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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05. 2022

삼팔선의 슬라브 여인

나라는 평안해지겠지만 세상은 그들을 잊겠지


  집에서 15분 거리에 삼팔선 휴게소가 있다. 작년 9월 이사 와서 처음 이곳을 스쳐 지나가다 입을 틀어막았다.

  "삼팔선? 내가 아는 그 삼팔선? 휴전선도 아니고 삼팔선?"

  옆에서 운전하던 남편은 웃으끄덕거렸다. 그러고도 한동안 소름 비슷한 것이 내 몸에 머물렀다. 삼팔선이라니...... 국민학교 시절인가 잠시 배우고 더 이상 들을 일도 없었던 단어, 삼팔선. 한국 근현대사에서 약 3년여 시간 동안만 실질적인 힘을 가졌던 단어, 삼팔선. 그 삼팔선의 실체를 처음으로 보았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 형상이었다. 형상이라기보다 몰골에 가까웠다. 삼팔선 그리고 '휴게소'.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처럼 모던하고 깔끔한 그런 휴게소가 아니라, 90년대 휴게소처럼 '매점'의 형태였다. 38선 휴게소라는 간판도 그 명칭처럼 낡아 있었다. 한 때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명칭과 위치였을 텐데, 이제는 그냥 국도의 작은 휴게소로 남아 있었다.





  '엄마, 삼팔선이 뭐야?'라고 자주 묻던 때가 있었다. 휴전선이 있는데 삼팔선도 있었다니, 어린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휴전선이 생기기 이전에 휴전선처럼 있던 거야. 휴전선 전에 왜 휴전선처럼 있어야 했어? 육이오 전쟁이 나기 전에 선이 필요했거든. 그러니까, 왜 선이 필요했어? 미국이랑 소련이 선을 그어야 했어. 미국이랑 소련은 왜 선을 그었어? 음... 아빠한테 물어봐. 대부분의 대화는 이 문장, '아빠한테 물어봐'로 끝났다. 아빠에게 처음 던진 질문 역시 같았었다. 아빠, 삼팔선이 뭐야? 아빠는 엄마와 비슷하게 대답하다가 씩 웃으시곤, '학교에서 배울 거다' 정도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도대체 휴전선과 삼팔선이 왜 따로 있어야 했는지, 어린 내가 이해하기엔 뒷이야기가 꽤 복잡했다.


  그랬던 내가 자라 군인의 가족이 되었다. 삼팔선과 휴전선의 구별은, 지금 돌이켜 보면 나름 이른 나이에 가능했다. 왜 휴전선이 지금의 형태로 그어지게 되었는지도 잘 알고, 한반도 지도를 앞에 두고 휴전선을 그으라 해도 대충 그을 수 있는 정도로 휴전선에 대한 인식은 나름 명확하다. 그런 나에게 삼팔선은, 역사 속 단어였다. 근현대사보다 더 깊은 층위, '역사' 정도에 포함되는 단어. 그런 삼팔선이 내 주거지 근처에 있다니. 다시 한번 내가 군인가족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내가 군인가족임을 피부로 느끼는 또 다른 순간은, 이른바 밀덕(밀리터리 덕후) 남편의 유튜브 재생 목록을 함께 볼 때이다. 남편의 영상 목록은 대부분 전투기나 잠수함, 전차, 아니면 전술이나 전략, 세계사에 터닝포인트가 되었던 전쟁 다큐멘터리 같은 것들로 채워져 있다. 큰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내가 '잠깐, 다시'를 외친 영상은 '노래'였다. 특유의 서글픔이 서려 있는 음률이었다. 이런 노래가 밀리터리 관련에 있다고?

  알고 보니 소련의 군가였다. 군가? '멸공의 횃불'이나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이런 느낌이 군가 아닌가? 영상을 다시 보고는 나는 한동안 울먹였고, 남편은 그런 내 어깨를 토닥였다. 내가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흐느껴서 우리는 한동안 대화 없이 그 영상을 몇 차례 더 보았다. 군인의 저주받은 운명, 그런 군인과 삶을 함께 하는 여인의 한(恨), '슬라브 여인의 작별'이었다.


조국의 깃발은 휘날리고 요란한 천둥소리로 마음마저 불안하네
안갯속 녹아내리는 기념비 앞에서 새벽의 첫 전투를 맞이하네
사랑하는 어머니 여동생 그리고 아내는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나와 함께 줄지어 해가 지는 곳까지 나를 배웅해주었네

내 아들들과 조국의 병사들과는 이젠 작별이구나
혹독한 싸움이 될 테니 다시는 못 돌아오겠지
군복은 눈물에 젖고 하늘은 무심도 하네
나가 싸워라 조국을 위해 저주받은 군인의 운명을 위해

주님에게 한결같이 빕니다
그들이 부디 살아 돌아오게 해 주시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문을 두드리며 들어오게 해 주세요
저주받은 나라의 자유를 지키는 대가는 비싸기만 하네요
힘든 시간을 보낸 당신은 상처 투성이네요
남편과 형제들 무명용사들과는 작별이구나
혹독한 싸움이었으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겠지
승리의 봄날이 오면 그대들 목숨의 대가로
나라는 평안해지겠지만 세상은 그들을 잊겠지
나라는 평안해지겠지만 세상은 그들을 잊겠지

해질 무렵 슬라브 여인들은 그대가 돌아올 거라 믿으며
일몰이 지는 어두운 곳에서 이렇게 그대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들은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네
그들은 거대한 파도에도 굳건하다네
조국은 너희들을 잊지 않으리 알려지지 않은 영웅인 너를
자작나무와 화강암에 둘러싸여 전몰장병들의 넋을 위로하며
전장의 군인들은 위대한 군복 차림으로 저렇게 서 있네
전장의 병사들이 위대한 군복 차림으로 저 멀리 서 있네




  러시아 전쟁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명이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무수히 스러져간 것만은 분명하다. 그만큼 슬라브 여인들은 울었다. 다시 오지 못할 이들을 보내며,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며 울었다. 70년 전 전쟁을 겪은 우리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다. 남자들은 전장에서 스러져가고 여인들은 돌아오지 못할 그들을 기다리며 울 뿐이다.






  2022년이라는 달력의 숫자가 무색하게 지구 상 저편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침공을 한쪽이나 당한 쪽이나 모두 슬라브 민족이다. 침공을 위해 군인을 보낸 여인도, 국가 수호를 위해 군인을 보내야 하는 여인도 모두 슬라브 여인들이다. 그들의 작별, 그들의 눈물을 나는 지금 삼팔선 근처에서 보고 있다. 이 무슨, 저주받을 운명의 전쟁이란 말인가.


슬라브 여인의 작별, 출처 세계일보


  명분 없는 전장에서 군인들은 오늘도 죽어가고 있고, 그들을 기다리는 여인들의 눈물은 어제의 눈물 위에 쌓여가고 있다. 아직 죽을 때가 아닌 군인들이 눈밭 위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가고 있다. 승리의 봄날을 맞게 될 때 나라는 평안해지겠지만 세상은 그들의 피와 생명을 잊을 것이다. 우리는 고작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할 뿐이다.

  세계시민의 마음으로 함께 애달파하고 있으나, 나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내가 '군인가족'이기 때문이다. 전쟁이 나면 남편은 목숨을 바치러 나가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문을 열고 들어오게 해 주길' 기도하는 것이다. 아빠를 울부짖는 아이들을 안아주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문득, 전쟁이란 그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껏해야 세계사에 몇 줄의 기록으로 남고 잊히게 될, 저주받은 눈물의 서사.


  70년 전 아직 삼팔선일 때, 지역에 따라 이쪽에서 저쪽으로 고구마를 던져주고 감자를 건네는 정도는 괜찮았다고 한다. 그랬던 이 땅에 전쟁은 상처 같은 휴전선을 남겼다. 우리의 정신과 사상과 정치와 이념을 모두 얼려 버렸다. 우리 안의 휴전이라는 말이 도태되고 있을 때 슬라브 여인들은 울기 시작했다. 전쟁은 죽은 역사가 아니라고 그들의 눈빛과 울음이 알려주고 있다.


  이 밤, 남편은 당직 중이다. 밤을 새워 적의 동태를 살필 것이다. 그가 지키는 평화를 전제로 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빌고 있다. 슬라브 여인들의 눈물이 그치기를 기도하고 있다. 전몰장병의 넋을 위로하는 군복 차림의 군인들을 더 이상 볼 일이 없기를 바란다. 그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 문을 열 때 그들의 군복에 피가 묻어있지 않길, 그저 단정하길 바란다. 군인은 최소한의 치안을 위해 존재할 뿐 전쟁을 치르기 위해 존재하지 않길 바란다.

  내일 아침 당직을 마칠 남편의 눈빛에 약간의 피로만 깃들어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같은 의미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일상의 피로' 이외 그 어떤 것도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된 신념이나 이념이 우리에게, 우리의 지도자에게 깃들게 두어서는 안 된다. 적의나 적개심 같은 것을 걷어낸 슬라브 인들의 평화가 빨리 찾아오길 바란다.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이곳 삼팔선 근처가 너무나 고요해서 더 수치스러워지는 밤이다.





* 대문 출처: 프레시안 뉴스 <남쪽에서 38선을 넘어본 적이 있는가>


**러시아어 번역이 심히 '창의적'이라고 논란이 있지만, 전쟁의 암울함을 문학적으로 표현한 가사를 나누고 싶어 이 영상을 채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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