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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현 Jan 06. 2022

백일 간의 기억

< 작당모의(作黨謀議) 13차 문제(文題): 호랑이 >

   먹는 건 그런대로 괜찮았어. 마늘하고 쑥뿐이었지만, 그래도 신선한 것들로 넉넉하게 준비했더라고. 안 그래 보이겠지만, 내가 먹는 것에 그다지 집착하지는 않아. 예전에 떡 하나만 받고 그냥 돌려보냈던 아주머니도 있었거든. 떠도는 이야기로는 내가 떡 하나로 만족하지 않았다고들 하는데 그거 다 거짓말이야. 그 아주머니 내가 잡아먹기라도 했다면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하는 말이 세상에 퍼질 일도 없었겠지. 그거 실제로 내가 한 말이었거든. 그 아주머니네 오누이가 나를 피해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 해와 달이 되었다는데, 그 말 듣고는 어이가 없더라고. 그것들 그냥 매 끼니 떡만 먹는 게 싫다고 가출한 거야. 철딱서니 없는 것들.


   나보다는 곰이 걱정이었어. 그 녀석 식탐이 좀 있었거든. 동굴 들어오기 전부터 다른 건 다 괜찮으니 꿀만 한 단지 넣어달라고 사정했었는데 그게 어디 될 일인가. 그럴 거면 개나 소나 다 사람 되지. 꿀단지 안 넣어준 걸 동굴 들어와서 알고는 잔뜩 삐쳐서 쑥, 마늘은 거들떠도 안 보더니만 한 일주일인가 지나서야 배가 고팠는지 그제야 꾸역꾸역 먹기 시작하더라. 꿀 찍어 먹으면 맛있는데, 꿀 찍어 먹으면 맛있는데, 하면서 한 손에는 마늘을, 다른 한 손에는 쑥을 한 움큼씩 쥐고 입속에 씹지도 않고 욱여넣는데 그 모습 보는 게 짠하더라고.


   한 보름쯤 되었을까. 아침부터 비도 추적추적 오고 하니 나 장가가던 날 생각도 나고, 마누라 두고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건가, 이러고 있으면 정말 사람이 되긴 하는 건가 하며 심란해있는데 한쪽 구석에서 마늘을 껍질째 먹고 있던 곰 녀석이 별안간 벌떡 일어나 손에 쥐고 있던 마늘을 바닥으로 내팽개치더니, 난 이렇게 못 살겠어, 밖으로 나갈 거야, 마늘 냄새 지긋지긋해, 하며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래, 곰 녀석 이제 포기할 때도 됐지. 너 보름이면 생각보다 오래 버틴 거다, 라고 했더니, 그 녀석, 벌떡 일어난 채로 밖으로 나가지는 않고 내 눈치만 살살 보는 거야. 넌 안 나가냐? 안 지겨워? 하길래 난 됐어, 지금은 안 나가, 나 비 맞는 거 싫어해, 했더니 그 녀석 은근슬쩍 다시 자리에 앉더라고. 그러고는 내 눈을 피해 괜히 밖을 한번 쳐다보고는 그렇지? 이 날씨에 비 맞으면 감기 걸리겠지? 나갈 때 나가더라도 비는 그쳐야겠다, 하면서 냄새 지긋지긋하다던 마늘을 다시 한 줌 집어 입에 넣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그날 곰을 데리고 동굴을 나왔어야 했나 싶기도 해. 사실 그 녀석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거든. 재주를 열심히 부리면서도 제 몫을 사람들에게 죄다 빼앗기는 모습이 딱해서 너 그러지 말고 사람 돼라, 네가 사람만 되면 재주는 네가 부리고 돈은 다른 놈들이 챙기는 꼴 더는 안 볼 것 아니냐고 다그쳤는데, 그때 곰 녀석이 내 말에 넘어가지만 않았다면 아마 지금도 계속 재주나 부리면서 잘 살았을 거야. 그때는 사람 되라는 말이 곰 녀석을 위하는 거라 생각했었지. 나도 일이 이리될 줄은 몰랐어.


   곰 녀석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동굴에 들어간 지 한 달쯤 되었을 때부터였어. 마늘을 먹다 말고 멍하니 위를 쳐다보면서 실실 웃다가 맥락도 없이 어릴 적 이야기를 하는 거야. 가족이 한집에 모여 살았었는데 아빠곰은 뚱뚱했었고, 엄마곰은 늘씬했다던가. 그러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큰 덩치로 어깨를 들썩이더니 난 그때 너무 귀여웠어, 으쓱으쓱 잘한다, 하며 날 보고 씩 웃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소름이 끼치던지. 이대로 두면 정말 큰 일이라도 나겠다 싶어서 안 되겠다, 이제 그만 나가자, 그냥 다시 재주나 부리면서 살자, 했더니, 아니야, 난 여기 있다가 이름을 남길 거야, 넌 가죽을 남겨라, 호랑이 너도 제 말하면 온다잖냐. 도대체 횡설수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듣지를 못하겠더라고.


   그 일이 있고 열흘이 더 지난 오후에 곰 녀석을 혼자 두고 동굴을 도망치듯 나왔어. 며칠 전부터 웅담이 몸에 그렇게 좋다더라, 내 발바닥으로 만든 요리가 그렇게 고급이란다, 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자기 발바닥을 보며 침을 질질 흘려대는 거야. 그럴 때마다 내가 마늘이랑 쑥으로 그 녀석 입을 틀어막았었는데, 그날 그 미련한 곰 녀석이 결국 자기 발바닥을 이빨로 뜯어버렸어. 뜯어낸 살점을 오물오물거리다가 땅에 퉤 뱉어버리고는, 피가 철철 흐르는 발바닥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초점 없는 싸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러는 거야. 너 이리 좀 와 볼래? 호랑이 연고가 필요하겠어.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지. 처음부터 사람이 꼭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이제 슬슬 쑥과 마늘이 질리기도 했었거든. 다만 곰을 그 동굴에 혼자 두고 나왔다는 게 계속 마음에 걸렸어. 재주나 넘던 순진한 녀석을 꼬셔서 동굴로 데리고 들어간 게 나였으니까. 그렇게 미쳐버릴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사람 되자며 동굴로 들어가자고는 안 했을 거야. 백일이 지나도록 동굴 밖에서 계속 지켜봤는데, 결국 곰은 동굴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


   곰이 결국 사람이 되어 아들을 낳았다는 소문을 들었어. 아들놈 이름이 단군이라고 했던가. 아들을 낳은 곰 녀석이 그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그래서 어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들을 수가 없었어. 오로지 잘난 아들 이야기만 세상에 떠돌았지. 그 곰 녀석, 아마 아들만 낳고는 버려졌을 거야. 아들의 장래에 있어 미쳐버린 엄마는 장애물로 여겨졌을 테니. 그 녀석 생각만 하면 지금도 맘이 참 안 좋아. 죽지 않고 어딘가에서 잘 살고는 있는 건지. 그 좋아하던 꿀 실컷 먹고는 있는 건지. 그 이후로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사람은 내가 잡아먹지를 않아. 혹시라도 사람으로 변한 그 곰 녀석일까 봐서.







4인 4색, 결 다른 사람들이 글쓰기 위해 모였습니다.

제대로 한번 써보자는 모의이며, 함께 생각을 나누며 어울려 살자는 시도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매거진에 글로 작당 모의할 예정이니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자, 그럼 수작(手作) 들어갑니다~,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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