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Nov 20. 2020

농담'벌레'가 바글바글해지길

농담이 메말라버린 세상을 위해

저는 농담을 좋아합니다. 조금은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키는 농담을 특히 좋아해요. 분위기를 제대로 반전시키는 데는, 살짝 선을 넘을까 말까 하는 농담보다 좋은 게 없더라고요. 태생적으로 진지한 분위기를 못 견뎌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농담을 할 기회도 시간도 많지 않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에 진지충이 너무 많아, 설명충도 많고. 내가 설명충이라는 게 아니라, 이해를 위한 사전 지식과 배경 상황을 필요로 할까 봐 설명해 주는 것뿐이야~"

   물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시동생은 농담을 잘하는 사람이에요. 분위기에 맞는 유머감각과 센스를 타고난 사람이지요. 시동생이 얼마 전 한 말입니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어요. 시동생이 진지충에 설명충이라니. 게다가 그걸 스스로 인정하다니. 시동생 같은 사람마저 진지'충'에 설명'충'이면 도대체 이 사회는 얼마나 삭막해진 것일까요.

   저는 아이를 키우느라 만나는 사람도 매우 한정적인 데다가 코로나로 인해 사실상 아이와 시어머니만 상대한 지 거의 1년째입니다. 이 곳은 시골이라 더더욱 '사회 분위기' 같은 것은 체감할 수가 없어요. 음.. 제가 표현한 '사회 분위기'란 회식이나 정기적 모임에서의 대화 같은 것을 의미해요.

   남편은 군인인 데다 전형적이고 모범적으로 진지하고 설명이 많은 사람입니다. 말투 자체가 군대체에 문어체라서 대화를 하다 보면 해석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마트에 필요한 것을 사 와 달라고 하면 잠시 후에 메시지가 옵니다. '구매 완료. 더 필요가 요구되는 물품 있으면 연락 요망'(궁서체 어디 없나요..) 이럴 때면 저는 군인 남편 행세를 하는 기계와 사는 기분이 들어요.. 분기에 한 번씩 하는 농담은 아재 개그 수준이라, 웃을까 화낼까 고민하다가 무반응으로 넘어갑니다. 더더욱 제가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없을 수밖에 없지요. 그나마 저의 개그 센스마저 갉아먹을까 봐 경계하며 지냅니다.

   어쨌든 시동생을 보니, 정말 진지충과 설명충이 많긴 한가 봅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빵빵 터지는 유머감각을 가진 그마저도 저런 정도라니. 하긴, 제 동생과 저 역시 그렇게 변하긴 했네요. 늘 통화마다 유쾌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진지하고 때론 심각해지기도 하는 걸 보면요.

   음.. 이 나이가 그런 나이인가 봅니다. 30대 후반을 넘어서, 인생의 무게가 여실하게 느껴지는 즈음이면 농담할 기분도 아니고, 농담할 기운도 없게 되는가 봐요. 저와 남편, 시동생과 친동생 모두 먹고사는 문제와 앞으로 살아갈 문제에 매일을 빠듯하게 보냅니다. 도대체가 농담이라고는 할 여유가 없어요. 이런 시국에 농담하면 실없는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이럴 수가, 저도 모르게 글이 개진지해지고 있네요. 진지한 건 딱 질색인데 말이죠. 그렇네요, 현실 앞에 마주해 보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진지'충', 설명'충'이 될 수밖에 없네요.


   요즘 충들 참 많아요. 예능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순간 진지蟲, 한 두 마디만 설명을 거들어도 설명蟲, 아이 데리고 다니면 일단 맘蟲, 카페에서 공부하면 '족(族)'이라더니, 어느새 카공蟲. 급식蟲, 떼 지어 바이킹 하면 자전거蟲, 하다 못해 취업 성공해서 직장 다니면 출근蟲이래요. 일단 남들을 비하하고 혐오하고 봅니다. 어쩌다 이렇게 서로 멸시하고 언어로 차별하고, 그냥 혐오도 아니고 '극혐'하게 되었을까요. 왜 '벌레' 취급하게 되었을까요.

   ............

   벌레.

   벌레.

   사실 벌레는 저런 이미지까지는 아니었어요. 공붓벌레, 일벌레, 책벌레. 약간의 '찐따' 이미지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긍정적인 느낌도 있잖아요. 상대에 대한 혐오를 표현하기에, 벌레로는 부족해서 또는 벌레가 갖는 중의적인(어쩌면 긍정적인 이미지) 어감을 걷어내기 위해 '충'까지 들먹여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삭막해져 있네요. 안타깝습니다. 우리 아이도 이렇게 충들이 많은 사회에서 자라나고, 어느 부분에서는 자신도 '충'이 되어 있겠죠? 어쩌면 좋을까요.


   가벼운 농담부터 해야 할 것 같아요. 웃음이 필요해요. 서로를 보며 웃는 얼굴로 가볍게 주고받는 농담에 혐오에 멸시와 차별이 조금씩 걷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럴만한 센스도 필요하겠지요. 비웃음이나 헛웃음을 사는 농담 말고, 각박하고 험악한 분위기를 녹여내고 웃음을 이끌어내는 그런 농담 말이에요. 진지하지 않아도 되고 많은 설명이 필요 없는, 너무 경박하지 않으면서 적절한 선을 지키는 농담. 아, 열심히 농담해대는 농담 벌레 정도면 좋겠다, 농담 벌레가 많아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물론, 일단 저부터 그래야겠지요? 농담 벌레, 농담꾼, 농담 쟁이 뭐 다 좋아요. 툭 툭 던지는 한 마디로 웃고 웃기고 싶네요. 심각한 순간에, 지루한 나날에 농담 주고받으며 웃고 지내고 싶네요.










아이고,

웃고 지내자고 한 마디 할걸 길게도 써놨네, 설명충이 따로 없네, 김진지 납셨어 아주. 진짜 증말 별루네. 흥. 




오도독 문집 주제 글쓰기 '농담'

매거진의 이전글 말하나 마나, 마라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