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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Nov 17. 2020

신춘문예, 김장 양념에 버무려 버려!

11월, 먹고사는 게 먼저다!

오늘, 지원했던 작은 공모전 발표가 있었다. 개인 연락이 없길래 안 됐구나 싶었지만, 오후 늦게 있었던 발표를 보고는 그래도 허탈했다. 지역 문학회에서 작은 규모로 주최했던 백일장이었고, 그래서 사실 더 기대했었다. 작은 규모이니, 나의 글이 더 돋보일 거라 생각했다. 탈락의 쓴맛은 오래가지 않았으나, 어쨌든 탈락은 탈락이었다. 이런 공모전도 안 되는 나구나, 하면서도 이런 공모전 따위(?!)가 나를 뽑지 않다니, 오후 내내 마음의 온도차가 컸다. 그러나 온전히 온도차를 느낄 시간이 없었다. 내일은 김장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지금껏 나에게 11월은, 아빠가 싫어하는 달이었다. 어느 선승에게 들은 아빠의 전생 이야기에서 아빠는 11월 날씨가 추워지는 때에 동굴 속에서 얼어 죽었다고 한다.(매우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11월만 되면 아빠가 생각났다. 아빠는 으슬으슬 이 공기를 싫어하고 있겠군.

   그러나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나서 브런치 작가님들을 구경 다니거나 공모전 사이트를 둘러보면서 알게 되었다. 11월은 신춘문예의 달이었다. 적잖은 작가님들이 쓴 글 중 어떤 글을 응모할지 고민을 토로했다. 공모전 홈페이지에서는 하루에도 몇 개씩 유명 신문사나 문학지의 신춘문예 공모전 공고가 올라왔다. 그렇다. 11월은 1년의 글을 수확하는 달이다. 결과를 내고 기다리는 달이다. 

   10년을 넘게 매일 신문을 읽던 시절, 1면 하단 광고란에 신춘문예 응모를 볼 때마다 나는 고린내를 느꼈다. '신춘문예'라는 단어는, 더벅머리 작가 지망생이 몇 글자 안 쓰고 원고지를 찢거나 입에 넣어버리는 장면을 떠오르게 했다. 오래 씻지 않은 냄새가 날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이 '한 방에 처지 탈바꿈하는, 인생역전 기회의 장'으로만 여겨졌다. 그래서 와 닿지 않았던, 절대적으로 남일처럼만 느껴진 일이었다.

   글을 쓰고 보니, 신춘문예는 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지만 언젠가는 넘어야 할 벽처럼 다가온다. 글 쓰는 이라면 꼭 응모를 해야 하고, 당선자 명단에 어떻게든 이름을 남겨야 할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러지 않아도 된다. 무시하고 나만의 글쓰기를 해나가면 된다. 그러나 나는 왜 '신춘문예'에 일종의 의무감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걸까.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든 안 되든 응모를 해 봐야만 글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가 느끼고 있다. 이런 감정이 지속된 채, 써 놓은 글도 없고 글 쓸 시간도 없음에 막막해하기만 하면서 11월의 하루하루를 지워나가고 있었다. 누구도 그러지 않았으나 세상 모두가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지금 아니면 1년을 더 기다려야 해, 뭐 하고 있는 거야, 저렇게나 많은 신춘문예가 널 기다리고 있는데 잠이 오냐고!




   잠이 쏟아졌다.

   

   지난 월요일 밤 오도독 글을 쓰고 늦게 잠들고, 화요일 아이들 등원시키고 바로 김장 전초전에 들어갔다. 셋째를 데리고 시어머니와 장을 봐 와서 김밥을 먹으나 마나 하며 깍두기와 알타리김치, 파김치를 했다. 물론 사실상 김치는 시어머니가 다 하고 나는 아이를 보다 조금 돕기를 반복했다. 아이를 재우고는 파를 다듬고 무를 썰었다. 막내를 유모차에 태우고 첫째를 하원 시켜 미술학원에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10분 동안 양파와 마늘을 갈고 다시 나왔다. 막내 유모차를 끌고 둘째를 데리고 병원 진료를 보고 감기약을 받아 첫째 미술학원으로 향했다. 아이들을 다 데리고 오니 6시였다. 시어머니는 혼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6살 첫째에게 동생들을 맡기고 둘이서 김치를 담갔다. 8시 정도가 되어서야 김치가 마무리되었다. 아직 저녁 식사와 세 아이 씻기고 입히고 재우기가 남았다. 그 날 모든 일정은 12시 정도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그 날의 여파가 이틀 동안 이어졌다. 온몸의 근육은 파업하였고, 글이고 뭐고 나부터 살아남는 게 먼저였다. 몸이 아픈데, 제대로 쉬고 잠 좀 자고 싶은데 아이들이 잠들지 않으면 온갖 짜증이 치밀었다. 인성의 바닥을 보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신춘문예 응모에 대한 미련만 짙어질 뿐 나는 아이들만 겨우 키워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키우는데, 아이들이 크는 속도가 느려 억울함만 더해지는 11월의 나날이었다.


   오늘은 배추김치 전초전이었다. 장을 보고 양념 준비를 했다. 그 와중에 잠투정 절정에 치달은 막내를 재우고 본격적으로, 미나리를 다듬었다. 생강을 다듬고 양파를 까고 마늘을 정리했다. 무채를 썰고 마늘, 생강, 양파를 갈고 있는 데 아이가 깼다. 나머지는 시어머니의 몫이 되었다. 나는 아이를 씻기고 입히고 먹였다. 절인 배추가 생각보다 늦게 도착해 속 넣는 일은 내일 하기로 하였다.

   역시나,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다. 다행히 손가락은 말을 들어서 브런치에 쓰고 있다. 둘째가 늦게 잠들어, 그냥 잘까 고민했지만 결국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노트북을 켰다. 신춘문예에 대한 묵직한 마음을 털어내야 할 것 같다.





   11월은 신춘문예 이전에, 김장의 달이다. 김장과 김장 문화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귀한 문화이다. 문화를 따지기 전에, 먹고사는 문제다. 김장을 이때 하지 않으면, 한겨울을 빈곤한 마음과 더 빈곤한 냉장고로 지내야 한다. 글은 언제나 써도 되지만, 김장은 지금 하지 않으면 배추의 절정과 온갖 야채가 품은 비타민을 잃게 된다. 그래, 나는 오늘 무를 썰면서, 양념을 버무리면서 신춘문예도 빨간 통에 빨간 양념에 같이 버무려버렸다. 신춘문예 따위, 일단은 먹고사는 게 먼저다! 글은 안 써도 살 수 있지만(마음은 중환자가 되겠지만), 일단 김치는 있어야 한다. 잘 먹고 나면 글도 잘 쓸 수 있다. 먹고 보자. 먹고 나서, 쓰자. 그 힘으로 최선을 다해 쓰자. 아직 내 마음에 새로운 봄(新春)이 오지 않았는데, 신춘문예라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매워진 눈을 연신 깜빡거리며 양념에 신춘문예에 대한 마음도 넣어버렸다. 양념 맛이 조금 쓰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비겁하게도 늘, 먹고사는 문제를 외면해 왔다. 먹고사는 일은 부모가 대신해 주었고 그 빈자리에 내 할 일을 했다. 하고픈 일,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먹고사는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태생이 집안일과 적합지 않은 손을 가져서, 열심히도 집안일을 멀리 하며 살아왔다. 손 쓰는 일에는 서툴렀으나, 손으로 쓰는 일은 - 종이 위든지 키보드 위든지 상관없었다 - 쉽고 즐거웠다. 그러나 먹고사니즘의 힘은 셌다. 게다가 지금의 나는 5인 가족의 먹는 일을 책임지고 있다. 이제는 외면할 수 없다. 외면해서도 안 된다.

 

   지금의 나의 11월은 김장이 우선이지만, 몇 번의 가을을 더 보내고 맞이하는 11월엔 신춘문예가 우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그 마음으로 올해의 신춘문예를 가을 낙엽처럼 떨구어 보내며, 내일 맛있는 김장을 담그려 한다. 겨울의 문을, 매워진 손과 더 뜨거운 마음으로 열어보려 한다. 올겨울은, 적어도 몸과 냉장고는 풍족히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의 풍족함은 브런치에서 채우면 될 일이다. 김장을 앞둔 이 밤, 졸음을 걷어내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브런치를 마주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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