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
키부츠를 다녀온 지 12년이 지난 지금도 내 이력서를 읽은 면접관이나 키부츠 활동 이력을 알게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대개는 어떻게 스물두 살의 나이에 이스라엘에 갈 생각을 했는지를 궁금해했고, 간혹 종교적 의미(성지순례)로 택한 것이었는지, 도대체 거기 뭐가 할 게 있어서 갔는지 등 그 당시 이스라엘 행을 선택했던 배경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다.
나는 이스라엘을 다녀오기 전까지 해외 경험이 전무했었다. 내가 타본 비행기라곤 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위해 제주도행 비행기를 타본 것이 전부였다. 당시 한 친구가 장난이랍시고 공항에 있는 친구들에게 "너 여권 가져왔어?"라는 말을 남발하고 다녔는데 그때의 난 '아닐텐데...' 하면서도 괜히 움찔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나는 바깥세상에 대해 무지하고 깜깜했다.
2010년 대학에 진학하고 내가 생각했던 세상이 조금 넓어지자 그보다 더 넓은 세계는 어떨지 궁금해졌다. 성인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자유)을 술을 마시거나 청불 영화를 관람하는 것 정도에 만족하고 싶지 않았다. 바깥세상에 대한 궁금증은 시간이 흐를 수록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이런 현상은 어린 시절부터 접했던 미국 드라마(특히 프렌즈)와 외화로부터 꽤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살 터울의 대학 언니로부터 '키부츠'란 단어를 듣게 되었다. 외국 생활에 대한 내 갈망을 알았던 언니는 내게 "어디서 봤는데, 거기는 숙소도 제공해 주고 외국에서 온 친구들도 사귈 수 있대."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키.부.츠
이 요상한 이름의 공동체는 뭐길래 외국 친구들도 사귈 수 있고 잠자는 곳까지 제공해 주는 것인가? 나는 그날로부터집에서건 학교 도서관에서건 닥치는 대로 키부츠에 대해 검색하기 시작했다. 2010년도만 해도 20대에 외국을 나간다면 보통 여행이거나 유학(어학연수), 워킹홀리데이를 목적으로 한 출국이 많을 때였다. 당시 유행하는 나라도 캐나다, 미국, 호주, 필리핀 등의 한정된 나라였고 중국어 붐이 불면서 중국에 공부를 하러 나가는 경우도 많았다.
헌데 아프리카도 아니고 남미도 아니고 이스라엘이라니. 나는 어떤 조건과 혜택보다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 점점 알고 싶어졌다. 당시 우리에게 이스라엘은 너무나도 먼 나라였고 내가 아는 거라곤 탈무드 뿐이었으니 말이다.
다행히도 한국에는 키부츠 코리아(www.kibbutz.or.kr) 사이트에서 이스라엘 키부츠 생활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안내되어 있었다. 간결하고 깔끔한 신청자 조건은 내 마음을 더 들뜨게 했다.
'신체와 정신이 건강하며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
'발룬티어 비자는 최대 6개월 동안 발급이 가능하고 매달 소정의 용돈 지급 예정'
'전 세계의 젊은 청년들이 매일 이스라엘 키부츠로 향하고 있다...'
내가 꿈꾸고 원하던 외국 생활이 눈앞에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 내 스스로 내 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제일로 마음에 들었다. 그때부터 내 머리는 이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1학년은 모두 채우고 2학년이 되기 전에 휴학을 해서 1월에서 6월까지는 아르바이트를, 7월부터 12월까지는 이스라엘에서 지내면 되겠다.'
방법을 알아보고 계획을 세우고 나니 이스라엘은 그리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혼자 비행기를 타고 머나먼 나라로 가는 것도 그리 큰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이스라엘에 가기 위해 넘어야 할 제일 큰 산은 '엄마'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