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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Dec 09. 2020

육아학과 신설 및 부작용에 관한 고찰

"이렇게 애나 키울 줄 알았으면 석사는 하지 말 걸 그랬어."



   내가 아직 첫째를 낳지 않았을 때, 둘째를 임신 중이던 친구가 한 말이다. 국내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교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청대 소설)에 대한 논문을 쓰고, 대기업 연구소에서 일하던 친구였다. 첫째를 가지고 낳아 키우고 거의 연년생으로 둘째를 가졌다. 아직 아이가 없던 나는 그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녀의 스펙들은 그녀의 삶의 일부분이었고,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만했다. 나 역시 나의 전공과 석사 논문에 만족하고 있던 때라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첫째를 낳아 기르고 둘째, 셋째를 낳으면서 내 인생에 가장 영향을 미친 타인의 말은 , 다름 아닌 저 말이다. 애 키우는 데 석사 논문은 라면 받침대 이상의 역할을 해내지 못하고 있고, 다행히 장학금으로 석사를 해 망정이지, 내 돈 내석(사)이었다면 배가 아파 밤마다 불면에 시달렸을 것이다.





   이렇게 애나 낳아 키우고 있을 거였다면, 고등학교 때 왜 그리 열심히 공부하고 왜 그리 불안해했던 걸까. 20대는 왜 그리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살았던가. 어차피 여자는 애엄마, 남자는 회사원이 되고 말 것을. 어차피 아줌마, 아저씨가 될 것을 왜 그리 목숨 걸고 했던 걸까. 다 쓸데없는 짓이었다.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아 전공을 많이 했다. 중국어, 신문방송, 정치외교, 인도철학,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외국어는 또 어떤가,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고대 인도어-산스크리트), 중국어. 다 쓸모없다. 이렇게 집에서 애나 키우고 있는데, 브루스 커밍스, 한나 아렌트가 웬 말이며, 유식과 중관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JLPT와 HSK, 토익에 쏟아부은 돈을 생각하면, 세 아이 기저귀 값과 물티슈 값을 다 해도 남을 게다. 생각할수록 이건 아니다 싶은 거다. 이럴 거였다면 처음부터 아예 깔끔하게 '육아학과'에 입학해서 4년 내내 깨알같이 육아 배우고 나왔어야 했다. 그랬다면 무방비로 육아를 맞이해 그 누구도 해결해 주지 못할 우울증도 없었을 거고, 육아 만6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헉헉대고 있진 않았을 것이다. 체계적인 육아 학습을 통해 좀 더 나은 부모가 되었을 것이다.



   홀로 이런 생각을 하며, 육아학과를 신설해 보았다. 물론 학과장은 나이고, 각기 수업내용에는 그 분양의 전문가를 초빙(하도록 노력)한다. 아래는 그 공상의 결과물로서, 육아학과의 간단한 커리큘럼이다.



1학년 : 생애 첫 1년

-1학기: 임신과 출산, 신생아 시기와 100일까지.
이 시기는 임신 과정의 험난함과 출산의 위험, 신생아 육아의 고됨을 교육한다. 물론 신생아 씻기기, 응급치료 등도 학습한다. 특히 남학생의 경우, 10킬로그램을 배에 묶고 생활해 보는 '만삭 체험'을 반드시 하고 리포트를 제출해야 한다.
-2학기: 12개월까지의 육아.
각 월령별 육아를 이해하고 학습한다. 개월별 발달과 치아 발육, 이유식 만들기와 먹이기, 수면 교육 등을 학습한다. 이유식에 있어서는 재료와 영양에 대해 익히고, 조별로 냄비 이유식, 마스터기 이유식, 밥솥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보고 발표해 본다.


2학년 : 영유아기

-1학기: 36개월 성장.
이 시기는 언어 발달, 생활 예절, 배변 훈련, 훈육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학습하고 이해한다. 가정 보육과 어린이집 보육의 장단점에 대해 알아보고, 주양육자와의 의사소통에 대해 알아본다. 특히 여아 육아의 경우 머리 묶기와 땋기, 남아 육아의 경우 몸으로 놀아주기에 대해 간단히 실습해 본다.
-2학기: 만 6세까지의 성장.
미취학 아동의 발달과 단계별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남아, 여아의 육아 차이를 이해하고, 성 역할 교육의 중요성을 확인한다.(기존의 성 역할 관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개념의 젠더 교육을 의미한다) 신체적으로는 유치와 영구치 발달, 정서적으로는 유아의 자존감 확립, 인지적으로는 한글 교육과 독서 습관, 사회적으로는 친구 관계 형성 등에 대해 학습한다.


3학년: 초등 육아

- 1학기: 초등 저학년.
학교 생활에 적응할 때 필요한 것들, 교우 관계, 학습과 놀이의 상관성 등에 대해 이해한다. 초등생 핸드폰 사용에 대한 논란, 미디어와 코딩 교육에 대한 현 상황을 짚어보고 토론한다.
- 2학기: 초등 고학년.
실질적인 사춘기 진입과 그에 따른 신체 변화, 교우 관계 형성 등에 대해 학습한다. 부모와의 관계 재정립 방법과 갈등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4학년: 실습

-1학기: 신생아 현장 실습.
연계된 신생아 프로그램을 통해 신생아 출산 가정에서 도우미 분과 함께 실습한다. 기저귀 갈기, 씻기기, 먹이기, 재우기 및 기타 신생아 육아의 돌발 상황에 대해 확인하고 이해한다.(중간고사 리포트 제출) 12개월 이전 현장 실습. 특히 6개월 이후 육아 현장에서 이유식 육아에 대해 집중적으로 실습한다.(기말고사 리포트 제출)
-2학기: 오후 맞벌이 가정 하원 도우미 실습.
36개월 이전 영유아에 대해 하원 이후 도우미 분과 함께 실습하도록 한다. 생활 습관과 배변, 훈육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해한다.(중간고사 리포트 제출)기말고사까지는 논문 준비를 한다.
2학기는 오후 실습이기에, 실질적으로 논문 제출 학기라고도 할 수 있다. 육아학과 과정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주제로 소논문을 작성해 보도록 한다.


   육아학과의 장점을 대략적으로 기술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육아를 이해함으로써, 육아로 인한 우울을 예방할 수 있다. 부정적 육아에서 긍정적 육아로, 나아가 행복한 육아를 위한 기본 과정을 익히게 된다.

2. 단계별 육아를 학습하는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를 대비할 수 있다.

3. 육아로 인한 가정의 갈등을 해결하고 가정 붕괴를 예방할 수 있다.

4. 남성의 경우, 육아의 전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육아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나아가 젠더 역할에 대한 기존의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다.

5. 육아에 대한 올바른 이해, 아동의 발달과 심리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통해 인생 과정에 대해 전반적으로 재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장점을 토대로 20살 대학에 입학한 입학생 모두, 1학기는 무조건 육아학과를 필수로 해야 한다. 그래야 부모가 나를 어찌 낳아 지금까지 키웠는지 심정적으로 이해하고 체감할 수 있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이 선택한 학문을 비로소 시작할 수 있게 된다.

   20살은, '내'가 세상의 중심이기 쉬운 나이다. 한국의 교육 현실에서, 20살은 갑자기 주어진 자유에 당황하면서도 들뛰기 쉬운 시기이다. '내'가 잘 나서 이렇게 되었다고, 세상에 첫걸음을 내딛는다고 생각할 때이다. 그러나 그저 그제야 세상에 던져진 때이다. 그때에, 생명의 탄생과 육아를 경험해보면 어떨까. 나뿐 아니라 내 곁의 모든 이들이, 나도 나의 형제도 나의 부모도 이렇게 나고 태어나 길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떨까. 극진한 부모의 돌봄과 사랑 속에서 내가 자라고 지금에 이르게 되었음을, 조금은 겸허해진 마음으로 청춘을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 모든 장점을 상쇄시킬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 바로,

   육아학과를 이수하면, 아니 단 첫 학기 한 학기만 이수해도 '비혼 주의자''딩크족'이 양산될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지금도 '육아'라면 치를 떠는데, 저렇게까지 배우면 더더욱 아이를 안 낳으려 하겠지. 육아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기에 지금의 사람들은, '나'를 위한 삶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니까. 꼰대 냄새를 풍기려는 건 아니다. (이미 풍긴 듯한..) 그만큼 육아가, 희생과 헌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당장 나조차도, 거의 매일을 애셋 육아를 겨우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은 예쁘지만, 아이들을 보는 시간보다 글을 읽고 쓰는 시간이 좀 더 행복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마지못해 희생과 헌신을 길러내는 그 마음의 자리에, 나에게 집중하는 마음은 쉽게 솟아오르니 말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육아학과는 영원히 개설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은 더 독박 육아에서 허우적대며 그때그때 다른 정도의 우울감을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낼 것이다. 나는 육아학과의 과정 없이, 홀로 육아에 던져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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