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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Jun 27. 2023

근황


그러니까, 이런 거예요. 


갑자기 떠오른 시구를, 늘 그랬듯 일단 나의 카톡창에 써둡니다. 그러고는 까맣게 잊어요. 그리고 마트가서 사야 할 것들을 쓰려다 이 문구를 봅니다. 빤히. 

예전이었다면 이 시구를 붙잡고 이런저런 단어들을 붙여 '시'라는 걸 완성해 보려 애를 썼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그러지 못해요. 이런 문구들이 나의 카톡창에 약간...이라기엔 조금은 많이 쌓여 있어요. 쌓여만 있습니다. 그들을 완성시킬 각오, 생각, 마음 같은 건 없어요. 그냥 둡니다.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어요. 지금은 너무 바쁘니까요.


그래요. 바쁘게 지내왔어요. 바쁘게 지낸다는 핑계를 핑계로만 두지 않으려 진짜 바쁘게 지냈어요. 책을 읽고 영화를 봤어요. 대도시에 살면서 누려야 할 호사도 누려보려고 전시도 다니고 가보고 싶었던 카페도 갔어요. 아이가 집에 올 시간을 지켜야 하는 '애데렐라' 신분이어서 30분만에 커피를 드링킹하고, 인스타 올릴만한 사진 몇 장 찍고 나와 버스정류장까지 급하게 뛰었어요. 버스에서는 여유롭게 다녀온 척 사진을 올리거나 아니면, 졸았어요. 그러고는 아이들을 맞았어요. 학원을 함께 가고 놀이터에서 엄마들과 수다를 떨거나 무서운 초딩 아이들에게서 미취학 아동인 나의 아이들을 보호하거나 그네를 밀어주거나 '괴물'이 되어 미끄럼틀을 오르기도 했어요. 쿠아앙, 하는 출처모를 괴물소리를 내며. 넘어져 무릎에 피가 나는 아이에게 밴드를 붙여 주고 마이쮸를 달라는 아이들에게 줄 안 서면 안 준다고 소리를 꽥꽥 지르기도 했어요. 기운이 빠질대로 빠진 상태로 집에 와서는 저녁 해 먹이고 치우고 씻기고 숙제를 봐주고 공부를 봐주고 흘린거 닦고 씻고 약 먹이고 양치해주고 울면 달래고 싸우면 혼내고 태블릿 그만 봐라 소리지르고 내일 주스 꼭 사줄게, 라고 뻥을 치면서 '다들 눈 감았지' 하고는 가족 중에 가장 먼저 잠들었어요. 밤기저귀를 떼는 막내 때문에 밤에 몇 번을 깨서인지 아침이 되어도 멍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아침이니 아이들 입을 옷을 챙기고 대충 먹일 걸 챙기고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며 잠을 깨요. 아이들이 학교와 어린이집을 가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카페나 도서관을 가거나 잠을 잤어요. 글 같은 건, 시 같은 건 잘도 옆으로 밀어두고. 물론 정말 가끔 블로그에 감정의 배설을 하긴 했지만 그건 글의 형태가 아니니 패스. 


친구도 만나기도 했고요. 이런 말들을 들었어요. 글은 돈 받고 써야 해, 그럼 돈 받고 써야지. 돈 받고 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친구라서 그냥 씩 웃고 말았어요. 돈 안 받고 글을 쓰는 내가 바보같아서인지 그 말을 듣고도 여전히 돈 받고 글 쓸 생각을 않는 내가 바보같아서인지 모르겠지만, 그 땐 웃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글을 쓰는 의미가 내게 숨쉬는 것과 같아,라고 하려다가 그냥 웃고 말았어요. 그 말의 의미를 모를 친구는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본 친구와 논쟁 비슷한 것 보다는 말랑말랑한 말들을 하고 싶었어요. 

눈이 큰데 눈물이 흐르니까, 진짜 너무 예쁘다. 이 말에는 웃으면서 '야, 눈이 큰 게 얼마나 불편한 지 알아. 미세먼지가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라고, 되지도 않는 농담으로 받아쳤어요. 친구는 '눈 작아도 미세먼지 들어오거든'이라고 팩트 체크를 해주어서 아하하하핳 또 웃고 넘어갔어요. 그 말에 진짜 하고 싶은 속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속말을 꺼내도 다 알아들을 친구였지만 역시나 하지 않고. 내게 '왜 글을 쓰지 않냐'를 묻기 위해 기차까지 타고 온 친구 앞에서 많이 울어대서 부끄러웠는데, 그와중에 친구는 예쁘다,고 말해서 부끄러움이 더 진해지는 바람에, 너무 울어서 팅팅 부은 눈을 보고 예쁘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는 속말과 그 밑에 있는 바닥말은 끝내 하지 못하고. 


왜 글을 쓰지 않는 겁니까. 

친구의 질문에 뭐라 대답했더라... 

애들 키우느라 바빠서, 서울놀이하느라, 또...... 또

나에게 솔직해질까 봐. 

글을 쓸 때는 진실해지는데, 지금의 나는 진실해지면 안 되니까. 


그래서 

자주 땅을 보며 걸었고 

해가 뜨는 방향과 지는 방향에 민감해졌고 

단 하나의 감정이 짙어지는 나뭇잎의 색들과 반비례하여 옅어지는 걸 지켜보았고 

그게 생각처럼 잘 안 되서 또 걸었고 

걷다가 걷다가 이만 보를 채워보자 했지만 만칠천보에 그쳐서 아쉬워 했고

대출한 책들을 펴보지도 않고 그대로 반납하는 날들이 책보다 쌓여가고 

영화 리뷰를 써볼까 하여 노트북을 찾다가 어느 순간 '내가 지금 뭘 찾지'하며 내 정신만 겨우 찾고 

시 필사만이라도 놓치지 말자 하며 매일 경전처럼 떠받드는 필사노트를 펼치며 졸음을 쫓아내고 

그렇게 지내느라 

글을 쓰지 못했어요. 중간중간 글을 쓰는 삶의 의미와 글을 쓰지 못하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곤 했지만 답을 찾기엔 

날파리가 꼬여서 

의미보단 음식물쓰레기 카드를 먼저 쥐었고요. 


앞으로도 한동안 이렇게 바쁠 것 같아 오늘만큼은 '그쓰그발(그날쓰고그날발행)하자' 마음으로 정말 오랜만에 글쓰기 버튼을 눌렀어요. 지난 주 약속이나 한 듯이 몇며 분들이 글 기다린다 하셔서 마음을 내보았어요. 오늘과 내일과 모레 이후 한동안은 개인적 사정 때문에 글을 아예 쓸 수 없어질 것 이어서요. 정말 가끔 (지금처럼) 생존 신고 정도의 글(도 아닌 보고)을 쓸 수 있을 듯 한 생활을 할 예정이라서요. 시 필사나 책을 읽는 것도 지금처럼은 안 될 것 같아서요.(무슨 유배지 가는....듯 하지만 아니지만 비슷해요)

지금까지의 근황과 앞으로의 한동안의 근황을 쓰면서도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의미가 없다 한들 또 어떨까 싶어요. 지금까지 놓쳐 버린 수많은 의미들을 생각해보면 의미가 있어도 없어도 곁에 있을 것들은 남게 되고 없는 것들은 사라지거나 녹거나 흘러가거나 부서지거나 하여 결국 없게 되더라구요. 그 속에서 의미는 다시 태어나고 사라지고 무의미가 되고 공허해지고 그래왔으니까요. 

의미를 찾지 않으며 무의미가 된 의미를 옆에 두고

그쓰그발 해봅니다.






언젠가 시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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