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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15. 2022

작은 움직임의 총합

집, 안일_청소: 물걸레 청소기




  책을 덮고 일어나, 전용 물걸레를 헹구듯이 가볍게 적신 후 짜서 청소기에 끼운다. 그리고 버튼을 누른다. 그러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은, 위에 열거한 일련의 다섯 가지 행동 정도이다. 버튼을 누르고 나면 10분에서 15분 후에는 바닥 걸레 청소가 끝나 있다. 생각보다 순식간에 끝난다. 개운하고 후련하며, 며칠간은 뽀송한 바닥에서 지낼 수 있다.

  지금 나는 저 다섯 가지 행동을 세 시간째 하지 못하고 있다. 한 편만 더 읽고, 한 장만 더 읽고, 한 문단만 더 읽고, 하는 주술 같은 문구를 내 안에서 반복하고 있다. 너무나도 강려크하여 쉽게 끊어내지 못하고 있다. 

  한 문단만 더 읽고의 ‘한 문단’을 더 읽고 나자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다. 화장실에 다녀와 물을 한 잔 먹고 나니 어쩐지 무리를 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슬슬 생리할 때가 되어 오나, 몸이 묵직하고 무겁고 뭔가 피곤하네. 조금만 누워야지. 폰을 든다. 인스타를 보고 올 메일이 없는 편지함을 보고 브런치를 보고 유튜브를 봤다가 요즘 걸그룹의 교차편집 영상을 본다. 예쁘네, 좋을 때다, 청춘이네, 하긴 저 나이엔 뭘 해도 이쁘지.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한 번 물걸레 청소기로 바닥을 닦고 목요일이나 금요일에 한 번, 이렇게 일주일에 두 번 물걸레 청소기를 돌린다. 어머, 엄청 자주 하시네요,라고 하는 이들에게 할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아침에 막내가 요구르트를 쏟구요, 저녁에 둘째가 주스를 쏟고 첫째가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들고 다니며 먹어요. 아, 물은 돌아가며 하루 평균 두 번 정도 흘리거나 쏟구요, 막내는 기분에 따라 볼펜이나 크레파스로 그리고 싶은 곳에 그림을 그린답니다. 이러니 나처럼 게으른 자도 일주일에 두 번, 정말이지 최소한 두 번은 물걸레로 바닥을 닦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바닥이 양말과 발바닥을 끈적하게 잡고 놓아주지 않게 된다. 나 좀 닦아줘요, 하면서, 창피하지도 않은지 얼룩진 몸을 들이대면서.

  

  더는 내 손목을 혹사시킬 수 없어, 하던 때에 시댁에서 보게 된 신문물, 물걸레 청소기. 어머니는 우아한 몸짓으로 물걸레 청소기를 밀었고 바닥은 보란 듯이 반들반들해졌다. 아아, 이것이 바로 시댁이 깨끗하게 유지되던 비결이었군.(진짜 비결은 어머니의 부지런함임을 나중에 깨닫긴 했지만 그때는 물걸레 청소기 말고 다른 건 보이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의 남편은 아침과 저녁으로 부인의 육성을 통해 ‘물걸레 청소기의 유익함’에 대해 들어야 했다. 손목도 안 아프고 무릎도 안 아픈데 집까지 깨끗해져, 몸이 안 아프니 자주 청소할 수 있겠지, 요즘 싼 것도 많더라고,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도구를 사용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어? 남편은 북한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북녘 동지들은 천 삽 뜨고 허리 펴는데 이 마눌은 허리 굽힐 생각을 안 하네’ 라고 응수했지만, 어느 날 무려 60% 할인이 들어간 물걸레 청소기 링크를 보내왔다. 이 아저씨 그럼 그렇지, 열심히 검색하고 있었군. 그렇게 물걸레 청소기와 함께 한 지 석 달 째이다. 


  사람이란 가련할 정도로 마음이 빈약한 존재여서, 나의 다짐 역시 금방 홀쭉해지기 시작했다. 물걸레 청소는 역시나, 예상대로, 만족스럽게 쉬웠다. 허리 한 번 굽히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며 바닥을 깨끗이 할 수 있다니! 나는 이 시대를 사는 나를 칭찬해 주었다. 이 시대란, 반복되는 집안 노동으로부터 조금이라도 해방될 수 있는, 그리하여 책의 한 문단과 한 장과 한 챕터를 더 읽을 수 있는 그런 시대였다. 

  주객전도라고 했던가, 나에게 물걸레 청소기가 있어 물걸레 청소는 더 어려운 것이 되어 버렸다. 물걸레 청소기 덕분에 한 단락, 한 장, 한 챕터를 더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물걸레 청소기를 기꺼이 멀리 하게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걸레를 청소기에 끼우고, 버튼을 누르는 것 같은 작은 움직임을 시작하지 않아 나는 게으른 사람이 되었다. 금방 끝나는 쉬운 일을 ‘시작’하는 것, 시작에 필요한 ‘작은 움직임’을 하찮게 여겼다. 물걸레 청소기가 옆에서 조용히 나를 보고 있지만, 게으른 나는 여전히 일어나지 않는다. 


 




  신혼 시절의 동생이 한 말이 몇 년째 잊히지 않는다. 


  “집안일은 진짜, 부지런하기만 하면 돼. 다른 거 다 필요 없어.”


  이 말은 꽤 오랫동안 꽤 커다란 힘을 갖고 내 곁에 머물렀다. 조금이라도 게을러지거나 늘어지려는 나의 왼편 혹은 명치 쪽에서 훅을 날렸다. ‘부지런’ 말고 다른 거 다 필요 없는 일이 집안일인데 그거 하나 못 해서 이러고 있냐, 전업주부가 지금 도대체 뭐 하는 거냐, 부지런하기만 해 봐라, 창문도 뽀득뽀득해지고 욕실도 바닥도 환해지고 아이들 저녁 반찬도 한 개 더 늘어나고 꽉꽉 들어찬 냉장고도 숨통 트이게 되고. 

  부지런. 부지런하지 못한 나는 누워서 ‘부지런’에 대해 부지런하게 생각해 보았다. 부지런하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는 왜 부지런하지 못해 이런 모양을 하고 누워있는 걸까. 기가 찬다. 누워서 부지런을 생각하는 꼴이라니. 좀 한심했지만 그렇다고 일어나긴 귀찮으니 계속 누워서 한심한 생각을 마저 했다. 

  유레카. 방금 답을 말했다. 일어나긴 귀찮으니. 귀찮아. 귀찮다고. 뭐가 귀찮아, 일어나는 거. 일어나면 그 후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떻게 되긴. 해야 할 일을 하는 거지. 창문을 닦기 위해 유리세정제를 잡을 것이고, 욕실 바닥에 곰팡이 제거제를 뿌릴 것이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버섯볶음을 하기 위해 냉장고를 열 것이고, 냉장고 연 김에 오래된 락앤락들을 정리할 것이고. 

  그러니까 ‘부지런’은, 생각처럼 대단하거나 엄중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일어나는’ 거였다. 일어나서 할 일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것. 그 정도의 작은 움직임, 그 움직임들을 합쳐놓은 것이 부지런함이었다. 이 작은 움직임을 행하지 않으면 그 일들은 어떤 ‘의미’, 이를테면 ‘집안일이 밀려 있어, 집안일해야 하는데, 집안일은 나랑 안 맞아’같은 비루한 의미를 갖게 되고, 동시에 상당한 정도의 중력을 갖게 된다. 그 중력은 내 엉덩이와 뱃살에 알맞게 들러붙어 가뜩이나 무거운 몸을 더 무겁게 만들고야 만다. 마침내 나는 ‘집안일 못하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명찰을 스스로에게 붙이고 그것이 마치 천부적인 것인 양, 조금 부끄러워하며 자신을 속이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

     

  사실 이 글 역시 물걸레 청소가 하기 귀찮아 쓰기 시작했다. 글만 쓰고 하자, 글만 다 쓰면 진짜 하는 거야. 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금이라도 ‘일어나’ 전용 걸레를 가볍게 적시고 짜내어 청소기에 붙이고 버튼만 누르면 된다는 것을. 글쓰기라는 핑계 뒤에 숨어 이 작은 움직임들을 미뤄오기만 했다는 것을.

  글이 마무리에 접어들고 있다. 글을 마치고 미련 없이 일어설 테다. 작은 움직임이 가져올 결과는 결코 작지 않음을 알기에 일어설 테다. 작은 움직임을 이어 붙여 부지런한 사람의 형상을 갖출 테다. 하기 싫다, 귀찮다, 같은 마음은 이 글에 진작에 털어내었다. 물걸레 청소기는 아까부터 손닿는 곳에 있다. 이제 일어서기만 하면 된다.



기다려, 다 썼어





집에서 안일한 태도를 가지려는 주부가 쓰는 집안일 에세이입니다. 집안일에 대한 글을 쓰며 그 순간만큼은 집과 나 모두에게 쉼을 주려 합니다. 5로 끝나는 날마다 보잘것없지만 피할 수도 없는 집안일을 늘어놓겠습니다. 집안의 일들이 갖는 소중한 의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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