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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샤 Mar 19. 2021

밥의 탄생이 하얗게 흔들리고 있다




  육아 우울에 한참 무기력해 아무것도 못하던 나날,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한 가지는 매일 해야만 했어요. 밥 짓는 일. 아무리 우울하고 힘이 없고 축축 처지고 다 싫고 귀찮아도 밥은 해야 했어요. 남편과 아이, 아니 나를 위해서라도 밥은 해야 했어요. 밥을 하면서도, 이딴 밥 먹어서 뭐하냐, 밥 먹는다고 힘든 게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살만 찌는데, 하는 생각만 했어요. 

  밥이 없는지도 모르고 고등어를 구웠다가 밥솥을 열었던 날은, 그냥 콱 죽어버릴까 싶었던 날도 있었어요. 고등어구이를 좋아하는 아이가 빨리 밥 먹고 싶다고 졸라댔지만, 그저 밥솥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만 바라보았어요. 밥이 되는 속도와 같은 속도로 식어가는 고등어도 보았어요. 밥솥과 고등어 사이에서, 나만이 가장 무용(無用)했어요. 남편은 '천천히 해요, 기다리면 되지 뭐'라고 했지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배 속의 빈 공간이 소리를 냈어요. 언행불일치였어요. 

  '쿠ㅋ가 맛있는 백미밥을 완성하였습니다, 밥을 흔들어 주세요, 쿠ㅋ'하는 소리에 밥솥을 열었어요. 휘휘 젓고는, 늦은 식사의 화룡정점을 찍었어요. 20분 전에 콱 죽어버릴까 했다가, 고등어가 식어서 비려졌네, 하며 먹고 있는 저를 보았어요. 그래도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먹는 제게, 밥은 하얀 속내 그대로 드러내며 말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 먹어야지, 살고 봐야지, 먹고 기운 차리면 조금은 덜 우울해질 거야. 일단은 먹어.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다가 그렇게 시가 떠올랐어요. 

  그렇게, 밥이 주는 1차원적인 응원에 겨우 힘을 냈어요. 흰 밥을 먹으며 어두운 그 터널을 간신히 지나왔어요.





  밥을 대하는 태도는, 시어머니께서 보여주셨어요. 기독교 신앙을 가지신 어머니는 밥이 다 되고 흔들기 전에 주걱으로 가볍게 십자가를 그으셨어요. 아주 짧은 시간 눈을 감았다 뜨시고 밥을 흔들었어요. 여쭈어 보니, '이 양식으로 지혜와 용기를 갖게 해 주옵소서'라고 기도한다고 하셨어요. 누구는 죽지 못해 밥을 하는데, 누구는 매일 밥 앞에서 지혜와 용기를 구하는 기도를 올렸어요. 똑같은 쌀과 똑같은 밥솥 앞인데도 이렇게나 달랐어요. 

  삶이란 이런 거구나, 돈오(頓悟)의 순간이었어요. 생명의 연장을 위한 근본인 밥을 위하는 마음, 그 마음을 바탕으로 일상이 일어서고 인생이 되는 것이구나. 

  그때부터 밥을 하는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어요. 밥은 나의 매 순간을 태어나게 해주는 근본이었어요. 나는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그 시간에 온전히 다시 태어날 수 있었어요. 매일 하는 밥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자, 마음결도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매일 밥을 하는 순간만 바뀌어도 삶의 큰 부분이 바뀌더라구요. 밥은, 우리 삶의 근본이기 때문이었어요. 



  어제도 '뜨거운 하얀 밥이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첫째를 위해 막 지어진 따끈한 저녁밥을 줬어요. 늘 그렇듯 싹싹 긁어 다 먹었어요. 그 아이는 밥의 힘으로 자라고, 내 안에는 그런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자라요. 오늘 새로 태어날 모든 순간을 위해, 밥솥을 열며 하루를 시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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