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작당모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Jan 06. 2022

땅을 흔드는

< 작당모의(作黨謀議) 13차 문제(文題): 호랑이 >




  호랑이, 본 적 있어? 아니, 사파리 안에서 하품하는 호랑이 말고, 아니 아니, 티브이 속 무섭게 째려보는 호랑이 말고. 진짜, 산에 사는 호랑이. 본 적 없지? 나도 본 적 없어. 당연하지, 이 땅에 호랑이는 이제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데 말이야. 나 어렸을 때 아빠한테 들은 호랑이 이야기에는, 진짜 호랑이가 나왔어. 아빠는 경상도 북부에서 살았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1950년대 말 60년대 초에 정말로 호랑이가 산속에 살았대. 그래서 밤에는 이따금씩 동네로 내려와 아이들을 물고 가고 그랬대. 어른들이 횃불을 들고 쫓아가면 아이를 슬쩍 내려놓고 도망치고, 그래서 앵앵 우는 아이를 데리고 오면 그 아이는 사는 거였대. 호랑이가 끝까지 물고 가면.. 어쩔 수 없이 호랑이 밥이 되는 거였대. 

  그렇게 호랑이를 쫓아가다 호랑이 정면이라도 보면, 꼼짝을 할 수가 없대. 눈에서 불이, 아빠 말로는, 철철 흘러내린대. 무서워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다는 거야. 나는 어릴 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눈에서 불이 철철 흐르는 호랑이를 혼자 상상해보곤 했는데, 좀 무섭기도 했지만, 한 편으론 도저히 상상이 잘 안 되는 거야. 마치 나한테 호랑이는 전설 속 동물 같은, 그런 존재였거든. 내가 사는 세상엔 산 속 호랑이라고는 없으니까. 아빠의 이야기도 마치 지어낸 것만 같고, 아빠가 정말 지어낸 이야기일지도 모르는 거고. 

  어쨌든, 아빠가 해준 호랑이 이야기 중에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게 있는데 뭐냐면,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 살아온 사람이 해 준 이야기였어.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어떨 것 같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이런 대답하는 사람은 꿀밤 때릴 거다. 하여튼, 어떨 거 같아? 산속에서 호랑이를 만나면, 호랑이가 바로 콱 달려들 것 같아? 

  호랑이를 만나 살아온 사람 말로는, 호랑이가 정면으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다가온대. 그러고는 그 큰 발로 철썩, 철썩, 따귀를 때린다는 거야. 혼을 빼놓는다는 거지. 생각해 봐, 큰 호랑이가 다가와서 바로 잡아먹는 게 아니고 큰 발로 뺨만 처얼썩 처얼썩 때린다는데... 차라리 한 번에 콱 잡아먹히는 게 낫겠다 싶어 진다는 거야. 그래서 거의 반 정신이 나간 상태가 되면 물고 간다더라고. 

  아빠가 어릴 때 본, 호랑이 만났다가 돌아온 아저씨도 그렇게 뺨을 맞고 있는데, 꿩 사냥인지 뭔지 모를 총소리가 나서 호랑이가 도망을 갔대. 그렇게 살아 돌아와 이야기를 하고는, 약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동네를 돌아다녔대. 자꾸 호랑이 이야기만 하면서 말이지. 요즘 말로 하면 '트라우마' 이런 거인 걸 거야. 

  사실 나는, 아직도 이런 이야기들이 생각나면 판타지인 것만 같아. 아빠도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라고 하니, 아빠도 실은 본 적이 없는 거지. 들은 이야기들이 살에 살을 붙이고 뚱뚱해지게 되면, 그야말로 어딘가에서는 '지어낸 이야기'가 되어버리니까. 호랑이라니, 21세기에, 비트코인의 시대에 호랑이라니. 하아. 차라리 사파리 하품하는 호랑이가 더 현실적이고, 영화 속 CG 호랑이가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 거지. 


  그런데 말이야, 있잖아, 또 한편으로 난, 호랑이가 아직 우리나라에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해. 왜냐고? 물론 아빠의 이야기 때문이지. 어렸을 때 들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20대 초반에 아빠가 직접 겪은 게 있거든. 아빠는 말을 하다 말고 약간의 침묵을 이어가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고는 '그건 진짜 호랑이야'라고 했는데, 그런 아빠의 말에 성인이 된 나도 끄덕거릴 수밖에 없었어. 그건 정말, 호랑이만이 가능한 거였거든.






  아빠는, 종교에 심취하는 스타일이랄까, 영험하다면 종교 가리지 않고 찾아가서 예배, 미사, 예불 참석해 보고 말씀 듣는 그런 사람이야. 젊은 시절 몸이 아팠는데 이 약 저 약 다 써 봐도 안 들어서 전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어. 기도도 해보고 산약초도 먹어보고, 그러면서 종교적인 체험도 해 보고. 나는 아빠가 거기서 겪은 신기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며 자랐고. 어떤 것들은 '에이, 너무 갔네' 싶은 이야기들도 꽤 있었지만, 하여튼 아빠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어. 

  아빠가 한참 경북 봉화의 한 작은 사찰을 다닐 때가 있었어. 봉화가 아닌가, 하여튼 경북의 어느 작은 절이랬어. 나도 좀 가물가물해. 거기에 깨달으신 스님이 계시다고 자주 가서 이것저것 묻고 기도도 하고 그러셨어. 그때 아빠가 해 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게 아빠의 전생 이야기랑... 아, 머지않아 미국에 흑인 대통령이 나올 거라고 그랬어. 진짜 그 이야기 듣고 속으로 '말도 안 돼,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라니'하며 '아빠 말은 대충 알아서 걸러 들어야겠다'라고 생각했지. 그리고 몇 년 후 진짜 그렇게 돼버려서, 그때 아빠가 또 무슨 말을 했더라 열심히 복기해 봤지만 떠오르는 건 '호랑이' 이야기뿐이었어. 


  내 기억에, 그건 겨울이었어. 아빠가 그 절에서 밤새 기도를 하고 새벽녘에 잠도 안 오고 해서 방에서 나왔대. 절 뒤로 산에 소복이 눈이 쌓여있었지. 그거 알지, 새벽녘 눈은 흰 파란색이라는 거. 새벽의 색이 눈과 섞이면 파란색이 된다는 거. 사실 눈의 진짜 색은 파란색인데, 햇빛에 하얗게 질려서 하얀색으로 보이는 건지도 몰라. 하여튼 눈이 소복이 내린 뒷산이 한눈에 들어와서, 산이나 한 번 가보자 해서 슬슬 오른 거지. 어휴, 아저씨가 겁도 없어 진짜. 

  손은 뒤 허리에서 맞잡고 흰 눈에 발자국이 찍히는 걸 보며 천천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며 올랐대. 겨울 새벽 공기 특유의 청량함을 폐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말이지. 새벽이 얼린 눈을 밟는 소리 말곤 그 어떤 소리도 없었대.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들었는데, 생각지 않게 꽤 들어왔는지 산 중간 즈음까지 온 것 같았대. 주위는 나무뿐인데, 앞은 어둡고 뒤돌아보니 발자국도 묻혀 있고 어스름 속에 절간도 희미하고. 순간 덜컥 겁이 나더래. 조금만 더 가볼까 그냥 내려갈까 어쩔까 그러고 있는데, 그때였대. 산속의 검은 공간에서, 그게 소리였는지 울림이었는지, 떨림이었는지 흔들림이었는지, 정체를 숨긴 묵직한 진동의 주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아빠도 모르겠더래, 우우우우우우 우웅 하는 소리가 땅을 타고 왔대. 땅을 뒤덮은 눈도 흔들리는 것 같고 옆의 나무도 떨리는 것 같았대. 

  아빠는 직감적으로 그 소리의 출처를 알았대. 그건 호랑이였다는 거야. 호랑이 말고는 그런 소리를 낼 수가 없대. 산의 주인, 눈에서 불을 뿜는 영물(靈物). 돌연 온 몸의 털이 삐죽이 솟더래. 꼼짝을 할 수 없었다는 거야. 신비로움과 공포, 영험함과 괴이함이 산의 어둠 끝에서, 공제선(空際線) 언저리 그 곳에서 전해져 오더래. 

  한 발짝도 아니 몸의 터래기 하나 움직일 수 없었던 아빠는 문득 호기심이 생겼대. 어쩌면, 정말 어쩌면 내 눈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조금은 무섭고 용감한 호기심. 한 발 더 떼볼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이번에는 하늘마저 흔드는 그런 소리였대. 우우우우우우우 우웅. 이게, 아빠 말로는, 어떤 물리적 존재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는 거야. 어떤 형체를 갖는 물체가 공기와 진동하여 나는 그런 소리가 아니고, 영혼이 내는 소리랄까, 하늘이 작심하고 내는 소리랄까, 그런 생각이 들더래. 더불어 이건 '경고'였다는 거야. 더 이상의 접근은 불허한다는 그런 경고. 

  아빠는 어둠의 정면을 바라봤대. 이상하게 옆의 나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푸르스름한 새벽이었는데, 눈앞은 어둠을 잡아먹은 어둠 뿐이었다는 거야. 그 어둠에서는 무엇이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신이 만들어 둔 창고 같은 그런 어둠.

 



  아빠는 그 어둠을 앞에 두고 고개를 숙였대. 알 수 없는 존재이자, 알 것만 같은 그 존재에게 인사를 올려야 할 것 같았다나. 그 존재와 인간의 경계를 지키는 것, 결계(結界)를 함부로 넘지 않는 것, 그것이 아빠의 일이었던 것처럼 그렇게 인사를 올리고 아빠는 돌아섰대. 


  절에 돌아와 스님께 아빠가 방금 겪은 걸 말씀을 드렸대. 스님의 작은 미소 뒤에 나온 말이 아빠를 확신하게 했다지.

"그가 이곳을 지켜주고 있는 겁니다."



  뭐, 호랑이가 아닐지도 몰라. 산신령일지도 모르고, 산에 숨어 사는 사람일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아빠는 아주 철석같이 믿고 있더라고, 그건 바로 호랑이라고. 나는 아빠의 표정과 눈빛에서 알 수 있어, 아빠가 얼마나 단단한 믿음으로 말하고 있는지. 


  이야기는 이게 다야. 진짜 호랑이를 본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미안해. 나도 들은 게 이게 다라 어쩔 수가 없네. 그런데 있잖아...... 나도, 웃기긴 하는데, 나도 어둠 뒤에 몸을 숨긴 그것이 호랑이일 거라고 믿어. 그것이, 조선반도의 마지막 호랑이일 것만 같아.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은 채 영원히 그곳에서 살아있을 것만 같아. 경북의 어느 산을 주관하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이들에게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그렇게. 그건,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도 아니고, 뺨을 철썩철썩 때리는 행위도 아니고,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영혼에서 어떤 떨림을 보내는 거지. 그 힘만으로 땅을 울릴 수 있고 세상을 흔들 수 있는 그런 존재, 이러한 힘을 지닌 자, 호랑이 말고 뭐가 더 있을까 싶은 거지. 

  그래서 나는 가끔 티브이에서 밤의 산이나 새벽 녘의 산의 모습을 볼 때면 여지없이 그 호랑이가 생각나는 거야. 아직 그 산에서 그곳을 지키며 그렇게 있을 호랑이. 그의 안녕을 빌게 되는 거지. 영원히 들키지 않길 바라며. 






  '호랑이'라는 글제가 주어졌을 때 내가 쓸 건 이 것뿐이었어. 바쁜 일상과 아이들 방학 중에 호랑이는 수시로 날 찾아왔어. 설거지하는 물이 그 산 어디쯤 있을 폭포 같았고, 아이들 눈에서는 가끔 불이 콸콸 쏟아지는 것 같았어. 세탁기나 건조기 돌아가는 소리는 호랑이가 땅에 발을 디디는 소리처럼 다가왔고, 스테이크를 먹다가도 '그놈한테 물린 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야말로 호랑이 한 마리 키우는 기분이었다니까. 

  호랑이 해가 된 지 5일이 지났어. 매해 바람이 목련을 틔울 때 즈음이면, 열두 동물 중 어떤 동물이 올해의 주인공이었는지 생각나지 않았어. 손에 쥐이지도 않게 헛된 일상의 부지런함은, 그렇게 새해 초의 마음가짐과 다짐을 바람에 흘러가게 하더라구. 

  그런데 올해는 다를 것 같아. 목련나무 옆에 호랑이가 앉아있을 것만 같아. 아이를 학교 보내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호랑이가 타고 있을 것 같아. 여름더위에 호랑이는 에어컨 아래 늘어져 있을 것 같고, 가을낙엽을 바스락 밟으며 아이들의 하교길, 하원길을 엄호해줄 것만 같아. 그렇게 신성한 동물을 옆에 데리고 2022년을 보내게 될 것만 같아. 

  나의 호랑이가 문득 우우우우 우웅 하고 땅을 울리면, 나는 나의 생각을 바로 잡고 생활 속에서 흐트러지는 행동에 경고를 보낼 거야. 그렇게 나의 마흔이 지나가면, 호랑이와 함께한 멋진 나이였다고 뒤돌아볼 수 있을 것 같아. 


  나, 땅이 흔들리는 한 해를 보낼 거야. 울렁거리는 흔들림 속에서, 내 영혼이 일상에 묻히지 않도록 뺨을 철썩, 처얼썩 때릴 거야. 그렇게 깨어난 의식으로, 불이 철철 흐르는 눈빛으로 글을 읽고 쓸 수 있도록, 



지켜봐줘, 나의 마흔, 나의 호랑이.






사정상 브런치와 거리두는 연말연초를 보냈습니다. 이웃 작가님들을 찾아뵙고 새해 인사를 건네지 못했습니다. 늦었지만, 2022년 호랑이해 좋은 일 가득한 한 해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매거진의 이전글 백일 간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