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 나날

「배부른 생각」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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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마다 방귀를 뀌어대던 재석이를 비웃은 벌일까. 임신 중기를 지나며 나날이 데시벨이 높은 뿡뿡이가 되어간다. 나름 수줍음이 많고 알량한 자존심도 센 편이던 임산부는 조절 능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참으로 괴롭다.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해, 남부끄럽기만 하다. 기척도 없이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 덕에 스스로 짐작하지도 못한 채 밀어내버리는 경우가 잦다. 임신과 함께 찾아오는 빈번한 가스 배출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아기가 자리를 잡아가며 자궁이 커지고, 여성 호르몬이 증가하며 장운동을 저하한다고 하더라. 알게 뭐람. 곁에서 임산부의 방귀를 느닷없이 맞은 이가 그 사실을 염두하고 있을 리는 전혀 없지. 재석이는 방귀를 뀌고 얼른 얼굴을 숨기는 부인에게 늘 웃으며 말한다.


“제발 시원하게 해. 우리 감동이가 뀌나보다.”


어떤 말도 임산부로부터 수치심을 덜어가진 못했다. 남편 곁에서 소리가 날 때는 그나마 다행. 재석이와 책을 사러 서점에 잠깐 들렀을 때다. 크리스마스를 한 주 앞둔 시기라 주말 이른 시간에도 사람이 즐비했다. 오랜만에 들른 서점, 빽빽하게 꽂힌 책들 사이에서 무엇을 살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요리조리 책을 들춰대던 순간, 귀를 의심할 법한 커다란 굉음이 다른 이도 아닌 자신의 허리춤 밑 엉덩이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뽀---오—오오오---옹’


소리의 크기도 컸지만, 속절없이 길기도 길다. 범인은 현장을 벗어나려 재빨리 몇 걸음 내디뎠으나, 녀석은 끊이지 않고 바싹 붙어 임산부를 따라온다. 배가 아팠다거나, 더부룩한 느낌을 받았다는 둥 어떤 전조 증상도 없었다. 길 가다 방향도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온 돌멩이를 맞은 것처럼 얼떨떨했다. 창피하다. 차마 뒤를 돌아보기도 두렵다. 제발 아무도 없길. 하나, 완전 범죄를 위해 현장을 확인해야 했기에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폈다. 다행이다. 아무도 없다.

매장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엉덩이 연주가 묻혔기를 바라며 얼른 다른 구역으로 발길을 옮긴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이런 교양 없는 엉덩이. 좋아하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벗어나고만 싶었다. 인기도서가 진열된 서가 앞을 머물던 재석이에게 다가가 서둘러 나가자고 재촉한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손에 든 책 두 권을 엉겁결에 계산하고는 함께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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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몸뚱이 청결에 신경을 쓰는 편이다. 물론 게으름을 피우는 날도 있지만, 씻는 행위가 마음의 평화를 주는 활동이라는 사실은 변함없이 공고하다. 다양한 목욕용품을 쟁여놓는 것이 취미라, 화장품 가게에 들렀을 때도 색조를 고르는 친구들과는 달리 장바구니 속에 치약, 바디샴푸, 손 세정제 등을 담곤 했다. 빈자리 없이 꽉 찬 욕실 찬장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고, 싹싹 긁어 써 바닥을 보인 빈 용기를 버릴 때 희열을 느꼈다. 비록 육신이 머무는 방은 뒤섞여 어지럽더라도, 영혼이 머무는 육체는 깨끗했으니 이런 하찮은 궤변론자를 보며 엄마는 말했다.


“제 몸만 깨끗하면 뭐 하노! 방에 귀신 나오겠다.”


허허, 육신이라도 정갈한 게 어디람. 뽀드득 씻고 욕실 문을 나서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입었던 옷을 한데 뭉쳐 세탁 바구니에 던져두고 나면 찌뿌드드했던 하루의 스트레스가 확연히 날아감을 느끼곤 했다.


동그랗게 배가 불러오며, 임산부는 머리만 감을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고개를 숙여 머리를 감으려니 허리가 아팠다. 아픈데 그치는 게 아니라 머리 감기를 제대로 이행할 수 없을 정도로 불편함을 느꼈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보고 다리를 벌려 높이를 낮춰보아도, 좀처럼 오랜 시간 숙이고 있을 수 없어 재빨리 허리를 펴 고개를 꼿꼿이 들어야만 했다. 자연히 미처 씻어내지 못한 거품이 뚝뚝 떨어져 앞섶이 다 젖어버린다. 꽤 긴 시간 이와 같은 비효율적 행동을 여러 번 반복해야만 겨우 머리 감기 수행 완료. 길지도 않은 머리카락, 샴푸 한 번 제대로 할 수 없음을 깨닫자 임산부는 괴롭기 시작했다. 씻고 싶을 때 씻지 못하는 건, 너무도 큰 형벌이다. 겨우 머리를 감고 나온들, 오랜 시간 허리 통증에 시달려 몸에 무리가 간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옷을 모두 벗고 샤워를 해야 했다. 머리만 감는 건 불가능에 가까움을 알았다. 부른 배 덕분에 샤워를 건너뛰고 싶은 날도 있었으나 어디 한 군데라도 씻고 싶다면 샤워밖에는 답이 없더라.


샤워는 편하게 하느냐. 그렇지도 않다. 출혈로 누워 지내야만 했던 시기에도 씻고 싶은 욕망만은 누를 수 없었기에 꽤 높이가 있는 욕실 의자를 하나 사뒀다. 서서 샤워하는 건 출혈에 좋지 않을 테니 앉는 방법을 택한 거다. 배가 나와 낮은 의자는 복부에 압박을 줘 적당하게 높은 의자가 편했다. 의자에 앉은 채 샤워기를 튼다. 온몸을 적시는 데까진 그나마 수월하나, 발끝부터 비누칠을 시작하면서 고난이 시작된다. 겨우 몸을 접어 비누칠을 시작하고, 부푼 배와 덕분에 닿기 힘들어진 부분까지 꼼꼼히 손을 뻗으려면 중간중간 거친 숨이 몇 번이고 토해진다. 그런데도 지저분한 임산부가 되기는 싫었기에 공을 들여 구석구석 비누칠을 한다. 자연히 임신 후 샤워 시간은 예전보다 곱절은 되어버렸다. 다리에 비누칠하고 한숨 한 번, 둥근 배를 문지르고 또 한 번, 겨우 닿는 등에 거품을 내며 또 한 번, 마지막엔 몰아치는 가쁜 숨을 내쉬며 일어나 미끄러움을 모두 씻어낸다. 앉아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머리를 감기에 샴푸를 덮어쓰는 일은 일상이다. 샴푸와 린스로 세수까지 하게 되더라. 그러면 여기서 끝이냐. 아니다. 임산부는 전신의 피부가 팽창해 튼 살이 생기기 쉬우므로 튼 살 크림을 발라줘야만 한다. 다시 심호흡 한 번, 가장 많이 늘어난 배에 크림을 담뿍, 허리와 허벅지에 또 듬뿍, 이제는 튀어나온 배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다리를 의자에 걸쳐놓고 접히지도 않는 허리를 굽혀 갖은 용을 써가며 크림을 발라댄다. 겨우 끝. 샤워를 마치고 화장대 앞에 앉을 때면 어김없이 깊은 한숨이 튀어나온다. 숨이 가쁘다. 목욕 시간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제는 과정이 몹시도 버거운게 사실이다. 실토하자면, 지금은 이틀에 한 번 샤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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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였다. 오랜 시간 토끼로 지냈다. 하얀 털과 빨간 코, 녀석의 귀여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칭. 긴 시간 나를 괴롭혀온 토끼 똥. 채식 위주의 건강식으로 식사를 하는 편임에도 늘 화장실 가는 시간은 괴로웠다. 하루에 한 번은 아니지만, 정기적으로 가고는 있었기에 변비는 아니라 스스로 진단한다. 하나, 바나나가 아닌 토끼 똥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웠고, 원인을 찾으려 해도 뚜렷한 답은 없었다. 그마저 원활하게 나오는 편이 아니었기에 아침 공복에 유산균을 챙겨 먹으며 장이 활발하게 움직이기만 바라는 게 일상이 됐다.


임신 중에 발생하는 대표 증상 ‘변비’. 임신을 하게 되면 변비가 심해진다는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기에 이놈이 언제 찾아올지 벌벌 떨어가며 배를 불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화장실은 마음을 다잡고 가던 이로써, 그 난이도가 더욱 높아진다는 말에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철분제를 섭취하게 되면 답도 없이 심각해진다는 말을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기에 먼저 겪은 그녀들의 고생담에 십분 공감하며 미리 고통을 느끼곤 했다.


임신 때문인지 아니면 고질적인 증상인지, 실제 임신을 하고 화장실을 가기 힘들 때가 종종 발생했다. 기를 쓰고 애를 쓰며 마무리를 짓고자 했던 예전과는 달리, 극한까지 힘을 주기엔 덜컥 겁이 난다. 아기에게 무리가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와 임산부들에게 흔하게 발병한다는 치질이 찾아올까 두려운 마음이었다. 화장실은 가고 싶고, 가서는 아무 소식이 없으며 그렇다고 힘을 쓸 수는 없는 상황. 온종일 장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물도 마시고, 채소도 마구 씹어 삼켜봤지만 별다른 차도는 없었다. 유산균의 양을 늘리라는 조언도 있고, 철분제를 액상으로 바꾸면 그 증세가 완화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 화장실 때문에 이렇게 괴로울 줄이야. 매일 아침 고정적으로 화장실에 가는 재석이는 꽉 막힌 부인의 형편에 쉽사리 공감해주지 못했다. 배를 쓰다듬어 주고 이래저래 운동을 시켜봤지만 대답 없는 임산부의 장은 고요하기만 하다. 이리 방치하다간 치질이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였다. 임신도 고단한데 또 다른 질병을 얻을 수는 없다. 안된다. ‘임신’, ‘임산부’ 태그를 걸어 열심히 검색에 검색을 시도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임산부들은 변비 걱정이 없을까 궁금했다. 드러내지 않는 건지, 그들의 장 활동은 원활한 건지 딱히 많은 결과물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방황하던 검색창에서 한 줄기 빛과 같은 정보를 찾았다. 임신 시작부터 출산 후까지 좌욕기를 썼다는 경험담. 따뜻한 물과 보글거리는 거품이 나와 혈관을 이완시켜 여러모로 도움을 받았단다. 하나, 그녀가 추천한 좌욕기의 모양은 조금도 아름답지가 않다. 실리콘 재질로 변기와 똑 닮은 좌욕기. 효과가 있다고는 하지만 선뜻 집 안에 들이기는 망설여지는 형상이다. 재석이도 볼 텐데, 무엇에 쓰는 물건이냐 물어오면 괜스레 쑥스러울 것만 같았다. 며칠, 구매 사이트를 들락거리며 고민했다. 수천 개에 달하는 긍정적인 후기와 더는 진전이 없는 장운동에 절망하며, 하는 수 없이 구매하기 버튼을 눌렀다. 그나마 여러 색상 중 변기 색과 가장 이질적인 분홍을 선택해 심미적인 좌욕기를 품는다는데 나름의 위안을 얻었다.

현관 앞으로 도착한 좌욕기는 표면에 너무도 당당히 ‘나는 좌욕기 입니다.’라고 외치고 있다. 누가 볼세라 얼른 물건을 집어 들어와 재빨리 포장 상자를 재활용장에 갖다 버렸다. 재석이와 각자 화장실을 쓰고 있었기에 좌욕기를 숨기는 건 크게 어렵진 않았다.


다음 날, 여전히 화장실에서 장시간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나오라는 큰 녀석은 나오지 않고, 고통만이 가득하구나. 그래 지금이다. 좌욕기의 진가를 맛보자. 어제 들인 녀석을 변기 위에 얹고 따뜻한 물을 받았다. 설명서에 따라 버튼을 누르니 보글보글 거품이 솟아오른다. 위치를 맞춰 궁둥이를 갖다 댔다. 기대보다 안락하고 포근했다.


‘아, 이게 되게 좋구나.’


모양이 좀 흉하면 어떠냐. 마음 한구석 불편함만 버리면 이리도 세상이 아름다운 것을. 그렇게 분홍색 좌욕기는 임신 기간 가장 사랑하는 물건이 되었고, 지금도 당당히 욕실 한쪽 편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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