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진샤 Nov 23. 2020

붕세권에 살고 있습니다

대확행, 붕어빵의 다른 이름

자랑 좀 해야겠습니다. 저는 '붕세권'에 살고 있습니다.



   저희 아파트 단지 정문 건너편에서 붕어빵을 살 수 있습니다. 자랑할만하지 않습니까? 정문 바로 길만 건너면 붕어빵을 살 수 있습니다! 단팥과 슈크림 다 있고요, 어묵과 군고구마도 있습니다. 호떡은 육교 건너 5분 정도만 걸어가면 살 수 있습니다. 무려 씨앗호떡이에요! 이 겨울을 나기 완벽한 조건입니다. 현금 5000원 들고나가면, 세상 다 가진 기분입니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저는 붕어빵 성애자입니다. 사실 붕어빵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어요. 결혼하고 첫해 겨울, 첫 번째 유산을 한 가을을 겨우 보내고 맞이하는 겨울이었습니다. 서울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에서, 추워서 한 입 베어물었습니다. 그 순간, 삶이 별거 없이 느껴지더군요.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 가까운 곳에서 느끼는 행복이 이렇게나 크다는 진리, 그 행복이 전혀 비싸지 않다는 진리를 한순간에 깨달았어요. 그 후부터 나에게 겨울은 '붕어빵 먹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몇 년 전, 남편이 교육 간 몇 개월간 동생이랑 잠시 같이 살았습니다. 야근으로 늦게 들어오는 동생은, 늘 따뜻한 붕어빵 몇 마리 품에 안고 왔습니다. 첫 아이 낳고 얼마 안 된 누나에게, 붕어빵만큼 큰 선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동생이었어요. 저 역시, 그 시절 제가 기다린 것이 '붕어빵을 품고 있는' 동생임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육아의 고됨은, 붕어빵 먹는 순간만큼은 사라졌습니다. 그 후로 동생은 겨울의 초입에 붕어빵을 볼 때마다 사진을 보내오곤 합니다. "붕어빵만 보면 누나가 생각나."


동생이 얼마 전 찍어 보내온 사진. 올해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사진입니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도 있지만, 붕어빵은 저에게는 '커다랗고 확실한 행복'입니다. 뜨거운 붕어빵 머리(저는 머리파예요, 꼬리는 디저트 기분으로 먹어줘야 제맛입니다.) 한 입 베어 물면, 온 겨울을 다 품을 만큼 행복합니다. 일상의 구석에서 먼지처럼 날리는 고민거리들, 매일을 아등바등해야 하는 적잖은 이유들, 자식새끼들 먹여 키울 생각 다 사라지지요. 이렇게나 확실한 행복이 지척에 있으니, 무엇이 더 부럽겠습니까.


   이사를 자주 다녀서인지, 붕어빵을 집 근처에서 쉽게 구하는 것은 제게 소중한 일입니다. 성남과 평택에서 지낼 때는 가까운 곳에 없어서, 번화가 나갈 일이 있으면 반드시 붕어빵을 찾아보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볼 일을 다 봤는데 붕어빵을 못 찾으면 괜히 여기저기 더 둘러보곤 합니다. 운전하며 두리번거리다 사고 날 뻔한 적도 있고, 길거리에서 여섯 명에게 물어물어 겨우 찾은 적도 있지요.(미련이 엄청난 건지 식욕이 엄청난 건지 열정이 엄청난 건지..) 겨우 찾은 붕어빵을 먹어 보면, 붕어빵 아저씨가 꿀을 넣은 것은 아닌가 한참을 들여다 봅니다. 아무리 봐도 팥앙금뿐인데 말이지요. 이런 경험들이 있어서인지 아파트 정문 앞 붕어빵 아저씨가 더욱 귀인처럼 느껴지고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또 빠세권 거주자이기도 합니다. '빠리바ㄱ트' 체인점이 걸어서 7분 거리예요. 작년 4월 빵집이 문을 열었을 때, 동네는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이제 빵 사러 차 타고 20분 나가지 않아도 돼요', '우리 동네에 파리 빵이라니,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문명의 맛을 보니 문화인이 된 듯합니다' 일주일 넘게 줄지어 선 사람들이 문 밖까지 있었습니다. 4차선 도로와 논과 도랑과 몇몇 순댓국집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동네에, 체인점 빵집이 들어서니 그럴 수밖에요. 물론 작은 동네 빵 가게가 있긴 했지만, 소보로 빵과 생크림 빵, 꽈배기도너츠와 양배추 케첩 마요네즈 샐러드 샌드위치 말고는 없는 순수한 시골 빵집이었어요. '빠리바게ㅌ' 빵에서 느껴지는 자본의 달짝지근함, 너무나도 오랜만에 느낀 그 맛에 다들 환호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빠세권 거주자이신 분들은 진심으로 복 받으신 겁니다. 소소하다 못해 하찮게 느껴지는 그 행복이, 어떤 이들에게는 삶의 밑바탕부터 달라지는 행복이니까요.






   저는 원래 소소한 행복에 늘 깨어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파란 하늘이어서 행복하고, 비가 오면 비가 와서 행복하고, 커피가 내 손에 있어 행복하고, 야구장 가는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주말 아침 늦잠에 행복했고, 연락하면 바로 나와주는 친구가 있어 행복했습니다. 인생은 고(苦)라고 했던 싯달타가 도대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데 말이야, 그분은 최소 우울증이었던 거지!

   그러나 결혼, 특히 출산과 육아는 저에게서 행복을 느끼는 세포를 아예 없애버렸습니다. 저를 없애고 '엄마'가 들어서자, 그야말로 인생은 모든 순간이 '고통의 바다(苦海)'였습니다. 어느 하나 불행하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지쳤습니다. 정말이에요. 저는 그렇게나 육아에 낯설었고, 그 낯선 육아의 한가운데에서 매일 슬퍼하고 불행해하기만 했습니다. 빠져나올 방법도 몰랐고 힘도 없었으며 빠져나오려 하지 조차 않았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짙어질 때, 다행히도 늘 겨울이 왔고 붕어빵은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회전판이 돌고 반죽 물이 부어지고 팥앙금이 자리 잡고 뚜껑을 닫고 다음 붕어빵이 탄생하는 자리에 새로운 붕어빵을 위한 터전이 밑바닥을 보이는 행위를 보노라면, 나의 고통 따위는 - 정말 고통 '따위'가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 시시콜콜해져서 붕어빵 가장자리의 부스러기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삶이라는 게 저렇게 단순한 회전의 연속이고 늘 새롭지만 늘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반복이고 지치거나 혼자일 때면 조금은 쉬어도 되는 과정일 뿐인데, 나는 어쩌자고 그렇게 고통과 무기력만 생산해냈을까.


그래, 어차피 재료를 넣어서 같은 모양을 만들어 낼 거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재료를 넣어 보자. 조금은 즐겁고 많이 보람차고 지금의 순간에 충실한 기분, 이런 재료를 넣어보자. 어차피 '육아'라는 같은 모양의 결과가 나오겠지만, 그 맛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뜨거운 붕어빵이 내 손에 쥐어지게 됩니다. 역시나 머리부터 한 입! 하아, 고통이고 보람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그냥 맛있습니다. 그렇게 속까지 뜨뜻해진 채 어린이집 하원을 가면, '엄마' 하고 뛰어나오는 아이들을 큰 행복으로 맞이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씩 천천히, 행복에 늘 깨어있던 예전의 나, 원래의 나를 찾고 있는 것 같아 그것이 가장 큰 행복으로 느껴집니다.



   인생 뭐 있나요, 2000원 가슴에 품고 아이들을 어린이집 보내고 돌아오는 길 붕어빵 받아 드는, 이런 매일이 이어지면 그게 인생이지요. 붕세권 거주자로서 이 커다랗고 확실한 행복 때문에 오늘도 설렙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