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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n 14. 2021

김태희와 김연아와 나의 공통점과 차이점

< 작당모의(作黨謨議) 1차 문제(文題) : 교정 >

매거진발행작가: 진샤(https://brunch.co.kr/@1kmhkmh1/143)



   분명히 눈이 마주쳤다. 역시나, 그냥 지나친다. 이 정도면 완벽하게 성공했다. 나 역시 일부러 모른 체하고 기다려 본다. 언제까지 나를 찾으려나. 결국 친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전화를 한다. 전화를 받는 여자를 보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혹시, 진샤 맞나요. 네, 현주야. 결혼 전 그때처럼 웃어 보아도 여전히 믿지 않는 표정이다. 정말 너라고? 응, 나야, 좀 변했지. 변한 수준이 아니고 이 정도면 다른 사람이다야.

   이런 일은 결혼 후 삼사 년 즈음되었을 때 자주 일어났다. 결혼 전에 보고 한동안 못 보다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나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다. 시력 교정과 치아 교정으로 나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 금붕어. 눈 떠!"

   "야, 맹꽁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생물 선생님은 본인이야말로 양서류처럼 생겼으면서, 수업 시간에 졸고 있는 나를 깨울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어류를 공부할 땐 금붕어를 내세웠고, 양서류를 배울 땐 개구리도 아니고 두꺼비도 아니고 무려 맹꽁이를 소환했다. 전형적인 외모 비하 발언이었으나, 양심은 있어서 '비하가 아닐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던 것이다. 금붕어와 맹꽁이에 견줄 만큼 눈툭튀, 입툭튀였다.

   국민학생(국민학교 졸업자이다) 저학년부터 쓴 안경 때문에 내 눈은 더욱 툭 튀어나와 보였다. 쌍꺼풀이 없지만 큰 눈이었는데, 그래서인지 튀어나온 눈은 더 강조되었다. 윗니 아랫니들은 서로 자존심을 세우며 자연스러운 돌출입을 형성했다. 안경 때문에, 입의 돌출 때문에 코는 자연스레 양볼 사이에 묻혔다. 금붕어, 맹꽁이가 보면 만장일치 당대표로 내세울 얼굴이었다. 어류와 양서류의 오랜 갈등을 봉합하고 드디어 합치를 이룬 존재가 인류였던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3개월 후, 시어머니는 대뜸 전화로 어딘가로 오라고 하셨다. 막 석사논문 끝내고 한가해지기 시작한 때였다. 시어머니의 단골 치과였다. 1시간여의 상담을 받고는, 어머니는 몇백만 원의 치아 교정 비용을 일시불로 지불하셨다.

   "며느리 들어올 때 한 글자 신경 쓰라잖아. 빚, 이. 너는 빚은 없는데, 이가 문제였어. 내 며느리 이는 내가 해줘야지."

   졸지에 그다음 주부터 생니를 뽑혀가며 교정기를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친정엄마가 '돈만 있었어도 교정해줄 텐데'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상했는데, 그 바람을 이뤄준 사람이 시어머니였다. 친정엄마의 바람과 시어머니의 결제 사이에 내 이가 있었다. 그래서 군말 없이 치과를 다녔다. 라면을 끊어먹지 못해 가위로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고 사과를 씹지 못할 때마다 억울하고 분했으나, 그때마다 속으로 되뇌며 고통을 가라앉혔다.

   "김태희와 김연아도 이 모든 과정을 거치고 지금의 미모를 얻었다. 나도 해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치아 교정의 아픔은 온데간데없고 김태희와 김연아의 미모만이 오롯이 남는 것이다. 마음이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어느새 나는 김태희와 김연아의 뒤를 잇는 치아교정계의 후속주자가 되어 있었다.


교정기를 하셔도 귀여우신 좌 연아, 솔직하셔서 더 아름다우신 우 태희

   


   좌연아우태희로 1년여의 시간을 보낸 어느 날,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군인가족 할인으로 라식 수술을 할 수 있어서 예약을 했다고 다. 아니 이분들은 왜 당사자에게 묻지도 않고 이러시는 거지, 물론 당연히 수락했을 테지만. 그렇게 나는 치아 교정을 하며 시력 교정까지 하게 되었다. 그렇게, 20년간 나의 콧등을 눌러 온 안경에서 해방되었다. 쌍꺼풀 없이도 큰 눈을 세상에 드러내 보일 수 있게 되었다. 그 눈으로 보는 세상은 또렷하고 선명했다.

   이렇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혼'이 맺어준 인연들이 나의 외모(미모 아니고)를 업그레이드해주었다.







    "그러니까 언니, 이 사람은 이제 역사 속 인물이 된 거지요?"

   이 곳에서 친해진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결혼 앨범을 보고 한 말이다. 그렇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 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아무리 웨딩사진이 사기라고 해도 조금씩은 얼굴들이 남아 있는데,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의 웨딩 사진 속 인물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이고 현존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했다. 분노 비슷한 것이 속에서 부글부글 일었지만, 반박할 수가 없다. 나의 아이들 엄마 아빠를 말하기 시작했을 때도 그랬으니까.

   결혼사진을 한참 보던 첫째 아이는 아빠를 가리키며 '아빠, 아빠'라고 했다. 너무나도 기특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엄마'가 나오지 않는다.

   "ㅇㅇ아, 이건 누구야?"

   대답이 없다.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아빠 아빠,라고만 한다. 엄마는 어디 있어?라는 나의 질문에 고개를 젓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둘째는 어떤가. 둘째는 대놓고 '이모, 이모'라고 했다. 나는 자매가 없다.

   생긴 것도 첫째 언니를 닮은 막내는 하는 짓도 비슷하다. 결혼사진을 앞에 두고 '아빠, 아빠' 하더니 그 옆의 여자를 가리키며 '엄마?'라고 묻는다. '응, 엄마'라고 대답해 주었더니, 다시 '아빠, 아빠'만 하고는 앨범을 덮어버린다. 이 것들이 키워준 애미도 못 알아보고!

   아이들은 순수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내가 봐도 그렇다. 결혼하고 외형이 너무나도 바뀌었다. 나이가 들며 눈꺼풀이 처져 살짝 쌍꺼풀이 생기고 안경을 벗은 덕분에 콧대는 살아났다. 입이 후퇴하면서 얼굴이 입체적으로 바뀌었다. 새치 때문에 흰머리 점유율 높아졌고, 50을 넘지 않았던 체중계 숫자는 세 아이를 연달아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을 거치며 과거의 영광이 되어 버렸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나는 외형적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겉이 변했으니 속도 바꾸어 보고 싶었다. 결혼 후 성격 교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나의 바꾸고 싶은 성격들을, 나의 외모처럼 완전히 바꾸어 보자. 10톤 이상으로 짐작되는 나의 엉덩이를 가볍게 하고,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할 것(특히 청소), 모든 것을 미루는 습관 고치기. 이 것만 교정해도 성공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사실 이 것들은, 나의 하나의 기질로서 관통하고 있다. '게으름'. 나의 게으름은 결혼하고 비교대상이 생기자 더욱 빛을 발하였다. 원래도 그러한 기질의 소유자인데 20년을 군인으로 살면서 '근면성실'의 현신(現身)이 되어버린 자가 있었으니, 바로 남편이었다. 가만 둬도 충분히 빛나는 나의 게으름인데, 남편은 나의 게으름을 찬란하게 만들었다.

   신혼의 빛이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남편은 본격적으로 나의 게으름을 그냥 두지 않았다. 때로는 윽박지르고 혼내고 때로는 어르고 달래고 잔소리하면서 한 순간도 가만히 있지 못하게 했다. 연속적이고 강력한 외압으로 인해 나는 꽤나 부지런한 사람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자꾸만 울적해졌다. 내 느리고 굼뜬 손과 발을 교정해 보려 쉬지 않고 노력하였으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의 사이사이 틈을 주고 그 틈새에서 여유를 찾고 그 여유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나 같은 이가,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치우고 닦고 처리하고 해결하는 것은 '나의 의미'를 지우는 것과 같았다. 틈새와 여유와 의미를 '나태'로 치부해버리는 행동들을 체화하기 힘들었다. 그 움직임을 내 것으로 하려다 삐끗해서 우울을 내 것으로 해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아이들과 게으름과 우울과 울음을 동시에 키우고 있었다.


   남편은 언제부턴가 혼자 치우고 닦고 처리하고 해결하고 있다. 이따금씩 잔소리가 있었으나 예전 같지 않다. 한두 마디 하고는 자기가 알아서 하고 있다. 여러 차례의 부침과 갈등을 겪고 나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눈치를 챈 것 같다. 그러다가도 너무하다 싶을 때 화를 참지 못하고 내뱉고야 마는 것이다.


"얼굴 이쁘니까 봐준다!"

   (자매품으로 '얼굴 이쁘면 다냐' 와 '얼굴 값 좀 해!'가 있다)


   지극히 전지적 남편 시점이긴 하지만, 어쨌든 얼굴 이쁘니까 봐준단다. 이쯤 되면 건방진 생각이 들게 되는 거다. 얼굴 이쁜데 굳이 성격 교정 같은 걸 해야 할까, 같은. 그래서 요즘의 나는 조금은 엄격하게 조금은 관대하게 게으름을 대하며 지내고 있다. 매형은 다 괜찮은데 눈이 좀 이상해, 라는 동생의 말이 자꾸 떠오르지만 애써 무시하고, 매일의 루틴을 반드시 지키되 사이사이 마음의 틈을 갈라주고 그곳에서 '글'로 삶의 여유와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외모는 몇 번의 시술과 어느 정도의 시간을 두고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지만, 내면 업그레이드는 결코 쉽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반드시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 것이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스스로의 나 그대로를 내가 먼저 인정해 줄 것, 고쳐야 할 점을 고치려 노력하되 나의 본모습을 잃어버리지 말 것.

   생의 과정에서 우리는 수많은 업그레이드와 다운그레이드를 거치며 지금의 모습을 만들어 왔다. 이미 내 안에는 수많은 교정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이다. 억지로 하지 말자. 지금까지의 교정의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자연스레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라식으로 인해 안구건조증 중증 환자가 되었고, 치아 교정으로 인해 음식물이 치아에 잘 끼는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내고 있다. 괜찮다. 김태희와 김연아도 이런 불편함을 안고 지내고 있다. 그러니까 나는, 그런 면에서 그들과 동급이다. 우리(나와 김태희와 김연아)는 과거의 시술로 외모(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미모, 나는 외모)가 업그레이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보다 내가 더 이쁘다고 하는, 눈이 조금 이상한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 덕분에 나는 시력 교정과 치아 교정에 성공했고, 성격 교정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앞으로의 내게 있어 외면이고 내면이고 더 이상의 교정은 없을 것만 같다. 교정하느라 애쓸 힘을 모아 나다운 나와 아이들을 보듬는 데 쓸 것이다.  교정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가 좋다.




* 김태희 씨와 김연아 씨가 혹시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미리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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