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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철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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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철 Oct 16. 2018

카레의 맛

 내가 맛본 카레는 복잡하다. 가난한 여행객이 어느 일본 시골에서 택시비는 통 크게 10만 원이나 쓰는 맛이랄까? 어떤 맛이라고 명쾌하게 말할 수 없다. 언 7년째 맛보고 있지만 아리송하다. 어느 날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단맛이 강했고 어쩌다 한 번은 깊은 쓴맛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묘하게 자꾸 손이 간다.


1.급식 카레


"야, 오늘 점심 카레다!" 아침 8시를 겨우 넘긴 시간이었다. 이유 없이 항상 일찍 오던 그녀는 막 등교한 나에게 인사 대신 점심 메뉴를 건넸다. 가뿐히 짜증으로 답했다. 딱히 설레는 정보 전달은 아니었기에. 난 카레의 매콤함이 싫었고 혀가 노래지는 게 괴로웠다.


 그녀는 꼭 카레를 교복에 흘렸고 난 항상 지적했다. 그녀는 굴하지 않고 카레 자국의 냄새를 맡으며 좋다고 답했다. 약 올리는 표정은 서비스! 항상 그런 식이었다. 우린 이런 실없는 티격태격을 왕래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알만한 포인트에서 기분 나빠하며 온 마음을 다해 짜증 냈다. 뒤를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악수를 청하며 "화해하자"하면 그만이었으니. 이상하게 언제나 잘못한 쪽 혹은 과하게 화낸 쪽이 더 당당했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급식 카레를 3년이나 함께 먹었다. 참 우연히 말이다. 인연과의 만남은 연속적인 우연이 전재해야 한다고 토마시가 말했다. 그는 6번의 '우연히'를 거쳐 인연을 만났다. 나 또한 그녀와 '우연히' 같은 고등학교에 왔고 '우연히' 2반이 됐고 '우연히' 내 뒷자리에 앉았고 '우연히' 그녀는 달걀을 가져왔고 '우연히' 말을 걸었고 '우연히' 또 한 번 내 뒷자리에 앉게 됐다. 이 '우연히'가 우리를 낯익은 사이로 만들었다.


2.일본식 카레


 그녀는 늘 어느 정도 신바람이나 있다. (물론, 바람이 빠진 날도 좀처럼 볼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사준 지갑을 잃어버리기도 술을 꽉 마셔 술병이나 다음 날 나와의 약속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짐작하듯, 난 앙금이 남아있다. 그녀의 흥 덕분에 버려진 것들에 대해 달리 할 말이 없다. 고칠 수 없는 고질병이다.


 하루는 그녀가 카레를 해먹을 거라며 신이나 집으로 뛰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봤다. 얼마나 발걸이 가벼워 보이던지. 삼시세끼 카레를 먹을 수 있는 그녀다. 특히 일본식 카레를 애정했다. 그러나 내게 단 한 번도 일본식 카레를 먹으러 가자고 말한 적 없다. 수도 없이 "뭐 먹을래?"라는 질문을 했지만 “카레!"라는 답변은 없다. 그녀가 한 달 일본 여행 중 카레를 먹은 횟수는 30번에 달하지만, 우리의 7년에는 급식 카레가 전부였다. 우리 사이에 자발적인 카레는 없었다.


 어쩌면 내가 카레를 싫어하는 사실은 오래도록 까먹지 않은 것일 테다. 그녀는 나의 사소한 정보를 기억했다. 그리고 당연하게 배려했다. 이런 그녀의 버릇 때문에 난 항상 그녀의 실수를 넘어가 버린다. 내가 손안에서 벗어날 수 없게 밀당하는 것이 분명하다.


 난 브로콜리를 싫어한다. 익은 당근도 싫어한다. 그렇지만 카레에 적셔지면 자연스럽게 먹고 있다. 이상하게 맛있다. 그녀가 그렇다. 그녀의 얄미운 점이 일본식 카레와 어우러져 맛있다. 난 이왕 아직까지 친한 김에 그녀와 앞으로 조금 더 친해 보려 한다.


PS. 선혜의 생일을 축하하며.



Recipe_ 스프카레


삿포로를 다녀온 선혜에게


고형 카레 3조각, 닭 다리 살, 양파 1/2, 마늘 한 줌, 각종 채소(옥수수, 파프리카, 감자...), 반숙 달걀, 쪽파


1. 팬에 양파와 마늘을 넣고 충분히 볶아준 후 물을 붓고 카레를 풀어준다.


2. 후추와 소금으로 밑간 한 닭 다리 살을 구운 후 꼬치에 꽂아준다.


3. 각종 채소도 구운 후 꼬치에 꽂아준다.


4. 그릇에 카레와 꼬치를 담은 후 반숙 달걀과 쪽파를 올려주면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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