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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an 13. 2022

재하, 소진, 현우 이야기 (1)

< 작당모의(作黨謀議) 14차 문제(文題): 작당모의 >

   재하는 삼각김밥 하나와 500ml 페트병에 담긴 녹차를 계산대 위에 올렸다. 편의점 직원은 재하의 얼굴을 흘낏 한번 보고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제품의 바코드를 찍었다.

   “삼각김밥 하나, 녹차 하나. 다 해서 2,900원입니다.”

   재하가 지갑에서 꺼낸 카드를 점원에게 건넸고, 점원은 건네받은 카드를 리더기에 꽂았다.

   “20원 추가되는데, 봉투에 넣어 드릴까요?”

   재하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삼각김밥과 녹차를 손으로 잡아 들었다.

   “결제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돌려받은 카드를 손에 쥐고 편의점을 나오면서 재하는 ‘말이 너무 많아. 시끄러워.’ 하며 점원이 듣지 못할 작은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북적이던 점심시간이 지난 2시, 회사 앞 작은 공원은 한산했다. 공원 구석 비어있는 벤치로 다가가는데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맞네. 재하.”

   현우였다. 회색 정장과 잘 어울리는 검은 구두가 햇빛에 번쩍였다. 재하는 목에 걸려있는 회사 출입증이 뒷면을 향했는지 슬쩍 확인하고는 현우를 향해 손을 들었다.

   “잠깐 볼 일이 있어 지나는데, 너 회사가 이 근처였다는 게 생각났거든. 그래서 전화나 한번 해볼까 했는데 눈앞에 네가 딱 보이네. 야. 신기하다. 잘 살고 있냐?”

   재하가 앉으려던 벤치에 현우가 털썩 먼저 앉고는 재하를 보며 비어있는 벤치의 옆을 한 손으로 두드렸다. 재하는 현우가 두드렸던 위치보다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제수씨도 잘 지내지?”

   “그렇지. 뭐.”


   재하는 출근 준비를 마치고 먼저 집을 나서던 소진을 떠올렸다. 재하의 회사보다 지하철로 몇 정거장을 더 가야 해서 재하보다 늘 30분 일찍 집을 나서는 소진이 잘 다녀오겠다며 자신에게 눈인사라도 할까 싶어 물끄러미 소진을 바라봤지만, 소진은 재하의 눈을 피했다. 현관문이 닫히고 더 이상 소진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재하는 고개를 숙였다. 함께 눈을 마주쳐 본 게 언제더라.

   “나 어쩌면 이혼할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말에 재하 쪽으로 돌아 앉아 자세를 세우는 현우를 한번 바라본 재하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소진이가 나를 없는 사람으로 대해.”

   서로 말없이 지낸 지 1년쯤 됐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했던 말이 기억이 나는데 ‘당신 너무 재미없고 지루해.’라고 했었어. 뭔가 변화를 주어 보려는, 둘 사이의 관계를 개선해 보려는 눈빛이 아닌, 그런 거 있잖아. 이제는 정말 그만두겠다는, 그냥 툭 하고 내려놓는 듯한 표정으로 말이야. 그 후로 다시 되돌리려 애를 써 봤는데 늘 벽을 보는 느낌이었어. 출입문도 창문도 없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그런 단단하고 높은 벽.

   

   “너 이런 말 먼저 꺼내는 거 처음 본다.”

   “그러냐? 내가 많이 답답했나 보다.”

   현우는 재하의 손에 들려있는, 아직 뜯지 않은 삼각김밥을 쳐다보며 삼각김밥 안에 들어있는 게 무엇일지가 언뜻 궁금했다. 나라면 고추장불고기였을텐데.  

   “그래서 어쩔 생각이냐.”

   “글쎄. 이제 놓아주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놓아주어야 할지를 말하면서 재하는 무언가를 놓는 듯한 손짓을 함께 했고 그러면서 슬쩍 가려져있던 삼각김밥의 포장지에 쓰인 문구가 현우의 눈에 들어왔다. 참치마요네즈. 그럴 거라 예상했다. 재미없는 심심한 녀석.   

   “그런데 현우 넌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응 있어. 아주 매력이 넘치는 사람.”

   현우는 대답과 함께 재하 몰래 켜 놓았던 핸드폰의 녹음 종료 버튼을 눌렀다.




   “재하는 이미 각오하고 있는 것 같더라.”

   현우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이 놓은 테이블 위에 핸드폰을 올리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소진은 핸드폰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힘없는 재하의 목소리를 말없이 들었다.

   “기분이 묘하던데? 자기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지도, 바람피우는 상대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털어놓는 이야기를 듣는 것.”

   소진은 현우의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반음 정도 높다는 걸 느끼며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셨다. 이미 얼음이 많이 녹아 쓴맛이 옅어져 있었다. 희석되어 밍밍해진 맛이 지금의 재하의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재하가 학교 다닐 때엔 마치 당겨진 활시위 같았는데, 오늘 보니 많이 느슨해졌어.”

   재하는 그 당시 팽팽하게 당겨져 언제 화살이 날아가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는 활시위 같았다. 그런 긴장감이 늘 주변 친구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재하에게선 당장이라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묘한 두근거림이 있었다. 당겨진 활시위. 소진도 재하의 그런 면이 좋았다. 소진이 다니던 회사에 신입으로 들어와 인사과 직원과 함께 인사를 하는 재하를 처음 보았을 때 소진은 재하에게서 왠지 모를 두근거림을 느꼈다. 지루하기만 한 우리 부서에 화살이라도 마구 날리며 다닐 것만 같은 묘한 기대감.


   소진은 재하와의 첫 만남 이후 번뜩였던 연애 시절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밀려들어오는 걸 급히 틀어막았다.

   “이혼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지?”

   “그렇다니까. 너도 녹음한 거 들었잖아.”

   현우가 핸드폰을 소진 앞으로 내밀며 녹음된 내용 다시 한번 들어볼래? 하는 손짓을 소진에게 보냈고, 소진은 현우가 내민 핸드폰을 건네받아 테이블 끝, 손이 닿는 가장 먼 곳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재하의 목소리가 담긴 핸드폰을 한동안 바라보던 소진이 혼잣말을 뱉었다.  

   “재하는 나를 벽으로 느끼고 있었구나. 그랬구나.”

  

   상념에 빠진 소진을 팔짱을 낀 채로 의자에 기대 바라보던 현우가 의자를 앞으로 당겼다.

   “이제 우리 미래도 슬슬 그려봐야 하지 않겠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아직.”

   소진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현우에게서 다시 한걸음 물러났다. 지금까지 참고 기다려준 현우에게는 미안했지만, 소진에게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결말이었고, 소진도 그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결말이 지금, 이곳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소진은 현우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가져다 얹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줘.”




   아파트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선 소진은 고개를 들어 8층, 자신의 집을 올려다보았다. 거실 쪽 불이 켜져 있었다. 재하인가. 오늘은 야근이 아닌가 보네. 8층으로 오르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재하를 마음속에서 내려놓으며 ‘당신 너무 재미없고 지루해.’라고 했던 그 날을 떠올렸다. 진심이었다. 그때 재하의 활시위는 단지 느슨해져 있던 게 아니었다. 다시 당기는 게 불가능하도록 끊어져 있었다. 8층에 다 닿았다는 벨이 울리며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소진은 현관문 앞에 잠시 서서 심호흡을 했다. 도어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 앞에 재하가 서 있었다. 소진을 보는 재하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번져 있었고, 소진은 그 미소가 낯설다는 듯 쳐다봤다.

   “현우 만나고 온 거야?”

   재하는 자신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를 거두지 않은  현관 앞에  있는 소진을 보며 물었다.




이번 작당모의 문제文題, '작당모의'는 2부에 걸쳐 연재됩니다. 다음 주 목요일에 2회가 계속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mage by Pixabay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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