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명확함을 선호하는 이에게 길지 않았던 임신 준비 기간은 막대한 부담감을 가져다줬다. 아는 것 하나 없이 덜컥 아기를 품었으니 갈팡질팡 불안하기만 하다. 재석이가 구해다 준 출산 관련 중고 서적들. 책을 들추려니 실전이 아닌 고루한 이론에만 맞춰져 있을까 불신이 들고, 큰 내용 변화는 없겠지만 세월이 지난 책이라 괜히 낡은 정보처럼 느껴져 이내 덮어버리고 만다. 멀리한 책들은 방 한구석에 쌓여 제 역할을 잃었다. 많은 임산부가 가입하는 온라인 카페. 그곳도 싫다. 은둔이 몸에 밴 자라, 등급을 올리고 글을 쓰는 행위가 영 몸에 맞지 않았다. 아직 절실함이 없는 건가. 카페에는 광고성 정보도 많다는 귀동냥을 얻었기에 그것을 가려내는 데 힘을 쏟고 싶지도 않더라.
그럼 어쩔 테요. 하루하루 다가올 임산부 생활에 겁을 먹으면서도 어떤 방향의 길을 따를지 전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궁극의 바른길이 있을 것만 같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수학의 정석’처럼 언제나 따라야 하는 떳떳하고 올바른 길이 있는 게 아닐까 막연한 추측을 하고 있다. 하나, 누가 알려 줄 텐가. 그 누구도 부동의 임산부 밥상에 그럴싸한 찬을 차려주진 않았다.
미루기를 일로 삼던 임산부가 타협을 본 정보처는 진료를 받고 있던 산부인과의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단답형의 개인 정보만 남기면 병원 기록과 대조해 가입을 허락해줘 나름 선별된 이들만 활동할 수 있었고, 특별히 번잡스러운 절차는 없다. 좋다. 믿고 비벼댈 언덕이 생겼다. 가입 허가가 떨어진 이후로 궁금한 사항이 생기면 커뮤니티로 달려가 검색을 해댔고, 와중에 다양한 의견 사이에서 적절한 답안을 선택해야 하는 과정은 필요했으나 함께 임신 중이라는 유대감을 바탕으로 일반 검색을 통한 답변보다는 신뢰를 한 채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임신이란 그런 건지 대부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었고, 궁금해하는 점이 똑 닮아 반가울 때가 많았다.
놀랍다. 커뮤니티 속 그녀들은 어찌 저리도 방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가. 웹상에서 별명으로 만난 임산부들의 정보량은 막대했고, 주장은 단호했으며 판단 또한 신속했다. 대체 어디서 배운 거지?
찾을 곳이 생겼다는 안도감에 한동안은 커뮤니티를 잊고 지냈다. 당장 급한 일은 없으니 손을 놓고 있었달까. 매일 매일 다량의 정보가 쏟아지고 있었기에 조금은 피로감을 느낀 것도 같다. 가입된 회원 수만큼이나 발생하는 다양한 사례들, 그 모든 경우의 수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기력이 쇠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알면 알수록 걱정하고 대비해야 할 것들이 늘어 힘이 달렸다.
하나, 지친 임산부도 냅다 내달릴 때가 있다. 뒷짐 지고 세월을 보내다 ‘이때는 꼭 해야 해요!’ 목록을 뒤늦게나마 발견한 순간이 그랬다.
크게 배도 부르기 전, 생각 없이 커뮤니티를 뒤적이다 조리원을 추천해달라는 글을 우연히 보게 됐다. 꽤 자주 올라오던 내용으로 출산 후 가게 될 그곳은 아직은 까마득한 세상이었기에 큰 관심이 가지 않아 딱히 자세히 읽어본 기억이 없다. 황망히 하루를 보냈던 덕에 시간이나 때울 겸 클릭. 흐리멍덩한 눈으로 생각 없이 댓글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으나, 이내 동공에 심각한 지진이 밀려온다. 이런, 큰일이다. 줄줄이 달린 첨언들은 자신이 경험한 여러 기관을 추천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일찍이 예약하지 않으면 입소가 힘들다는 강력한 주장을 반복하고 있다. 빠르게는 12주, 적어도 16주에는 예약을 해야 원하는 조리원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게 기정사실 같더라. 아이코, 늦었다. 뛰어가도 따라잡기 힘든 시간. 이미 16주를 넘긴 지 오래된 자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휴대전화를 집어 황급히 인근 조리원을 검색했고, 또다시 커뮤니티를 뒤져 검색 결과로 찾은 조리원의 가격과 평판을 분석했다. 아, 생각보다 선택지가 넘치게 많다.
망설여졌다. 무엇을 기준으로 걸러내야 하지? 조리원에 대한 고민은 정녕 머리에 담은 적도 없기에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다급한 마음에 함께 미술을 전공했던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의 아이는 유치원생으로 출산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였지만, 평소 누구보다 자신의 몸을 아끼는 사람이라 제대로 조리했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 조언을 받는 게 유용할 듯했다. 구체적인 답변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역시. 언니는 아이를 낳기 전 꽤 열심히 발품을 팔아 마음에 꼭 드는 조리원에서 조리했단다. 모든 방면으로 만족했고, 산모와 아기를 성심성의껏 돌보는 것은 물론이요, 부가적인 편의시설과 서비스까지 전부 고려했다고 했다. 그에 따른 비용도 만만찮았음을 덧붙이며 이제 와 생각하니 그렇게까지 최고만 고집하진 않았어도 됐겠다는 총평도 날려주었다. 3월 출산이 많은 편이니 얼른 조리원을 예약하라는 조언도 해준다. 언니 지인도 3월 출산 예정인데 원하는 조리원에 자리가 없어 다른 곳을 알아보더라는 실제 사례까지 들려주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듯 두 발이 뜨겁다.
이번엔 자문위원. 그녀 또한 비슷한 의견으로 조리원 거리와 가격은 적당한 선에서 결정하란다. 역시나 서둘러 예약하는 것이 좋으며, 조리원에 들어가기 한 달 전까지는 전액 환불이 되니 일단 마음에 드는 곳이 있다면 모두 예약을 걸어두는 것도 방법이라는 실용적인 안을 제시한다.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구나. 조리원을 이토록 일찍이 예약해야 한다는 사실을 왜 몰랐을까. 읽지 않고 미뤄둔 출산 서적에는 나와 있었을까? 전화를 끊고 서둘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조리원에 연락을 취해 상담을 잡았고, 그날 계약금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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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애간장을 태우는 정보는 또 있다. ‘핫딜’의 늪을 아는가? 핫딜이 무엇이냐. 특별히 물건을 싸게 파는 행위를 뜻하며, 통상 제한된 짧은 시간 안에서 모든 거래가 이뤄진다. 인터넷 쇼핑보다 직접 보고 구매하길 선호하는 연식이 되어버린 임산부에게 핫딜은 낯선 시장이었다. 커뮤니티에서 핫딜이 떴으니 얼른 달려가라는 글을 보면서도 한동안은 이게 어디서 뜨는 것이며 어찌 찾아내는 것인지 고개만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여러 번 핫딜을 알리는 게시물을 지켜보며 깨달았다. 이 핫딜이라는 놈은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품목별로 번개같이 뜨고 진다는 사실을. 아직 무엇을 사야 할지 목록도 만들어두지 못한 상태에서 핫딜을 알리는 정보 공유성 글을 접할 때마다 무지몽매한 임산부의 애간장은 조급히 녹아내렸다.
‘이건 꼭 필요한 건가? 이렇게까지 달려드는 걸 보면 지금 사야 하나? 이게 진짜 많이 싼 건가?’
출산을 까마득하게 남겨두고, 두더지처럼 예측 불가하게 튀어 오르는 핫딜을 바라보며 이것을 잡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수없이 망설인다. 아직 감동이를 만나려면 한참 남았으니 그사이 더 좋은 조건이 뜰 수 있다며 여유를 부려보지만 솔직한 손가락과 눈동자는 심히 흔들리고 만다.
임신 5개월 차, 거실에는 핫딜에서 건진 유모차와 아기 띠가 겉 포장도 벗지 못한 채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결국, 핫딜에게 지고 말았다. 아직 태어나려면 반년이나 남은 아이 물건을 이리 사모아도 되나 싶다가도, 다신 없는 핫딜이라는 말에 임산부는 눈이 돌아간다.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놓칠 것만 같은 합리적인 가격. 일단 지르고 나서 안 사실이지만 유모차는 디럭스와 휴대용으로 종류가 나뉘어 있었고, 아기 띠는 통풍이 잘되는 재질이 좋다고 하더라. 어미는 무엇을 샀을까. 됐다. 싸게 샀으니 대충 쓰자.
후로도 몇 차례 위기가 있었으나, 시간이 쌓이며 노련함과 절제력도 커졌다. 그래 핫딜은 또 뜬다.
임산부는 깊은 공부는 멀리한 채, 팔랑귀를 넓게 펴 무지렁이의 숲으로만 발길을 옮긴다. 진득하게 앉아 출산 서적을 볼까 싶다가도, 아기를 가진 임산부들의 현장감 넘치는 경험담에만 마음이 기우는 걸 어쩌랴. 앞선 이들을 따라잡기에만도 벅찬 임산부는 여전히 궁금증을 해소해 줄 요점정리만 검색하며 하루를 보낸다. 뭐, 이렇게라도 알아가면 되는 거 아닐까. 겪어보며 답을 확인하는 방법도 나쁘진 않으니, 천천히 걸어가도 된다 스스로 토닥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