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개인의 약속에서 행정의 언어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수많은 계약을 맺으며 살아갑니다. 아침에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구매하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클릭 몇 번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행위 모두 돈이라는 대가를 지불하고 재화를 받는다는 묵시적인 약속의 이행입니다.
이러한 일상의 거래들은 특별한 절차 없이도 원만히 성립되죠. 그러나 거래의 규모가 커지고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면 단순한 신뢰만으로는 부족해집니다. 기업 간의 대규모 자재 구매, 공장 신설과 같은 거래에는 수많은 서류가 오가고 까다로운 법적 검토 과정을 거칩니다.
계약의 역사는 곧 이러한 약속이 어떻게 신뢰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제도화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고대 사회에서 계약은 신에게 맹세하거나 공동체 앞에서 증언하는 개인과 개인 간의 약속에 가까웠습니다. 그 진정한 법적 힘은 로마법 체계가 확립되면서 비로소 부여되었죠.
로마법은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라는
대원칙을 제시하며, 계약을 단순한 도덕적 의무가 아닌 강제력을 지닌 법적 행위로 승격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까지 계약은 철저히 사적인 영역, 즉 당사자 간의 자유로운 의사 합치에 기반한 자율적인 교환 행위였습니다.
계약의 본질적 변화는 근대 행정국가 시대가 도래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정부가 세금을 기반으로 국민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게 되자, 계약은 더 이상 개인 간의 거래로만 존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도로 건설, 항만 구축, 국방 물자 조달 등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의 재원은 국민의 세금이며, 그 결과는 불특정 다수 국민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처럼 공적 자금이 투입되고 공적 목적을 달성하는 계약에 대해 국민들은 공정성, 투명성, 그리고 책임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국가는 이에 응답하여 계약을 엄격히 관리하는 법적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따라서 현대의 공공계약은 단순히 효율적인 구매를 위한 상업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익을 위해 공적 자금을 책임 있게 사용하겠다는 행정의 언어이자 제도적 약속입니다. 공공계약이 지켜야 할 원칙들은 곧 행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신뢰의 기반이 됩니다. 이렇듯 계약은 개인의 약속에서 출발했지만, 이제는 사회 전체의 공공적 가치를 담는 중요한 제도로서 존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