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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식하는 노무사 Jun 19. 2023

국선노무사 안하려는 이유

대학교 시절에 노무사를 공부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합격하여 노무사업을 잘 하고 있는 과 선배가 후배들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진로와 관련하여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답을 듣고 친목도 다지는 그런 시간이었죠.


그 선배는 후배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았었습니다. '연봉 얼마에요?' '몇년 공부해야해요?' '정치계로 갈 수도 있나요?' 


저도 질문을 했었습니다. '근로자를 위해 일하는 노무사들 많이 있나요?' '선배님은 근로자를 위해 일하시나요?' 


그 선배가 잠깐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이내 차분해져 답을 해줬습니다. "본인도 학생때는 학생운동도 하고 노동운동도 했었고, 근로자를 위한 삶을 꿈꾸기도 했었다. 이런 질문을 받으니 시간을 내서 온 보람이 있다."라고요.


그러면서 덧붙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업에 오시면 후배님도 저처럼 다른 생각을 하실 수도 있어요"


저는 그때 이 말의 의미가 뭔지 잘 몰랐습니다. 월급 150만원만 받아도 풍족하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을 가진 시절이었고 노무사 업무 자체가 갈등과 스트레스를 수반하는 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저 근로자를 위한 삶이 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언 9년차가 되갑니다. 9년차가 된 시점에 왜 노무사들 중에 근로자를 위한 삶을 사는 노무사가 "극히" 적은지 제 생각을 써보겠습니다.


1. 돈이 안된다.

예전에는 월급 100만원만 벌어도 김밥천국만 가면서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차도 사고 집도 사고 결국 머니가 필요하더군요. 근로자 사건은 많이 없기도 하고 있어도 돈이 별로 안됩니다. 간혹 큰 건이 있기는 하지만 가뭄에 콩나기 수준으로 있고 근로자 사건만으로는 남들처럼 사는 삶을 영위하기가 참 어렵더군요.


2. 돈에 비해 일이 힘들다.

노무사 일 중에 가장 깔끔한 일은 자문업무라고 생각합니다. 물어보는 것에 대해 답만 해주는 것처럼 쉬운 일은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근로자와 업무를 하게되면 그 사람의 일대기를 다 알아야 합니다. 근로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으며, 회사 내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고, 어떤 문제가 있으며, 본인은 어떻게 해결하길 원한다는 한편의 대서사시를 봐야하기 때문에 시간도 많이 들고 품도 많이 듭니다. 근로자 한명과 상담을 한다고 했을 때 짧으면 1시간 길면 반나절입니다. 이렇게 상담을 진행하고나면 진이 빠져서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더라구요.


3. 속이는 근로자들이 많다.

억울한 근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억울하다고 해서 그 근로자가 악의가 없는 근로자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 사실관계를 조작하거나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등의 사례가 많습니다. 사실관계 파악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이는 2번과 연계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4. 공공서비스의 강화로 권리구제가 대부분 가능하다.

제가 위에서 근로자 사건은 돈이 안되고, 돈이 되는 건도 가뭄에 콩나듯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라의 노동부가 일을 잘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청은 더이상 문턱이 높은 기관이 아닙니다. 근로자는 억울한 일이 생기면 노동청으로 달려가 억울함을 토로하고 법률적 대응을 할 수 있습니다. 임금체불이나 부당해고건은 이미 노동청이나 노동위원회에서 어느정도 커버를 하고 있으며, 비용도 저렴하고 신속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굳이 수임료를 주면서 노무사를 선임할 필요가 없는 건도 많습니다. 따라서 아예 무료로 몸을 내던져 근로자를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노무사가 아닌 이상 일정한 수임료로 먹고 살거라면 근로자가 노무사를 선택할 매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이죠.


노조나 근로자를 위해 일하시는 노무사들이 많이 계시단걸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평균인이라고 자부하는 저의 시각에서 근로자만을 위한 노무사가 되기 어려운 이유는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핑계를 대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권리구제대리인이라고 국선노무사 문의가 들어오면 왠만하면 다 하려고 합니다.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작은 불씨는 남기고 싶은 마음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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