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소운 Jan 06. 2022

호랑이의 예리한 시선으로, 소의 우직한 걸음으로

< 작당모의(作黨謨議) 13차 문제(文題) : 호랑이 >

  분명히 내가 그린 그림은 토끼였다. 귀를 쫑긋 세우고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빨간 눈인지 암갈색 눈인지를 반짝이는, 그것은 분명 귀여운 토끼였다. 우리나라 지도상 ‘호미곶’에 해당하는 곳은 토끼의 탐스런 엉덩이에 찰싹 붙은 솜뭉치 꼬리 부분이었다. 김일성과 북한 사람들을 빨간 늑대로 그리던 반공 포스터 그림이 당연했듯 우리나라의 지도는 의심할 여지없이 토끼여야 마땅했다. 국민학교 시절, 70년대 후반의 이야기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으나 토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앞 발을 높이 치켜든 포효하는 호랑이가 등장했다. 우리나라 지도의 모습은 원래 호랑이의 모습이었다고 했다. 원숭이가 진화하여 사람이 됐다는 진화론만큼이나 충격적이었고(물론, “원숭이로부터 사람이 진화했다”는 말은 다윈이 이야기하는 진화론이 아니지만 어렸을 때는 그렇게 알고 있었기에 충격이었다는 것) 100일간의 인고의 시간을 지나 호랑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설화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였다. 토끼가 호랑이로 바뀐 것은 ‘둔갑술’ 같은 단어를 들이밀어야만 수긍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개구리가 왕자로 변하는 마법 이야기에 버금가거나 구미호가 사람으로 바뀌는 ‘전설의 고향’ 속 이야기처럼 기기묘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지도를 호랑이로 표현한 것은 알고 보면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최남선은 고토 분지로가 주장한 한반도 토끼 형국설에 반발하여 1908년 <소년>지 창간호에 한반도 호랑이 지도 그림을 사용하였다.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할퀴며 웅비하는 생기 있는 범 그림 지도에 “진취적 팽창적 소년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과 아울러 생왕(生旺)한 원기의 무량한 것을 남저지(나머지) 업시 넣어 그렸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내용은 국민의 사기가 떨어지고 패배주의에 젖어 있던 식민지 국민에게 힘과 용기가 되었고 황성신문은 우리 대한 지도의 전체가 광채를 발한다며 국민의 지기(志氣)를 배양하고 국가의 지위를 존중케 하게 될 것이라 격찬하였다.


한반도 지도와 고토 분지로가 주장한 토끼그림 지도(좌,중), 1908년 발행된 <소년>잡지 창간호에 사용되었던 호랑이그림 지도(우)


  식민 치하에 있던 1908년에도 우리는 민족의 얼과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는데 해방을 맞은 이후의 우리는 빼앗겼던 민족의 정신을 되찾기 위해 호랑이 지도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였는가. 교육 일선에 있던 교사들은 무슨 이유로 토끼 그림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는가. 고등학교 시절,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가 실린 <소년>지의 내용과 그 잡지의 역사적 사료로서의 중요성에 대해 읽으며 한없이 부끄러워했던 나를 기억한다.

토끼 지도를 그렸던 나를 부끄러워했으며, 그것을 바로 잡아주지 않았던 선생님들에게 분노했으며, 역사의식도 민족의식도 느끼지 못했던 나의 그동안의 무관심과 무지에 어이를 상실했었다.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딴지의 달인들은 기형적으로 허리를 제친 호랑이 그림이 억지스럽다며 그림 하나 바꾼다고 민족정신이 살아나느냐고 반문한다. 지난해 7월, 도쿄 올림픽 선수촌의 첫 현수막, "신에게는 아직 5천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 있사옵니다"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남긴 금신전선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의 패러디) 문구에 이은 ‘범 내려온다’는 걸개를 두고도 수궁가에 나오는 범이 얼마나 멍청한데 우리나라를 왜 하필 호랑이로 표현하느냐, 토끼가 훨씬 낫다며 비아냥 거리는 글들을 보았었다.



  사실 호랑이 그림과 호랑이가 들어간 문구 하나가 용맹과 진취적 기상, 민족정신을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우리나라 지도는 토끼 형상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반도 토끼 그림에서 토끼 귀를 잡아드는 패러디 그림을 보면 일본의 의도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다. 의도는 의도로 대응해야 하며 비유는 비유로 받아치는 것이 맞다. 그래서 호랑이는 우리나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성을 지니고 있으며 귀한 동물이다.




  무인년(1998년) 황금 호랑이의 해였다. 새해 연하장을 한 통 받았다. 호랑이의 기개와 용맹을 믿었던 ‘4·19 시대'를 대표하는 정치인, 이기택 전 민주당 총재(1937년~2016년)가 보낸 것이었다. 연하장에는 그의 좌우명이었던 ‘호시우행’(虎視牛行 호랑이의 눈빛을 간직한 채 소 걸음으로 감) 이 신년 휘호로 적혀 있었다. 이때만 해도 신년이 되면 대통령이나 유력 인사들의 휘호(揮毫)가 신문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고 휘호를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니던 사람들도 있었다.

 “1981년에 전남 순천 송광사를 찾았을 때, 지눌 스님의 비문을 접하고 ‘호시우행’의 뜻을 새겼어요. 호랑이처럼 예리한 눈으로 시대를 읽고 시세를 파악하고 나아갈 때는 소처럼 천천히 우직하게 걸어가라는 말인데 그게 내 좌우명이 되었고 주위에 많이 얘기하고 다닙니다.”

인터뷰 때 그가 했던 말이다. 왠지 힘이 불끈하고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아서였을까. 인터뷰 이후, 나는 ‘호시우행’을 좌우명 17번쯤으로 설파하고 다녔는데, 올해가 마침 ‘흑 호랑이의 해’이고 보니 이 글귀와 그분이 떠오른 것이었다.


  호시우보(虎視牛步)로 쓰기도 하는 이 경구는 1990년 3당 합당을 반대하며 ‘꼬마 민주당’을 창단할 때 뜻을 같이 했던 노무현 前대통령이 2003년, "호시우행"을 개혁 기조의 근본으로 강조하기도 했다. 2019년 정부 시무식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호시우행, 현실을 직시하며, 또박또박 일하자”라고 새해 공직자의 자세를 제안했다.


  휘호 얘기를 하나 덧붙이자면, 새해 첫날 한복을 입은 대통령이 한자어 신년휘호를 쓰는 모습은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볼 수 없게 됐다. 대신 노 전 대통령은 2007년 육로를 통한 방북 때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이라는 한글 휘호를 남겼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대통령의 소통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노 전 대통령은 온라인 팬클럽 노사모 행사 때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이라는 글귀와 ‘사람 사는 세상’ 등을 즐겨 써서 남겼다.


꿈의 학교 학생들과 함께 찾았던 나라기록관의 대통령들의 휘호를 배경으로(좌), 올해 휘호로 받은 우경호소 붓글씨(우)


  새해가 되거나 봄이 오면 좋은 뜻의 글귀를 써서 지인들에게 보내곤 했던 휘호, 즉 붓을 휘두른다는 뜻으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최근 들어 찾아보기 쉽지 않았다. 요즘은 좋은 글귀나 이미지를 형상화한 켈리그라피나 컴퓨터 일러스트 작업을 통해 SNS 상으로 신년 인사를 대신 해왔는데 실로 오랜만에 올해는 신년휘호를 하나 받게 되었다.

‘우경호소(소는 밭 갈고 호랑이는 울부짖다)’ 글귀에 ‘신축년에는 소처럼 열심히 일하셨으니 임인년에는 호랑이 울부짖듯 힘차게 우렁차게 행복하소서’라는 풀이를 덧붙인 휘호였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 것은, 웃어른으로 부터 이런 경구를 전해들으면 세뱃돈을 받은 아이가 된 것 마냥 기분이 사정없이 좋아진다는 것인데, 아주 오랜 전설의 한 조각을 찾아낸 것처럼 온몸이 짜릿해져오는 것이다. 묵직하고 커다란 손이 어깨를 툭툭 치며 “힘내시게나!”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올 해는 호시우행의 경구를 새기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큰 산의 메아리처럼 경구를 전하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미욱한 나는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한심한 지경이니 ‘호랑이처럼 예리한 시선으로, 소처럼 우직한 걸음으로!’를 외며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 표지 사진 출처 : 아이디젠 블로그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매거진의 이전글 땅을 흔드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