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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an 13. 2022

그들만의 작당모의(1)

< 작당모의(作黨謀議) 14차 문제(文題): 작당모의 >



  세 번째 글이었다. 쓸수록 자신감도 늘고 어쩐지 실력도 느는 것만 같았다. 공동 매거진 잘했다 싶었다. 그리고 네 번째 글은,




  민현 님이 낸 주제는 '복숭아'였다. 한겨울에 웬 복숭아. 복숭아 사 오라는 게 아니라 써내라는 거니까 괜찮아. 다행히도 내게는 쓸 것이 있었다. 아빠의 복숭아.

  아빠는 큰 글감 주머니 같다. 대충 손 넣고 아무거나 건져 올려도 꽤나 근사한 글감이 된다. 그걸 엮고 묶고 저기 놓고 여기 놓고 바람을 넣었다 뺐다 하는 건 내 일이지만, 글감이 없으면 이 모든 행위가 불가능하다. 아빠는 내가 커서 브런치 할 줄 알고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해준 건가, 싶었다. 그땐 지겹도록 지겨웠던 일들이 인생을 펼쳐놓고 봤을 때 고마운 일이 되는 건, 그야말로 고마운 일이다.

  제목은 '은혜 갚은 복숭아'. 어그로를 끌기엔 살짝 부족하지만, 이 것보다 더 적절한 제목은 없는 것 같았다. 아빠가 어렸을 때 큰집은 과수원을 했다. 공부에 뜻이 없는 고등학생이었던 아빠는 학교 끝나고 과수원 밭이나 어슬렁거렸다고 한다. 복숭아나 따먹고 책이나 보았다고 했는데, 복숭아가 얼마나 달달한지 다 먹고 나면 손이 찐득찐득 달라붙었다고 한다. 당도가 높아 엄지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이 떡 붙으면 떨어지질 않는다며, '히야, 그거에 비하면 요즘 복숭아는 통 맛이 없어 먹을 수가 없다니까, 맹물이야, 맹물'이라고 탄식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복숭아를 먹으며 맛있다고만 생각했다. 아빠는 뻥을 참 찰지게 잘 쳐.

  아빠는 트럭에서 내린 운전수의 손을 보았다.
  "운전하신 지 얼마 안 되셨나 보네. 나는 괜찮으니 앞으로 조심하시오. 내가 죽이려고 죽이는 게 아니니까. 동물도, 사람도. 보험 전화해서 빨리 차 손보러 오라고 하고."
  연신 죄송하다며 허리를 굽히는 운전수를 뒤로 하고, 아빠는 터진 복숭아들이 엉켜 있는 곳으로 향했다. 분명히 트럭에 싣고 문을 잘 잠겄는데, 비탈길에 세워둔 지 몇 분 되었다고 그게 열리더니 복숭아가 와르르 쏟아진 것이다. 아빠가 차에 타려다 복숭아 쏟아진 곳으로 간 동안, 같은 1톤 트럭이 멈추지 못하고 운전석을 쳤다. 아빠 대신 시체가 된 복숭아들이었다. 시체의 잔해가 쌓인 곳에 달싸한 향이 번져 있었다. 그들의 희생을 애도하는 향이었다.
  운동화 바닥이 쩍 하고 땅에 들러붙었다. 발을 움직일 수 없어 낑낑대다 고개를 든 아빠의 눈에는 찢어진 채 나뒹구는 복숭아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안동 복숭아'
차에 적재할 땐 분명, 그냥 '맛있는 복숭아'였다. 안동 복숭아라고 적혀 있었다면 기억을 못 할 리가 없을 텐데. 맛있는, 안동 복숭아. 발밑의 복숭아를 다시 내려 보았다. 나를 알아봐 달라고 발목을 붙잡고 있는 복숭아의 혈액들, 과육들이었다. 갑자기, 복숭아와 비슷한 당도의 눈물이 흘렀다. 입에 흘러들어 가자 단맛이 났는데 어째 찝찝했다. 아아, 너로구나.   


  이 부분이 맘에 들지 않는다. 아빠와 복숭아의 만남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하고 싶은데, 곧 발행시간이다. 빌어먹을 동시발행. 시간만 더 있었음 더 기깔난 글이 될 텐데. 하긴, 주어진 시간안에 써내는 것도 작가의 역할이자 역량인 거겠지.

  됐고, 발행이다. 발행을 누를 땐 항상 두근두근한다. 몇 개의 라이킷을 받을까, 엄마는 또 아빠한테 읽어주겠지, 그는 어떤 댓글을 달아줄까. 발행 후에 따르는 민트색 초록을 오후 내내 즐기며, 오후의 햇살이 토해낸 오란 잔해물 속을 뒹굴거렸다.


작가님, 이쯤 되면 작가님 뇌 속을 들어가 보고 싶네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시는 건지.
빨리 작가님 소설책을 받아 들고 싶습니다. 앨래딘, 예스25 캐시 모으고 있습니다.
어머 작가님, 이제는 완전히 소설로 돌아서신 건가요. 소설계는 긴장해야 할 듯합니다.
우리 작가님은 소설도 시도 에세이도 뭘 써도 다 대박입니다. 존경해요, 작가님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파이팅!


  고만고만한 행복이 묻어난, 적당한 온도로 따뜻한, 악플이나 악의 따위 피어날 자리 없는 댓글들을 영양제삼아 허약한 자존감이 자라나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빨래를 개다가 또 무슨 댓글 달렸나 폰을 들었다가, 잠시 내려놓았다가, 다시 들었다.


@할아버지님이 댓글을 남겼습니다. 은혜 갚은 복숭아. 3분 전.

정현이가 복숭아 일을 많이 도와줬지요. 잘 읽었소. 정현이 살려줘서 고맙소. 이제 그만 하시오.


  김정현. 분명, 아빠의 이름이다. 아빠의 본명은 단 한 번도 브런치에 쓴 적도 없고, 안동 김가 아닌 이상 잘 알지도 못한다. 흔한 이름이지만 어쨌든 말하지 않는 이상, 묻지 않는 이상, 진샤의 아빠 이름을 여기 그 누구도 알리가 없다. 게다가 댓글 쓴 이가, 할아버지. 내가 태어나기 10년도 훨씬 전에 돌아가셨다는 그 할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잘 모르고, 그냥 아빠의 아빠일 뿐일 할아버지.

  폰 통화목록을 아래로 아래로 내린다. 하아, 통화한 지 이렇게 오래되었나, 무심한 딸이네, 찾았다, 사랑하는 엄마.

  "엄마! 오늘 발행한 글 봤어?"

  "아니, 아직. 왜?"

  "빨리 보고, 댓글 좀 봐봐. 대박."

  "그래. 기다려."

  전화를 끊고, 댓글창을 캡처했다. 할아버지, 정현, 할아버지, 정현. 누가 한 거지, 누가 시킨 거지, 아무리 봐도 이건 말이 안 되는데. 저만치 미뤄진 빨래들도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었다. 빨래 옆에서 폴폴 날리는 먼지들조차 웅성거리는 것이 들리는 듯했다.

  "이거 누구로? 뭘 아는 사람이 쓴 댓글인데?"

  "그치그치, 와 진짜 이거 뭐지. 아빠는 브런치 못 보잖아?"

  "아빠는 내가 읽어주지 않으면 보지도 못한다. 눈이 침침해서. 그나저나 저거 뭐로, 진짜, 좀 무섭다."

  엄마와 대화하는 내내 가슴속에 텁텁한 분재가 계속 일었다. 분재는 찐득찐득한 복숭아에 들러붙었다 재주껏 떨어져 먼지가 되곤 했다. 도대체, 뭐지.


  댓글을 달아봐야겠다. 뭐라도 알아내야겠다.

작가님, 진짜 너무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작가님의 소설 같은 일이 정말로 일어나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기운 얻어갑니다.

 

  차곡차곡 쌓인 수건 탑이 툭, 무너진 건 그때였다.

  이 댓글 위에 있어야 할 @할아버지 댓글이, 없다. 나는 안 지웠는데. 삭제. 이상한 일은 늘 삭제 전에 일어나 삭제 후에 더 이상해지기 마련이던데. 없다. 누가 쓴 글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누가 삭제한 일인지부터 알아채야 한다.

  통화목록, 통화.

  "엄마, 다시 봐봐. 댓글 없어졌어."

  "잠깐만. 진짜네. 아이고, 누가 이런 장난을 치노. 가슴이 서늘하다."

  "아, 미치겠네, 진짜."

  그 와중에 '진우 님이 사진을 보냈습니다'. 바빠 죽겠구만 또 무슨 장난을 칠라고.


- 진샤님하, 이 댓글, 못 보던 댓글이네요? 할아버지 아직 살아 계신가요? 지난번에 다 돌아가셨다고 한 것 같은데.


  진우 님의 캡처본에 아직 '살아있는' @할아버지. 방금 캡처한 시간.


- 엇? 진우 님 이거 방금 캡처한 거? 저는 저 댓글이 지워졌어요.

- 아 그래요? 쓰신 분이 지우셨나?


  다시 돌아온 내 브런치에는 라이킷만 두 개 더 늘어있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어디 계세요.


- 저 그 댓글 없어요.

- 이상하군요.


이상하다, 진우 님한테는 있고 나한테는 없다.


- 엄마, 할아버지 댓글 다시 생겼어?

- 아니, 계속 없어.


  이상하다. 손이 떨린다. 아니야, 이럴 일까진 아니야, 이러지 말자. 고작 댓글이다. 그래도 손은 멈추지 않는다.


- 소운님, 시간 잠깐 되심 혹시 제 톡 댓글 보고 캡처 부탁드려도 될까요?

- 진샤, 무슨 일? 오늘 글 재미있던데~ 잠깐만~


소운님이 사진을 보냈습니다.
 
@할아버지 정현이가 복숭아 일을 많이 도와줬지요. 잘 읽었소. 정현이 살려줘서 고맙소.


  할아버지는 건재하시다.


- 오기 오기, 지금 바빠?

- 아뇨, 언니, 무슨 일 있어요?

- 아니.. 오늘 내가 발행했는데, 지금 내 글에 댓글 잠깐만 캡처해 줄 수 있겠어?

오기 님이 사진을 보냈습니다.
@ 우리 작가님은 소설도 시도 에세이도 뭘 써도 다 대박입니다. 존경해요, 작가님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파이팅!
@ 작가님, 진짜 너무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작가님의 소설 같은 일이 정말로 일어나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기운 얻어갑니다.


  할아버지가, 삭제하셨다, 아니 삭제되셨다, 아니 모르겠다. 마지막이다, 이 마지막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 민현 님은 최소 거짓말할 분이 아니시다. 제발, 나의 의심의 먼지들을 삭제해 주시길.


- 민현 님, 저기요, 제 글 댓글 한 번만 캡처해 주시면 참으로 감사합니다?! ㅎㅎㅎ

- 잠시만요.


@ 우리 작가님은 소설도 시도 에세이도 뭘 써도 다 대박입니다. 존경해요, 작가님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파이팅!
@할아버지   정현이가 복숭아 일을 많이 도와줬지요. 잘 읽었소. 정현이 살려줘서 고맙소.
@ 작가님, 진짜 너무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작가님의 소설 같은 일이 정말로 일어나면 좋을 것 같아요. 좋은 기운 얻어갑니다.


  등에 흐르는 땀이, 진땀인지 식은땀인지 구별이 가지 않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할아버지가 그곳에 있어서가 아니었다. 진우 님, 소운님, 민현 님 캡처에 하나같이 삭제된 그 문구를, 그제야 생각해냈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만 하시오.


  할아버지는, 삭제'되었다'.


  외투를 걸쳐 입었다. 겨울은 장애가 되지 못했다. 복숭아 나뭇가지를 구해와야 한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그만할 수 없을 것 같아요.





(2)에 이어집니다.



이번 작당모의 문제文題, '작당모의'는 2부에 걸쳐 연재됩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2회가 계속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사진출처: 경북매일, 복숭아꽃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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