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라고 대답하고 두어 번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어요. 저도 알아요. 그나마 가까운 곳에 말 통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사 간다고 하니 아쉬워서 하는 말이라는 것을요. 저 역시 아쉬워요. 새로운 곳에 가면 친구도 아는 이도 없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해요. 이 곳에서 겨우 붙인 정을 억지로 떼어내고 그 마음을 다른 곳에 붙여야 해요. 어느 것 하나 쉬운 과정이 없어요. 그래도 어떡해요. 군인가족에게 이사는 숙명인 것을요.
자라면서 주변에, 친구나 친척 중에 군인이 없었어요. 그래서 군인가족의 삶에 대해 아는 것 하나도 없이 결혼했어요. 결혼하고 나서 남편의 후배나 동료를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려 하면 첫 번째로 돌아오는 대답이 '이사 많이 해야 하잖아'였어요. 그래서 군인가족은 이사를 많이 다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래서? 아니, 이사는 다들 많이 하잖아? 나도 강원도 산골짝에서 서울로 이사 왔고, 서울에서도 몇 번을 이사했고. 전세 살면 기본 2년에 한 번씩 이사에 대해 생각은 해야 하잖아? 이사를 하지 않아도, 어쨌든 이사에 대한 고민은 해야 하잖아? 다들 그렇게 살고 있는 거 아니었나?라고 생각하며, 이사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어요.
군인가족의 이사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나라에서 가라는 곳으로 가야 해요. 전국 어디든 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짧으면 1년, 길면 3-4년(이런 경우는 많지 않아요) 단위로 끊임없이 이사를 다녀야 해요. 집 걱정은 없다곤 하지만, 집의 상태와 나오는 시기에 대해선 걱정해야 해요. 집이 나오면 군말 않고 가야 해요. 집들은 대부분 70년대에 지어졌어요. 요즘은 전에 비해 집 사정들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많은 집들은 곰팡이칠에 노 엘리베이터에 창틀 스카치테이프 찍찍! 이사비용만 해결해 주고(70인가 90%) 도배장판 같은 건 알아서 해결. 어쨌든 그렇게 또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을 해나가야 해요.
어린이집 적응과 가까운 식자재마트와 소아과 병원을 알아 두고, 개인적으로는 도서관과 괜찮은 마라탕 집을 알아놓고 나면 1단계 적응은 완료예요. 2주 정도 지나면 집도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고 주변 환경과 내 마음까지 대부분 적응해요. 이런 이사를, 군인과 결혼하고 4번을 했어요.
운이 좋은 건지 어쩐 건지 잘은 모르겠지만, 결혼하고 경기도에서만 지냈어요. 강원도 전방 쪽에서 지내면서 산책하다 뱀 정도 나와 줘야 찐 군인가족이 되는 거라는데, 그렇게 따지면 저는 어디 가서 군인가족 명함도 못 내밀어요.
경기도 남양주 신혼집 근처에는 전국 최초로 시립 도서관 어린이자료실이 뽀로로도서관이었어요. 개관 당시 꽤나 열심히 홍보했지요. 그 도서관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국가 최대 규모의 수목원인 '광릉수목원'이 있어요. 밤에는 왕숙천을 따라 산책도 하고 주말에는 고모리 저수지로 나가 오리배 구경도 하고 왔어요. 서울 강서권에서만 살던 제가 경기 북부의 매력에 흠뻑 빠져 지냈어요. 신혼을 지낸 곳이라 유난히 예쁜 기억이 많은 곳이에요.
첫째 임신 중기에 남편 부대 이동으로 광명으로 이사 오게 되었어요. 광명, 친정과 가까운 곳이었는데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요. 아, 7호선이 지나가는 곳이구나. 그러나 나의 두 번째 집은 7호선과는 큰 관련이 없는 동네였어요. 광명에서 살아보지 않았다면, 광명이 지역번호 02를 쓴다는 사실은 영원히 몰랐을 거예요. 서울과 근접한 곳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있다는 것, 꽤 큰 규모의 '동굴'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 서울 남부의 테러 상황에 대비하는 '수도방위사령부'의 한 사단이 광명에 있다는 사실은 알지도 못한 채 살았을 거예요. 집 근처에 이케아와 롯데아웃렛이 있어서 임신 말기에 걸어서 이케아와 아웃렛을 산책 다녀오고 했어요. 우리나라 1호 이케아였기 때문에 주말마다 교통대란이 일어났는데, 저는 평일 밤에 남편이랑 '이케아나 다녀올까' 하며 가서 쇼룸을 둘러보고 오곤 했어요. 광명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였어요.
광명에서 지내는 동안 또 다른 즐거움은, 어디든 교통편이 좋아 드라이브 다녀오기 좋은 것이었어요. 우리 가족은 가까운 선유도 공원, 보라매 공원, 멀게는 송도와 파주를 즐겨 갔어요. 송도 센트럴파크에서 놀고 집에 오는 길에 소래포구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쥐포를 사 오곤 했어요.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사진 찍고 근처 맛집을 들르는 것도 큰 기쁨이었어요. 모든 곳이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었어요. 첫 아이와 그곳들에서 찍은 사진들이 유난히 많은 이유예요.
송도와 헤이리마을
'천당 아래 분당'과 가까운 곳이었으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성남 집은 지금까지 있었던 집 중 가장 오래되었어요. 분당, 판교와 가까운 곳에 지내면서, 물은 늘 최소 1분 이상 틀어놓은 이후 사용할 수 있었어요. 녹물이 빠지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서울과 분당의 경계선에 살았지만, 배달 음식은 짜장면만 올 수 있었어요. 피자 배달도 불가능했어요. 성남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며 지냈어요. 그러나 차로 10분이면 판교였어요. 대형 백화점이 있었고 아이와 자주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어요. 주말에는 예쁜 율동공원, 잠실 아쿠아리움을 갔어요.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강남권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각종 편의시설과 대형 병원이 생활권에 있다는 것은 엄청난 혜택인 건 분명했어요.
평택은, 그것도 바다 바로 옆 평택은 나의 예상을 많이 벗어난 곳이었어요. 사실 평택 하면 떠오르는 게 많이 없었어요. 친구 몇 명의 집이 있는 곳? 정도였어요. 바다 옆 평택은 일단, 해군 함대가 있고요. 많은 수출입 공장단지가 있어요. 그래서 국도에 물류차량이 씽씽 달려요. 오죽하면 사람들이 '포승 섬'이라고 부를 정도로, 육지 생활?! 에 동떨어진 생활을 하는 기분이 들어요. 바다도 우리가 생각하는 예쁜 파란 바다보다는, 공업단지 바다여서 바다 옆을 드라이브해도 바다 기분이 많이 나지 않아요. 그래도 평택호는 예뻤어요. 주말이면 평택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이 곳 사람들이 여기서 여가를 많이 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화성도 자주 갔어요. 평택에서 살지 않았다면, 화성에 요트축제가 매년 열린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가보지 못했을 거예요. 대규모 포도밭이 있고, 그 포도에서 꿀맛이 난다는 것은 알기 힘들었을 거예요. 평택 동네에 마음에 드는 산부인과가 없어서, 화성의 신도시에서 둘째를 낳고 조리를 했어요. 평택 집으로 둘째를 데려오자마자 남편과는 주말부부를 했어요. '이천'으로 부대를 옮겼기 때문이었어요.
이천. 이천 하면 뭐가 있지. 아, 도자기 그리고 이천쌀. 정말 딱 이만큼만 알고 왔어요. 뭐, 기껏해야 특전사령부가 있는 정도겠지, 하고 온 도시는 역시나 나의 선입견을 많이 깨 주었어요. 이천의 특산물은 알고 보니 '반도체'였어요. 땅이 기름지고 햇빛이 좋고 물이 좋아 맥주 공장이나 개인 '브루어리' 공장도 많았어요. 지인도 맥주 공장을 운영해서 밤늦게까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뻗은 적도 있어요. 아, 저는 셋째 임신 중이었고 남편이요. 남한 땅을 종이라고 치고 반 접고 또 반 접으면 중심점이 이천이래요. 그래서 땅값이 비싸고 교통이 좋아요.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5키로 근방에만 3개가 있어요. 동해까지 두 시간, 서해까지 한 시간이면 도착하는 동네예요. 근처 여주와 안성, 용인에 놀러 갈 곳이 많고 예쁜 카페도 많았어요. 도자기와 이천쌀로만 대표되기에는, 구석구석 아름다움이 많은 곳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집 근처에 열 일하는 도서관이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자랑이고요.
오는 가을 즈음 이사 가게 될 곳이 어디일지 아직 몰라요. 아마 9월까지 모를 수도 있어요. 이사를 안 갈 수도 있고요. 명령이 언제 어떻게 떨어질지 몰라요. 그저 지금 생각으로는 대구, 제주도, 세종 정도이지 않을까 하고 있어요.(제가 가고 싶은 곳 위주예요)
대구는 막창골목이 유명하다지요. 얼마나 맛있을까요. 대프리카도 직접 경험해 볼 수도 있겠어요. 주변의 경주, 포항의 아름다운 곳들이 우리의 주말을 책임져 주겠지요. 제주도는 말할 것도 없어요. 제주에서의 1년 또는 2년 생활이라니. 남들은 일부러라도 하는 것을 우리는 '국가가가 명령해서' 생활해 볼 수 있는 거예요. 생각만으로도 설레는 일이에요. 세종은 어떻고요. 행정수도에서의 생활, 아직 와 닿지는 않아요. 몇 번 가본 세종은, 신도시답게 모든 것이 새 것이었어요. 깔끔하게 정비된 길과 건물이 인상적이었어요. 충청권에서의 삶은 결혼 전 1년 반 정도가 전부예요. 가족과 함께 하는 충청도의 생활은 또 다르게 다가올 거예요. 공주, 대전, 천안아산 이런 곳엔 또 얼마나 새로운 유적지와 유원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친구들을 만들어야 하는 부담도 덜해졌어요. 저에게는 전국 곳곳에 '브런치 작가님'들이 계세요. 마음만 맞다면, 얼굴 보며 글 쓰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이사를 생각하면 가장 행복한 부분이 바로 이 것이에요. 어디를 가든 글을 쓰는 동지들이 있다는 것, 그들의 가까이에서 그들의 일상을 나누어볼 수 있다는 것.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 무조건 최소 죽전 쪽으로는 나갈 거야. 교육 챙겨야 하니까 여기보다는 그쪽에서 알아봐야지."
친구의 말이에요. 조금은 부럽기도 했어요. 안정된 생활을 계획하고 아이에게 예정대로 투자해 줄 수 있는 것. 적응의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없는 것.
그런데 저에게는 조금 다른 삶의 '쿠폰'이 주어진다고 해야 할까요. 예상할 수 없기에, 더욱 설레는 '이전 명령'이요. 아직은 어린 아이들에게,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만나보고 겪어 보게 해 줄 수 있는 인생 쿠폰 말이에요. 이사 간 곳에서의 삶의 문화를 겪게 해 주고 싶어요. 그곳 사람들의 말투, 먹거리, 생활양식을 직접 보게 해주고 싶어요. 그곳 주변의 유적지에서 역사를 배우게 하고, 유원지에서 지방마다 다르게 피는 꽃을 만져보게 해주고 싶어요. 아직은 어리기에 더 가능한 일이에요.
다들 우리나라가 좁다 좁다 하면서, 그 좁은 나라마저 많이 가보지 못한 채 일상에 파묻혀 피로를 해결하기에 바빠요. 그래서 저는, 군인가족에게 주어진 특권을 잘 활용해 보려 해요. 이사를 가야 한다면, 새로운 곳에서 그곳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살아보고 싶어요. 군인가족이 되지 못했다면 저는 경기 북부와 남부의 각각의 아름다움의 차이를 몰랐을 거예요. 평택과 성남 근처의 예쁜 공원들을 영원히 가보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저 '서울 강서권이 제일 살기 좋아'라는 좁은 시야에 갇혀 지냈을지도 몰라요. 군인가족이 되어 고집같은 작은 세상이 열릴 수 있었고, 여러 장소에서의 삶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었어요. 군인가족에게 삶은, 일상을 통해 보고 배우는 '여행'같은 것이예요.
"이제 애들 교육도 생각해야지."
맞아요. 그러니 더욱 이사 가야지요.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도요. 세상은 넓고 보고 배울 것은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