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에 앞서, 최근에 있었던 기안과 그의 작품에 관한 논란은 차치하고 쓰는 글임을 밝힌다. 개인적으로 웹툰 '작가'로서의 그의 표현과 대처에 매우 유감이지만, 이 글은 그 일련의 사건과는 관계가 없다. 그저 티브이 프로그램 출연자로서의 한 개인에 대한 사견임을 알린다.)
일단 살고 보는 남자
'나 혼자 산다'에 기안이 돌아왔다. 그를 보는 나의 마음이 이전과 다르게 심란해졌지만, 어쨌든 무수한 논쟁을 뒤로하고 복귀했다. 예전부터 그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다.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
나혼산에서 타이틀을 준 건지 기안이 자기가 직접 말한 건지 모르겠지만, 기안84는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란다. 그간 보여준 기행들이나 심각할 정도로 단순한 사고 때문에 붙은(붙여진? 붙인?) 별명이다.
나는 이 말의 어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 (어쩌랴, 내가 이런 사람인 것을.)
사실 우리 모두는 '태어난 김에 살고 있는', '태어난 김에 살아내고 있는', '태어난 김에 살아내야만 하는' 존재들이다.인생에, 삶에 던져진 인물들인 것이다. (알베르 까뮈의 '실존' 어쩌고 하는 작품들에서 풍기는 뉘앙스가 이런 스멜이다.) 꼭 기안84처럼 약간의 기행이 있거나(보기 거북한 장면들이 좀 있었지만, 어쩌랴 그냥 그런 사람인 걸.) 대충대충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니어도, 실은 우리 모두가 (어쩔 수 없이) 태어난 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저 태어난 김에 '어떻게' 사는지에 차이를 두고 있을 뿐이지, 우리 모두는 그런 존재들이다. 애를 셋을 낳아봐도 그렇다. 저 아이들은 내가 낳았으니, 이제는 살아가야 할 뿐이다. 나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니, 삶에 던져졌으니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중국 영화 '인생(人生)'의 중국어 제목은 '活着'이다. 이게 뉘앙스가 한국어로 표현하기 좀 애매하다. 중국의 격동의 근현대사를 살아낸 주인공이 상처를 안고 그저 계속 살아나가는 내용이다. 그렇게 힘든 인생을 거치고도 그저 살아나가는, 살아내야 하는...
活着는, '살아가는, 살아있는 그 상태ㅡ에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상태'정도의 느낌이 함축된 의미라고 하면 그나마 와 닿을까. 하여튼 태어났으니, 그저 살아나갈 뿐인 우리의 상태를 잘 담고 있는 단어이다. '인생'은 뭔가 살짝 비장한 스멜이지만, 活着는 약간 '어찌할 수 없으니 살아가는'의 느낌. 그렇다, 사실 우리 정말 그렇지 않은가. 삶에 던져졌으니 일단 살아내고 볼 일이다. 그야말로 태어난 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삶은 이렇게, 어쩌면 조금은 처연하고 어쩌면 조금은 심플하고 어쩌면 조금은 낭패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며칠 전 티브이 채널 돌리다 잠깐 본 건데(인스타에서 본 걸 수도 있다. 애셋 낳으니 '기억력'이란 단어가 내게서 사라졌다.), 누군가가 대자연 앞에선, '우주먼지'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인생은 그런 거다, 태어난 김에 우주먼지로 살다 우주로 돌아가는 것.
그렇게 태어났다면, 태어난 김에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며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 어차피 태어났으니 막살아보자, 이런 의미가 아니다. 이렇게 던져진 삶을,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어찌 해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을 고민해야만 한다.
실로 기안84도 유명한 만화가에 예능인이다. 나름 열심히 살지 않고는 올라갈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회사 CEO이고, 만화가로서는 더 이상 디테일을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작업하는 장면도 꽤 많았다. 예전 회차이지만, 어쨌든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직원이 인터뷰에서 그러지 않았는가, 대표님은 (너무 섬세하고 꼼꼼하게 일해서) 절대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가 아니라고.
그러면 되지 않나 싶다. 태어난 김에 살고 있고, 그런 거면 내게 주어진 일을,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면 되는 거라고. 그냥 무심(無心)으로.
요즘 가끔 사는 게 거지 같거나 지치거나 부정적인 생각이 휘몰아칠 때면 이 생각을 한다, 그러면 꽤 많이 홀가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