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문에 사는 유령,
‘지문인식 입찰’

제도는 2024년에 죽었지만, 문구는 살아있다

by 조민우

"주무관님, 공고문에 보니까 '지문인식 신원확인'을 해야 한다고 적혀 있네요?

저희 이번에 새로 만든 회사라 지문보안토큰 기계가 없는데, 이거 지금이라도 사러 가야 합니까?"

2025년의 어느 날. 신규 업체 사장님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담당자는 순간 멈칫합니다.


"어? 지문입찰 없어진 거 아니었나? 내 공고문에 그게 왜 들어있지?"

확인해 보니 정말입니다. 입찰 유의사항 3조 나항에 "지문인식 신원확인 입찰이 적용됩니다"라는 문구가 시퍼렇게 살아있습니다.


담당자는 황급히 대답합니다.

"아, 사장님. 그거 옛날 문구인데 제가 못 지웠네요. 그냥 스마트폰 간편인증(PASS, 카카오 등)으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이 해프닝은 왜 전국 관공서에서 매일 반복될까요?

여기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두 세계'의 슬픈 사연이 있습니다.



1. 지문입찰의 사망신고 (2024. 1. 1.)

팩트부터 체크합시다.

조달청은 2024년 1월 1일부로 지문인식 입찰 제도를 전면 폐지했습니다.

과거에는 부정 입찰을 막겠다며 업체의 지문을 등록하게 하고, 입찰 때마다 전용 기기에 손가락을 대야 했습니다. 하지만 기기가 비싸고, 인식 오류가 잦았습니다. 무엇보다 기술 발달로 '모바일 간편인증'이나 '생체인증'이 가능해지면서 지문인식기는 낡은 유물로 사라진 것입니다.

이제는 네이버, 카카오, PASS 앱 하나면 누워 있다가도 투찰이 가능한 세상입니다.


2. 좀비처럼 살아남은 '복붙'의 폐해

제도는 사라졌는데, 왜 공고문에는 유령처럼 남아있을까요?

범인은 바로 공무원 사회의 '전차(前次) 공고 복사' 관행 때문입니다.


공무원은 공고문을 새로 쓰지 않습니다.

작년에 했던 공사, 혹은 옆 부서 김 주무관이 올린 공고문을 '다운로드' 받아서, 날짜와 금액만 고쳐서 다시 올립니다. 이 과정에서 깨알같이 적힌 '입찰 유의사항'이나 '일반 조건'은 아무도 읽어보지 않습니다.

"작년에 문제없이 계약했던 공고문이니까, 올해도 맞겠지."

이 안일한 믿음이 2023년의 공고문을 2024년으로, 다시 2026년으로 실어 나릅니다.

그 속에 죽은 '지문입찰' 문구가 숨어있는 줄도 모른 채 말이죠.


3.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비극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바로 '단절' 때문입니다.

발주청(공무원)은 입찰을 '보는' 사람이지, 직접 '투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라장터 입찰 화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지문 토큰을 꽂아야 하는지 앱을 켜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공고문에 '지문'이라는 단어가 있어도 그게 현장에서 얼마나 큰 혼란을 주는지 체감하지 못합니다.

반면 계약상대자(업체)에게 공고문은 곧 '법'입니다.


공무원이 실수로 남겨둔 문구라도, 업체 입장에서는 겁을 먹습니다.

"혹시 이번 건은 특수해서 지문이 필요한가?"

감히 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거 복붙 하다가 실수하신 거죠?"라고 지적하기 어렵습니다.

이 간극 때문에, 아마 '지문입찰' 문구가 대한민국 관공서 공고문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앞으로도 5년은 더 걸릴지 모릅니다.

누군가 작정하고 '표준 공고문'을 새로 타이핑하지 않는 한, 좀비는 계속 복제될 테니까요.


[[이것만 기억하세요]]

지문입찰 폐지 2024년부터 지문 토큰 없어도 됩니다. 공고문에 있어도 쫄지 마시고 '지문인식 예외 신청'이나 '간편인증'으로 투찰하세요.

공무원의 숙제 제발 전임자 파일 '복붙'만 하지 말고, '입찰 유의사항' 한 번만 정독합시다. 죽은 규정은 좀 보내줍시다.

원칙은 불변 도구(지문)는 사라졌지만, '1인 1인증서(대리 투찰 금지)' 원칙은 여전합니다. 인증서 빌려주면 그건 여전히 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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