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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Nov 19. 2020

말하나 마나, 마라탕!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우는 마법의 음식

   봄이면 봄을 맞이하기 위해 마라탕을 먹어야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쐬며 먹는 마라탕이 제맛이다. 가을이면 날씨가 쌀쌀해지는 만큼 마음도 쓸쓸해져,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해 마라탕을 먹어야 한다. 겨울이면 겨울이니까 마라탕만큼 제격인 음식이 없다.
   그렇다. 마라탕은 때 되면 챙겨서 먹어줘야 하는 음식이다. 때가 되었는데 안 먹으면 병 난다. 나에게는 일종의 약과 같음 음식이다.


   나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말하라 하면, 순댓국마라탕을 꼽을 수 있다. 죽기 전 마지막 식사로 한 가지만 고르라고 하면, 이 두 음식 중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 순댓국에는 반드시 듬성듬성 무 썰은 섞박지가 있어야 한다. 마라탕은 맵기가 중이면 딱 좋다. 마음이 안 좋을 때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면 둘 중 하나를 본능적으로 찾는다. 한 그릇 뚝딱 뱃속으로 밀어 넣고 나면, 인생이 여유로워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며 큰 만족이 밀려오는 것을 오감으로 느끼게 된다. 인생 무엇 있으랴, 맛있는 음식 먹고 맛있어하면 그게 행복이지!(역시.. 나는 먹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순댓국을 처음 먹은 것은, 2003년 서울로 이사 오고 난 후였다. 아빠를 따라 근처 시장 따라갔다가 먹은 순댓국은, 그날부로 인생 음식이 되었다.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시험기간 일주일 전에는 의식을 치르듯 순댓국을 먹었다. 그 기운으로 밤새서 공부하고, 시험이 끝나는 날도 같은 의식을 치렀다. 만화방에 가서 못 본 김전일 시리즈를 빌려 순댓국집으로 향했다.(내가 중학생 때 고등학생이었던 전일이 오빠는, 지금도 고등학생이다. 빨리 결혼했으면 김전일만 한 자식이 있을 나이가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내게 오빠이다. 미유키와의 썸만큼은 좀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일이 힘들게 느껴질 때나 위로가 필요할 땐 순댓국을 찾았다.

   

   첫 마라탕 집은, 중국이 아닌 대학로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어 전공자였지만 중국에서는 마라탕을 먹어본 적이 없다.(열심히 '교자'만 먹으러 다녔다. 초등 입맛을 벗어나지 못한 때에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서른 즈음, 중국 국적기 승무원하는 친구가 중국과 똑같은 맛이 나는 마라탕 집이 있다며 데려가 주었다. 그 후로 거의 매 주말마다 함께 마라탕 집 투어를 다녔고, 주로 건대와 구로 거리를 어슬렁거렸다. 2014년 중국어 교수법 연수로 북경을 갔었는데, 팀으로 다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북경 마라탕을 먹어볼 기회는 없었다. 마라샹궈를 먹은 적이 있는데(마라탕과 마라샹궈의 관계는, 짬뽕과 볶음짬뽕 정도로 이해하면 적당할 것이다.), 한국 마라탕과 맛이 비슷해서 괜한 안도감을 느꼈다. 다행이다, 앞으로도 한국에서 먹는 마라탕은 중국 맛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어.  




   남편 직업 특성상 이사를 자주 다닌다. 이사 다닐 때마다 반드시 챙겨야 할 곳이 세 군데이다. 어린이집, 도서관, 그리고 마라탕 집. 어린이집은 직접 다니며 눈으로 보고 선택하고, 도서관은 지도 검색으로도 충분히 찾는다. 문제는 마라탕이다. 순댓국집이야 한국 어디를 가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대부분 도심보다는 외곽으로 터전을 잡아야 하는 내게 마라탕 집을 확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요즘은 꽤나 보편적인 음식이 되어 시골에서도 양꼬치를 검색하면 함께 먹을 수 있지만, 4-5년 전만 해도 발품을 팔아야 했다. 어린이집과 도서관이 해결되면, 나는 하루 날 잡고 '마라탕 투어'를 다닌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며 외관과 내부 그리고 속 재료 챙기는 곳이 청결한, 무엇보다 맛있는 마라탕 집을 찾기 위해서다. 마음에 든 곳이 정해지면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정착'이 시작된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 와서 마라탕 집을 정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과정이 필요했다. 집 근처는 없어서 차를 타고 30분 걸리는 용인 중앙시장으로 한동안 다녔다. 이천 시내도 몇 군데 가 보았으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하루는 이천 시내 볼 일이 있어 나갔다가 비도 오고 마라탕을 반드시 먹어야 하는 날이었어서, (그냥 오늘 점심은 마라탕! 하는 날은 더 생각할 것 없이 먹어야 한다. 본능에 충실하기가 그지없어 부끄러울 정도다.) 60km 이상을 빗 속을 뚫고 달려 용인으로 갔다. 마라탕을 마주하는 순간, 나의 드라이빙은 충분히 가치 있게 느껴졌다. 중요한 것은, 임신 초기였다는 사실이다. 잠도 오고 몸은 피곤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다. 마라탕이 먹고 싶어서 먹은 것, 이 자체로 진정한 행복이지 다른 것은 더 필요 없다.



   중국어의 마(痲)는 '얼얼하다'이고, 라(辣)는 '맵다'는 뜻이다. 얼얼하고 매운탕(燙)인데, 얼얼함이 심하면 입이 마비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나는데, 한국에서 먹는 마라탕은 심하지 않다. 마라탕을 먹어보지 않은 친구에게 설명하면, 그나마 '짬뽕'과 가장 비슷하다고 말해주긴 하는데 그렇게 설명하고 나서 아쉬운 느낌을 도저히 채울 방법이 없다. 마라탕의 매운맛은 후추의 그 것도 아니고 청양고추의 매운맛과도 결이 다르다. 청양고추가 입이 아픈 느낌이라면, 마라탕은 말 그대로 얼얼하게 마비된 듯한 매운맛이다. 다행히 한국의 마라탕 집에서는 매운 정도를 상중하로 나누고 선택할 수 있으니, 매운맛 때문에 주저할 필요는 없다.


   마라탕 집 문을 여는 순간, 마라 소스 향이 가득한 공간이 주는 특유의 '치유력'이 있다.('힐링'이라는 단어는 굳이 쓰고 싶지 않다. 이유는 딱히 없다. 여기저기 힐링이 붙어버려, 의미가 옅어진 느낌이다.) 그래, 이거지. 다른 말은 소용 없다. 마라탕, 이거지.

   바로 속재료를 고른다. 몇 가지 정해져 있다. 대부분은 야채 위주이다. 이때만큼은 타인의 눈 의식할 필요 없이, 절대적으로 결정권을 내가 갖게 된다. 마라탕이 아름다운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꽤나 대식가인데,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자리이자 굳이 남들 신경 쓰지 않고도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다. 내가 고른 만큼 공정하게 지불하고, 기다리고 먹는다. 갖가지 야채와 여러 종류의 두부와 면이 마라 육수와 어우러진 맛을 즐기면 된다. 그뿐이다. 아, 쯔마장이라고 불리는 땅콩소스와 함께 먹어도 좋고, 음료는 반드시 파인애플 맛 환타와 함께 해야 한다. 마라탕이 주는 맵고 텁텁한 맛을 한 번에 해소시켜 준다. 다 먹은 후에는 달달한 커피가 당긴다. 스타벅스 돌체 라테만큼 괜찮은 후식을 아직 먹어보지 못했다.


   작년 셋째 임신기간 동안,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검진 날은 '마라탕 먹는 날'이었다. 산부인과 근처에 주차되는 맛있는 집을 찾게 되었다. 그 후로 병원 갈 때마다 일부러 예약시간을 점심 직전으로 잡고, 검진 끝나고는 마라탕을 먹었다.  한국어가 유창했지만 숨길 수 없는 외국어 발음으로 주문을 받았다.

  "你是从哪来的?”

   중국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조금은 놀라더니 곧 중국어로 대화했다. 주인은 내몽고 사람이었다. 한국 사람이랑 결혼했다는 그녀는 7년째 친정에 못 가고 있다고 했다. 중국어를 한동안 못하고 있던 나날이었는데, 오랜만에 회화 연습하는 기분으로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했다. 첫날부터 친해져서 임신 내내 정기적으로 보는 사이가 되었다.

   막달 마지막 정기검진 날은, 내진이 깊게 들어와 당일 아이를 출산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럴수록 마라탕은 더더욱 먹어야 했다. 그 날 먹지 못하면 그 후 최소 6개월은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이 둘 키우면서 너무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가 나올 수도 있는 분위기였지만, 가까운 곳에 사무실을 둔 친구를 불러내 굳이 한 그릇 먹고야 말았다. 친구는 내내 불안해하면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고, 진통이 시작되면 바로 산부인과로 갈 수 있도록 차키를 손에 쥐고 먹었다. 막내는 사흘 뒤 태어났다.





   구구절절 마라탕 사연을 늘어놓는 이유는 단순하다. 겨울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상 1년을 마라탕을 먹지 못하고 있다. 다가오는 12월부터는 마라탕을 먹을 수 있게 된다. 나를 나답게 하는 몇몇 순간 중 하나를 온전히 느낄 수 있게 된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나'를, '나다운 것'을, '나답게 하는 것'들을 버리고 무시하고 포기하며 지내왔다. 함성소리 가득한 야구장, 몇 시간씩 둘러보던 미술관, 소설에 흠뻑 빠지기, 내 몸에 집중하는 요가,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순수하게 즐거워하기, 계절이 변하는 순간들을 담고 있는 산사에서의 템플스테이 같은 것들. 모두 다 다시 찾아올 수 없겠지만, 좋아하는 음식 앞에 맘껏 기뻐하는 것 정도는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내가 나로서 충만하게 존재했던 그 시간의 한 조각을, 이제는 떼어와도 되지 않을까. 14개월이나 자라난 막내가 옆에서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이만큼 키웠으니 이제는 괜찮아요, 그렇게 해도 되요. 마라향 가득한 곳에서 나를 위해, '엄마'로서가 아니라 오롯이 나만을 위해, 이 겨울도 힘내 보자고 알싸하고 얼얼하게 한 그릇 휘저어 보고 싶다.  


   마라탕 먹을 12월이 가까워 오고 있다. 조금은 찬바람이 부는 그 날, 살짝 눈이 휘날려도 좋을 것 같다, 나서봐야겠다. 걸어서 8분 거리, 모든 준비는 끝났다.

겨울은 말하나 마나, 마라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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