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Jan 17. 2023

가보기는 했을 것이다

강태근, < 진부령 황태집에서 >




너, 바다를 매일 본다는 게 얼마나 우울한 일인 지 아니.


바다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사는 거 너무 부럽다,라는 나의 말에 대한 언니의 대답이었다. 생각지 못한 대답이었고, 그 대답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창 밖의 바다는 회색이었다. 그래도 바다는 바다잖아,라는 말은 입 안에서 빙빙 돌다가 꼴깍 넘어가 버렸다. 


사람들은 바다 색이 파란 줄 알아, 바다 색은 원래 저 색이거든.


회색의 바다를 내 눈으로 보면서도 나는 믿지 않으려 했다. 그저 오늘의 하늘색을 닮아가려 노력하는 바다처럼 보였다. 내일 아침이면 내 머릿속의, 고정적이고 관념적인 그 파란 바다가 창 밖에 걸려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매일 회색 바다를 보는 사람의 삶을 생각했다. 회색 바다를 매일 보며 사는 사람의 우울을 생각했다. 내게 정동진은 그렇게 회색 바다로 남아 있다. 내 경험의 선로에 있어 동해바다의 가장 북쪽, 정동진, 그곳의 기억색.




긴 운전과 그만큼 긴 멀미로 얼굴이 하얘진 소녀는 아마 웃지 못했을 것이다.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웃었을 텐데 사진 화질이 좋지 않아 웃는 건지 울상인지 한 번에 알아보기 어렵다. 그 뒤로 바다는 역시나 파란색이다. 보란 듯이, 동해바다 파란색. 

엄마 친구의 일이었나 기억이 흐릿하다. 속초를 갔었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 속초이다. 그러나 남아있는 것이라곤 '속초였을 것'이라는 목적지와 흐릿하게 웃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그 사진뿐이다. 사진은 아마도 속초에서 찍지는 않았을 것이다. 속초로 가는 어느 휴게실에서 찍었을 것이다. 엄마를 따라나선 열 살 남짓의 소녀는 따라나서기로 한 결심을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강원도 가장 남쪽 나의 산골마을에서 속초가 그렇게나 멀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늘 가던 동해와 삼척, 몇 번 가본 강릉, 그러곤, 속초겠지. 식당이라고 따라 들어갔더니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횟집이어서, 날생선은 째려보기만 하다 마지막의 매운탕에 밥만 말아먹고 나왔을 것이다. 그마저도 비리다며 생선은 옆으로 옆으로 밀어 두고 두부와 쑥갓만 건져 먹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 있어, 동해바다의 가장 북쪽은 아마도 속초일 것이다. 속초로 가는 길은 멀미의 기억과 사진이 흐리게 남아 있지만 속초에서 무얼 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 후 지금까지 속초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누군가 물어오면 강원도라는 이름의 주인이나 되는 것처럼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강원도에서 20년을 살았는데 당연히 속초 가 봤지, 강원도 동해라인은 꿰고 있다니까. 속초에 가보기는 했을 것이나, 사진이 없었다면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내 경험의 선로에 있어 동해바다 가장 북쪽은 역시나 정동진이다. 


정동진은 확실히 가보았고

속초는 

가보기는 했을 것이다. 



   


인터넷 지도를 살핀다. 멀다고 하기 뭣하고 가깝다고 하기도 뭣하네, 정동진에서 속초. 태백이랑 같은 강원도지만 같은 강원도가 아니네. 혼자 중얼거리며 지도를 키웠다가 줄이고 늘렸다가 줄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멈칫, '진부령', 세 글자 앞에서 손가락이 잠시. 


언니 집에서 다음날 아침 본 바다도 회색이었다. 결혼을 약속한 나의 애인은 시큰둥한 목소리로 '파란 바다는 못 보고 가겠네요'라고 했다. 언니는 '여기 바다 기본값이 저 색이라니까요, 곧 제부'라며 웃었다. 어제의 숙취를 풀기 위해 언니는 형부의 양식장에서 가져온 키조개관자, 가리비 따위를 삶고 있었다. 어제 그렇게 잘 얻어먹었는데, 오늘도 아침부터 대접을 받습니다, 하하하. 우리 진샤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해드리는 건데요 뭘. 이런 말들이 내 뒤에서 비릿하게 녹고 있었다. 나는 창 밖의 회색 바다를 줄곧 바라봤다. 이틀 만에 조금 우울해지려 하고 있었다. 

전날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우리를 태운 언니는 다음날 산속으로 운전했다. 나는 일이 있어 먼저 들어가야 하니 둘이 여기서 먹고 서울가. 요 앞에서 서울 가는 고속버스들이 서니까 먹고 타면 돼. 진부령 황태촌. 소리도 없이 눈이 쌓이고 있는 강원도의 우람한 겨울산, 결혼을 약속한 사람, 언제나 따스하게 대해주는 언니와 함께 한 시간. 내게 상호명이나 지명 같은 것은 중요치 않았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던 모든 것이 곁에 있던 순간이었다. 


지도를 다시 보니 진부령은 정동진보다는 속초 쪽이다. 아...... 언니가 데려간 곳도 진짜 진부령은 아니었나 보구나. 서울 마포구에도 강서구에도 동작구에도 하나씩 있는 진부령 황태촌처럼 정동진에도 있는 진부령 황태촌이었나 보구나. 그날 남편과 황태를 먹으며 나누었던 말들은 적어도 지금처럼 세금고지서나 동료의 진급 상황이나 명절 준비에 대한 말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황금빛까지는 아니어도 빛나는 미래에 대한 약속을 둘러싼 말들이 주를 이루었을 것이다. 기억은 속초에 가던 길처럼 흐릿하다. 그러나 '진부령황태촌'에서 나와 강원도의 눈을 맞으며 따뜻했던 애인의 손을 잡고 서울행 고속버스를 기다렸던 기억만큼은 또렷하다. 


정동진은 확실히 가보았고 

정동진에서 가까웠던 '진부령황태촌' 역시 확실히 가보았고

속초에서 가까운 진부령은 가보지 못했고

속초는

가보기는 했을 것이다. 





새해가 좋으면서 싫은 건, 오랫동안 인연이 닿지 못했던 이들이 연락을 해오기 때문이다. 그들이 연락을 해주어 좋고 그들에게 그동안 연락을 해주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싫다. 작년까진 새해마다 연락을 해주던 정동진 언니가 올해는 연락이 없다. 아마도 바쁠 것이다. 바쁠 것이라서 방해하면 안 되겠지,라는 생각을 새해가 된 지 보름이 지나도록 하고 있다.

정동진 집은 정리했어.

몇 해 전 강남에서 만난 언니의 그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회색의 바다. 연락은 여전히 하지 못한 채, 시간을 이겨내는 그리움을 잊으려 본 영화 '파이란'의 마지막 장면에서 파이란 뒤의 속초 어느 마을 바다도 회색이었다. 회색 처리를 했기 때문이었지만, 마치 그 바다의 기본값은 그 색이라는 듯이 회색이었다. 영화 내내 파란 동해바다가 나오지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오로지 회색뿐이다. 우리의 기억에 남는 건 그렇게 회색뿐이다. 


산다는 건, 

흐릿한 기억과 그 기억들을 더 흐리게 해 줄 회색의 어느 경계를 

희미하게 지워나가는 일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돌아봤을 때 

거기 가보기는 했는데, 

먹어보기는 했는데, 

그 사람 보기는 했는데, 

연락을 해볼까 했는데,

하다가 어느새 흐릿해지는 눈앞을 닦는 일의 연속이다. 


어느 겨울, 

속초바다의 진짜 색을 보러 가야겠다. 

그 길에 진부령에서 황태를 먹고 기운을 차려야겠다. 

황태가 남겨준 어떤 감정을 배 안에 집어넣고

언젠가 가보기는 했을 속초에 가야겠다.

거기에 파란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다.  






* 대문사진: 영화 '파이란' 장면, 출처 '영은이' 님의 블로그




진샤와 폴폴이 시에 관한 모든, 뭐든 주고받습니다


진부령 황태가 되고 나서는
영원히 바래지 않는 
그대의 색으로 물들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대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