼 말이다.     




  잠시 후 누군가가 찬 공이 골망을 출렁거렸는데 오디오도 맛이 가서 그런지 누가 골을 넣은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서 미어캣처럼 기웃거리다가 뒤늦게 환호를 했는데... 아마 나미비아 사막에서 유선으로 중계 보는 교포보다도 분명 늦게 손을 올렸을 거다. 이건 아니지!! 안 되겠다 싶어 TV 새로 사러 가야겠다 일어서는데 옆에서 아내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자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TV 없는 집 한번 만들어보면 어때?”


 그녀의 눈빛은 사뭇 비장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아찔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으니까.         



  


  아내는 ‘미니멀리스트’다.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들은 깜짝 놀란다. 집도 워낙 쪼그맣지만 있는 게 거의 없으니까. 그 흔한 소파 하나 없고 화장대도 없다. 벽에는 아무것도 안 걸려있고 결혼사진은 작은 음영을 만들며 바닥에 비스듬히 놓여있다. 아마 모델하우스도 이보다는 많을 거다.      


  놀라지 마라! 신혼 초기에는 TV 다이도 없었다. 패브릭 의자(이것도 산 게 아니라 혼수로 선물 받은 거) 두 개 위에 나란히 앉아서 TV를 봤는데 그럴 때마다 시선 높이가 안 맞아서 (TV는 바닥에 우리는 50cm 위에 있으니까) 스포츠든 예능이든 드라마든 자꾸 인물들 정수리만 보게 되더라. 몰입감 쩌는 영화 한 편 끝날 때면 ‘스키 점프’라도 하듯 우리는 활강하는 자세가 돼 있었다. 바닥에 처박을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TV 보는 내 모습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바득바득 우겨서 몇 개월 만에 TV다이 살 수 있었지만 소파는 9년째 결재 반려 중이다. 좁은 거실에 무슨 소파냐며 아내는 B사감처럼 콧등에 걸친 안경을 올리며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는다.   


   “차라리 우리 그냥 움막에 들어가서 살자! 고인돌 하나 짓고.”

   “그게 무슨 목구멍에 햄스트링 걸리는 소리야?”

   아내는 듣던 중 하찮은 소리라며 내 말을 애써 무시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이럴 줄은 몰랐다. 20살에 만나서 10년이나 연애했으니...

  그동안 우리는 너무나 잘 맞았다. 1년에 한두 번 말다툼할까 말까 였다. 하지만 결혼이란 건, 또 같이 산다는 건 연애와는 완전히 다른 거더라. 그렇게 오래 만났으면서도 신혼 초기 우리는 사사건건 부딪쳤다. 특히 나는 아내가 그렇게 깔끔한 사람인지 몰랐다. 청소와 설거지 좋아하는 건 익히 알았지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 못 견디는 성격인지 10년 만에 처음 알았다. 소화도 되기 전에 설거지를 해야 했고, 모든 옷은 옷가게처럼 깨끗하게 정돈되어야 했다.    


 “미안한데 이제 앉아서 하면 안 될까?”     


  어느 날 아내가 내게 말했다. 남자가 서서 소변 볼 경우 아무리 잘 조준한다 하더라도 미세 입자가 사방에 튀고 그러면 미관상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세균도 엄청 증식한다며 아내는 열변을 토했다.

 “그건 좀 그렇다~”

  나는 철벽방어를 했다. 평생 이렇게 살아왔는데 한 순간에 바꾸라고? 게다가 앉아서 하는 건 생각만으로도 왠지 이상했다. 뭐랄까? 남성성이 거세당한 느낌이랄까? 파리넬리처럼 고음으로 나는 ‘NO~ NO~’ 외쳤다.     



소프라노로 '노노' 외치는 내 모습 

 “앞으로 볼 일 볼 때 뒤처리 잘할게.”

 “맨날 말로만! 한두 번이어야지.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가족을 위해서 좀 바꾸라는 건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다른 집 남편들은 다 그렇게 한다던데..,” 아내는 허리춤에 손 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또 필살기 들어갔다. 그놈의 ‘다른 집 남편’!!!

  그나마 이건 들어줄만했다. 보통 명사니까. 구체적이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XX집 아빠’가 나오는 순간 내 안에 남은 사춘기는 꼿꼿이 고개를 들었다.

   “싫어. 이건 남자로서 내 최후의 보루야~ 더 이상 강요하지 마!”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아내에게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변기 위에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아내는 하루 종일 나를 들들 볶았다. 서서 볼 일 볼라치면 저승사자처럼 뒤에서 나를 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저절로 주저앉고 말았다.

 “알겠어~ 알겠다고~~”

 나는 포기했다.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듯.., 아내의 집요함 속에서 두 손 두 팔 다 들고 말았다.


 신혼 초기 이른바 ‘행동 교정!’ 즉 ‘남편 길들이기’ 제대로 당한 것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나는 과일 중에서 석류를 제일 좋아한다. 아무리 봐도 미녀는 아닌데 암튼 어쩌다 보니 좋아하게 되었다. 그날도 식탁에 앉아서 야금야금 석류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한 입 깨물었는데 하얀 벽지에 후드득~ 튀고 말았다.  


 ‘아~ 제길 죽었다! 아내가 엄청 아끼는 벽지인데...’


  서둘러 물수건으로 닦았다. 하지만 지워지기는커녕 더 번지고 말았다. 제길~ 포스터라도 붙여야 하나? 아니면 구멍을 뚫어야 하나? 완전범죄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을 때 쾅~ 문을 열고 아내가 안방에서 나왔다. 그때 날 쳐다보던 아내 눈빛을 잊을 수 없다. 장산범이 있다면 분명 그 모습일 게다!! 그날 나는 아내에게 탈탈 털렸다. (사마귀로 안 태어난 게 천만다행이다)      


 “앞으로 집에서 석류 먹지 마~” 아내는 석류 봉쇄령을 내렸다.     

  

그로부터 한 달 정도 지났나? 그날따라 석류가 너무 땡겼다. 그래서 아내가 외출한 틈을 타서 마트에 가서 석류를 사 가지고 왔다. ‘어디서 먹어야 완전 범죄가 성립될까?’ 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사방이 다 벽지였다. 조금이라도 튈 시에는 팬티바람으로 쫓겨날 게 분명했다. 아씨~ 먹고는 싶은데 어떡하지? 그때 떠오른 좋은 생각!!


  '아하! 우리 집에 벽지 없는 곳이 있구나~'     



  잠시 후 나는 속옷만 입고 화장실 욕조 안에 들어가 있었다. 행여 다른 곳에 튈까 봐 석류를 검은 비닐 안에 넣고 다람쥐처럼 조금씩 은밀하게 파먹었다.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동남아 휴양지에 와있는 기분도 나고 (비록 욕조에 쭈그리고 있지만) 진짜 꿀맛.. 아니 석류맛이었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입에서 톡톡~ 터지는 과즙을 음미하고 있을 때 갑자기 벌컥!! 화장실 문이 열렸다.

 아내였다. 

 그녀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날 내려다보았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대로 멈췄고 아내도 밀랍인형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5초 정도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잘 못한 거 하나 없는데 심장이 벌렁벌렁거렸다. 그때 아내 코 평수가 늘어나더니 파하하하~ 이내 폭소를 터트렸다.        

   

  아내의 말을 빌자면 이랬다. 화장실에서 찍찍~ 이상한 웃음 소리(?)가 들리기에 처음에는 쥐인가 싶었단다. 그래서 문을 여니 ‘남편’이란 놈이 검은 비닐 안에 든 뭔가를 킁킁거리고 있어서 순간... 본드나 마약 하는 줄 알았다는 거다. 그러다가 내 입 주변에 흐르는 석류 물 보고 마음이 놓이면서 너무 웃겼다는 거다. 뭐라더라?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 같았단다.    

 

 마이 프레셔스~~ 골룸골룸~


  그렇게 놀리면서 아내는 깔깔 웃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수치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석류 하나 먹겠다고 속옷만 입고 욕조에 들어가는 신세라니~ 결혼하면 다 내 마음대로 할 줄 알았는데... 뒤늦게 볼에 석류즙이 물들었다. 현자 타임이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아! 나도 모르게 아내에게 <완전한 사육> 당하고 있었구나!!’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아내는 이런 내가 안쓰럽고 또 귀엽다며 ‘석류 금지령’을 풀어주었다. 대신 안 튀게 앞으로 자기가 잘라줄 테니 그걸 먹으라고 했다. 고맙다 말하며 나는 뒤돌아 차오르는 눈물을 닦았다. 현장에서는 그래도 명색이 감독인데... 집에만 들어오면 왜 이렇게 작아지는 걸까?         



욕조에서 석류먹다 들킨 내 모습

 






“왜 답이 없어? TV 없이도 살 수 있잖아. 안 그래?”


  그렇게 8년을 참고 살았는데 TV가 고장 나자 이제는 ‘TV 없는 집’ 한번 만들어보자는 거다.     

 “싫어. 드라마 만드는 사람이 TV 안 보면 어떻게 하라고?”

 나는 길길이 날뛰었다. 당시 7살 먹은 내 딸도 인생 처음으로 엄마한테 턱을 들이밀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아내는 거대한 벽이었다. 그녀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집요하게 우리를 설득했고 마지못해 딸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TV 없는 삶이 한 달이 두 달이 되고, 또 1년이 지나 결국 2년이 되었다.     


  신기한 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살게 되더라. 처음에는 불편했는데 점점 괜찮아졌다. 의미 없이 바닥에 누워 배 긁으며 TV 보는 시간에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다. 딸이랑 같이 그림 그리고 동네 산책하는 시간도 늘었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건 가족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TV 있을 때랑 비교하면 거의 2배가량 대화가 늘었다.           


  결혼 10년 차인 지금,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내가 너무 아내에 맞춰 살아온 게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처음부터 ‘남편 길들이기’ 제대로 당해서... 앉아서 볼 일 보고 TV도 없이 살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맞춤형 서비스하고 있다는 생각에 억울할 때도 많다.


 ‘아내는 나 같은 남편 잘 만났어? 나 아니면 누가 이러고 살겠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며 어깨를 토닥이곤 한다. 물론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내 말이 맞을 때가 많다. 나보다 현명해서 그런가! 아니면 감이 좋은 건가? 지금까지 살면서 아내 말 들어서 손해 본 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결혼 하나 잘했네~ 그렇게 생각하며 살았다.      

    

  3주 전인가? 딸이랑 손잡고 안양천 한 바퀴 도는데 갑자기 이 녀석 하는 말.

 “아빠~ 아빠는 엄마한테 잘해야 해.”

 “엉? 왜?”

 “저번에 엄마랑 옷 사러 갔거든.

  자기 옷 산다고 갔으면서 결국 자기 옷은 보지도 않고 아빠 옷만 사더라~”

 딸은 그렇게 말했다. 생각해보니 아내가 새 옷 입은 걸 별로 본 적이 없다. 워낙 검소해서 그런가! 내 기억 속에 아내는 늘 같은 색 옷을 입고 있었다. 정작 나와 딸 입을 옷은 꼬박꼬박 챙기면서... 그날 집에 가서 아내에게 말했다.     


 “자기 옷 좀 사~ 우리 그 정도는 살 수 있잖아!”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사줄까?”

 “됐네요. 내 취향도 모르면서. 마음에 드는 옷이 없어서 그래.”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는 빨래를 개었다. 그때 그런 아내를 보고 있는데 순간 코끝이 찡해지더라. 정말 예쁜 옷이 없어서 그런 건가?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20년 전 대학교 OT에서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그녀는 그 누구보다 예쁘고 화사한 아이였다. 쇼핑몰 구경하는 걸 즐겼고 이것저것 꾸미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다소 늘어난 셔츠를 입고 대충 머리 묶은 채 집안일 돌보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내는 나와 살면서 많은 걸 희생해야 했다. 학교 다닐 때 아내는 굉장히 똑똑하고 재주 많은 아이였다. 그 결과 나보다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자마자 딸이 태어나고 남편 직업 특징 상 ‘독박 육아’를 해야 했기에 (사정상 양가의 도움을 하나도 받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잘 다니던 직장을 포기해야 했다. 드라마 촬영하느라 남편이 집에 제대로 못 들어와도 아내는 묵묵히 혼자 딸 키우고 모든 살림을 도맡아서 처리했다. 매일 따뜻한 밥 먹고 또 뽀송뽀송한 옷 입을 수 있는 건 순전히 아내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쉽다! 원망한다!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한 마디 안 하던 사람인데...           


 ‘왜 내가 아내한테 맞추며 산다 생각했지? 우리를 위해 자기 꿈 포기한 건 정작 아내인데..’


 멈추고 돌아보니 비로소 내 곁에 있는 아내가 다르게 느껴진다. 그동안 나는 경주마처럼 나만 보며 살았다. 내가 가는 길이 곧 가족을 위한 삶이라 포장하며 다소 이기적으로 살았다. 분명한 건 아내 없이는 불가능한 길이었다. 아내는 내가 따로 말 안 해도 스스로의 삶을 우리를 위해 ‘교정’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걸 너무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면서 ‘다른 집 남편’ ‘누구 아빠’ 그 몇 마디 듣는 걸 그렇게 귀찮아했다니...           


 “자기 오늘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마음이 아련해진 나는 설거지하는 아내를 뒤에서 끌어안는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뭘 먹을지 말해줘야 내가 예약하지?”

 “자기는 뭘 먹고 싶은데...”

 아내는 늘 이런 식이다. 언제부터 습관적으로 내가 먹고 싶은 거, 딸이 먹고 싶은 걸 먹는다. 자기 취향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내 나이 40살, 같이 산 지 20년, 정말 아내와 말 그대로 반평생을 함께 해왔다. 앞으로는 따로 산 날보다 같이 산 날들이 더 많아진다.   

   

 “오늘은 자기가 골라! 무조건~ 알겠지?”

 나는 아내의 눈을 보고 말한다. 생각하느라 왼쪽으로 눈동자 돌리는 게 20년 전 새내기 때 처음 봤던 그때 그 눈빛이다. 비록 조금 나이 들고 조금 더 억척스러워졌지만... 그래도 내 품에 있는 여자는 그때 그 시절보다 더 아름답다.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또 '아내'와 '엄마'란 이름에 가려 '그녀'란 이름의 찬란했던 TV는 색이 바래졌다.     


 이제는 그런 아내를 위해 내가 ‘화면조정’할 시간이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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