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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Sep 17. 2021

숟가락이 떠받치는 무사함

무사한 날들 속에 무사한 명절이

  일종의 경고였다. 시어머니가 빨리 눈치채라고 보내준 경고를, 신혼의 며느리는 그저 ‘객관적 사실의 나열’ 정도로만 받아들였다.

  “몇 년간 큰아들이랑 명절을 같이 지내본 기억이 없다. 명절날마다 부대 밥을 먹고 있으니. 나도 아들이랑 명절 좀 같이 보내보고 싶다.”

  시어머니의 이 말이 실체적 힘을 갖고 내게 온 건,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추석 때였다. 나는 삼일을 꼬박 시댁에서 홀로 보냈다. 고부지간에 어려울 것이 없었던 것은 순전히 시어머니의 배려 덕분이었다. 다행히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시어머니 또한 ‘알아만 주어도 되었다’라며, 낯선 시집에서 첫 명절을 보낸 며느리를 위해 사실상 모든 명절 준비를 혼자 맡으셨다.

  해가 바뀌고 첫 명절인 설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남편은 명절 당일 전날 밤에 부대에 대기해야 한다고 나가더니 명절 당일도 오지 못했다. 처음보다는 괜찮았지만, 여전히 낯선 시댁에서의 명절이었다. 일찍 가정을 이루어 두 딸을 둔 시동생 가족은 화목해 보였다. 나 혼자 올리는 세배 인사는 그들과 비교되어 더욱 외로웠다. 간신히 참은 눈물이 화장실에 있는 동안 터져 나와 괜히 세수를 여러 차례 해야 했다.   

  연휴 마지막 날 들어와서 잠만 자는 남편의 등을 보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이 부대는 남편 없이는 명절을 보낼 수 없는 건가, 나랑 명절을 보내기 싫은 건가, 부대에서 주는 명절 음식이 그리 맛있단 말인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리도 바쁘단 말인가.  

  결혼하고 두 번째 맞는 추석에는 마음을 비웠다. 다행히 남편은 명절 당일만 자리를 비웠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 스스로가 ‘언젠가는 명절을 같이 보내는 날이 오겠지, 통일보다는 빨리 그런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이듬해 설이었다.

  혼자 세배를 올렸던 이전 해와 달리, 두 번째 설에는 나와 남편과 뱃속의 아이까지 함께 세배를 올렸다. 기분이 좋았다. ‘가족’이라는 말이 나와 남편 사이에 있었다. 행복한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는 중에 남편의 폰이 울렸다.

  “충성!”

  “네! 네, 알겠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일어서며, 남편은 들고 있던 숟가락도 놓지 못한 채 통화를 하며 뛰쳐나갔다. 날이 추웠는데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못했다. 언제 오냐는 나의 말에 대답은커녕 전투화도 제대로 묶지 못하고 나서던 남편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뱃속 아이가 하릴없이 발길질을 해댔다.

  남편은 그날 밤늦게 들어왔다. 저녁도 먹지 못했다기에 전 몇 점을 내어주었다. 미안하다며 잠이 드는 남편의 노곤한 얼굴에서 그제야 내가 ‘군인 가족’임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라를 지킨다는 것, 가족과 이웃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게 되었다. 명절이나 생일, 기념일 같은 것을 늘 부차적인 것으로 두어야 하는 삶, 삶의 영역에 사적인 것보다 공적인 것을 먼저 두어야 하는 삶이 군인과 그 가족의 것이었다. 우리의 일상이 무탈했던 이유는, 명절마다 뛰쳐나가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등을 묵묵히 지켜보는 가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나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 이러한 삶의 태도를 명절마다 배울 수 있었다.

  뱃속 아이에게 군인 가족으로서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자주 말해 주었다. 덕분에 푸념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가짐을 아이를 키우며 동시에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나서인지, 아니면 미안함 때문인지 모르겠다. 남편은 그날 이후 6년 동안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명절을 함께 보내주고 있다. 여전히 많은 문자와 통화로 바쁘지만 몸은 가족의 곁에 있다. 끊임없이 연락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이제는 내가 먼저 물어보고야 마는 것이다.

  “지휘통제실 가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남편은 으레 기특한 표정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는다.

  “아휴, 지금 이렇게도 충분히 상황 통제가 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전쟁 날 것 같으면 미리 말해 줄게요.”  

  

  올해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오랜만에 당직 일정이 잡혀 있다. 군인가족으로 먹은 ‘짬밥’이 8년째이다 보니, 이제는 명절 당일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 자체에 감사하게 된다. 헬기부대에 있는 남편에게 괜히 한 마디 하게 된다.  

  “당직날 안 좋은 일로 헬기 뜰 일 없었으면 좋겠네요. 명절 잘 마무리할 수 있게.”    

    

  매년 두 번의 명절을 치를 때마다, 6년 전 급히 뛰쳐나간 후 밤늦게 돌아온 남편의 전투복 주머니에서 나온 숟가락이 떠오른다. 음식과 우리 몸을 이어주는 수저처럼, 외부의 위협과 우리 일상의 사이에 무용(無用)해 보이는 그들이 있다. 수저는 스스로의 유용함을 식사 내내 드러내지만, 그들의 유용함은 끝내 드러낼 수 없다. 그들이 쓸모있는 순간은 이미 우리의 일상이 무너지는 때이기 때문이다. 무용해 보이는 이들이 계속 무용해보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일이다.  

  우리는 그 숟가락 사연에 기대어 모든 명절을, 모든 순간을 무사히 지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서 일상의 평안과 안전을 위해 밤을 새우는 이들이 있는 까닭에, 더불어 명절 동안 그들을 안보의 현장으로 기꺼이 내보내는 가족들이 있는 까닭에 이번 추석 역시 틀림없이 무탈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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