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의지와는 상관없이 진행될 전원을 앞두고 머뭇거리고 있다. 쉽사리 줄어들지 않는 피고임은 출산 시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니 종합병원으로 가라는 원장님에게 물었다.
“계속 종합병원에서 진료를 봐야 하나요?”
“상태를 지켜보고, 피고임이 괜찮아지면 편하게 선택하세요.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종합병원에도 차트를 하나 만들어 두는 게 좋아요.”
“네. 좀 무섭네요.”
종합병원. 전원할 기관은 3차 상급 종합병원으로 분류된 곳이다. 몇 년 전 암 수술을 받았던 기억 때문일까. 덩치 큰 종합병원에 가는 일은 막연한 두려움을 줬다. 긴 대기 시간이나 바쁜 의료진들을 차치하고라도 괜히 꺼려지는 건 아팠던 자의 각인 때문이겠지.
편치 않은 마음으로 병원을 옮기고 몇 주가 지난 뒤, 다행히 피고임은 줄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제 남은 건 당사자의 선택. 처음부터 다녔던 산부인과도 제법 규모가 있는 병원이었고, 일대에선 긍정적인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옮긴 병원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3차 종합병원으로 기존에 다니던 산부인과와 협약이 맺어져 있던 덕에 수월히 진료 일정을 잡을 수 있어 어찌 보면 굉장히 운이 좋았다 할 수 있겠다. 담당 교수님도 분야에서 이미 명성이 높아 온라인으로 검색만 해도 절대 신뢰를 보이는 진료 후기와 기고한 의학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엄마는 종합병원에서 계속 진료를 보길 원했다. 한 번 크게 아팠던 딸내미의 병력 때문일까, 그래도 이름 있는 큰 병원이 뭐가 나아도 나을 거라 하신다. 종합병원에는 모든 과가 모여있으니, 응급상황에서 대처가 빠를 테다. 안다. 그런데도 이리저리 생각만 하고 결정하지 못하는 건 종합병원에서만 느껴지는 삭막함, 그 커다란 장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아서다. 너무나 많은 중증 환자들이 찾는 곳. 인기 많은 교수님 덕에 예약 시간은 의미가 없을 때가 많았고, 진료실에서는 딱히 임산부를 반기거나 기억하는 기색은 없다. 교수님은 두 개의 진료실을 오가며 자리에 앉아서야 맞은편 임산부의 인적을 파악하기 위해 바삐 차트를 읽어 내려가셨다. 이미 익숙한 풍경. 불친절하거나 고압적인 태도는 없었다. 오히려 오랜 내공이 쌓인 다정한 말투와 간결한 진료가 눈앞에 있다. 밀려드는 대기 줄에 물음투성이인 임신 생활에 대해선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많지 않다. 오랜 시간 복도에 머물며 빼곡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많은 임산부를 본 덕에 스스로 눈치가 보여 서둘러 진료실을 빠져나오게 된다. 진료가 끝나도 분주하다. 주사 한 대라도 맞을라치면 꽤 먼 장소로 이동해 또다시 접수하거나 대기표를 뽑아야만 했고, 처방전을 하나 받기 위해서도 입을 꾹 다문 채 번잡한 복도에서 하염없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종합병원은 기다림이 가장 큰 고통이라고 했던가. 속절없이 보내는 관망의 시간은 암이 발병하고 속이 문드러진 채 병원에 머물렀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병원 복도에서는 임산부만 만나는 것도 아니다. 진료 후 처방에 따라 층별로 옮겨 다녀야 했던 덕에, 다양한 과에서 치료 중인 아픈 이들을 계속 접해야 해 예전 기억으로 거북하고 괴로운 마음이 커갔다.
자꾸만 마음이 이전 병원으로 기운다. 24시간 불안 상태인 초산을 앞둔 임산부는 상냥히 안부를 묻고 이름을 불러주던 원장님이 그리워졌다. 모든 게 처음인 자는 같은 처지의 임산부만 모인 장소에서 안정감을 느꼈다. 원장님은 걱정 인형인 임산부의 사사로운 고민도 귀 기울여 들어주셨고, 종합병원과는 달리 매번 초음파로 태아의 상태를 살펴주셨다. 초음파는 자동으로 앱에 저장되어 관리가 편리했으며, 진료가 끝나더라도 간호사가 따라 나와 수납 접수까지 도와주시니 어려운 것이 없었다. 종합병원에서 절대 찾아볼 수 없는 마사지나 샴푸 등 출산 후 병원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도 세심한 데다 출산선물까지 제공된다니 살뜰히 산모를 관리하는, 산모만을 위한 곳이라는 느낌도 든다.
하나, 고령 산모로 분류된 데다 중한 병력이 있던 환자는 선택이 자유롭지 않다. 마음이 기운다고 턱 하니 정할 수 없다. 혹시 모를 응급상황. 자신의 건강도 고려해야겠지만 아기가 결정의 중앙에 서 있다. 약점을 가진 덕에 최악의 경우까지 상상해보니, 그 끝엔 종합병원이 떡하니 버티고 있더라. 의료기술은 더할 나위 없이 탄탄할 텐데, 아기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최상의 처치가 가능하겠지?
임신 후기에 가까워질수록 불면이 심해진다. 잠을 잊은 임산부는 며칠째 휴대전화를 붙들고 두 병원의 출산 후기를 들여다보고 있다. 새벽녘 마음이 말랑해진 탓인지 몇 줄의 글만으로도 체감하는 출산 공포는 버거웠지만, 어찌 진행되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누를 수 없다. 제대로 알아야 나름의 객관적인 선택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안타깝지만, 출산 후기를 남긴 이들은 대체로 큰 탈이 없이 아기를 낳은 경우라 결정에 큰 도움이 되진 못한다. 처음 진료를 받았던 병원은 애초에 별다른 이상이 없던 산모들이 꾸준히 다니고 있던지라 더욱이 특별한 경험담은 없었다. 이래저래 몇 시간 진통하고 아기를 낳았다는 내용, 후 처치를 어떻게 받았고 병원에서 제공하는 관리 서비스가 좋았다는 후일담이 대부분이다.
종합병원은 거쳐 간 이가 많아서인지 검색되는 후기도 그에 비례했는데 병이 중한 이들이 많은 덕에 병실을 오래 차지할 수 없어 출산 후 퇴원이 빨랐고, 아기 관리도 전적으로 산모에게 맡긴다는 게 눈에 띄는 사실이었다. 특히나 전원한 곳은 아기를 낳은 직후부터 엄마와 아기를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하는 모자동실로 유명했다. 서툰 이라 미리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벌써 아기를 몇 번이고 울리니 난감했다. 바로 아기를 만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출산 후 산모와 아기가 어떤 상태일지 모르니 감당하기 힘든 걱정만 앞선다. 환자 수가 많다 보니 병실 선택에도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꽤 있었고, 전체적으로 바쁘게 돌아간다는 인상을 준다. 일촉즉발 종합병원의 당연한 흐름이나 서운하게만 느껴지니 임산부는 이미 날 선 판단력을 잃었나 보다. 출산이라는 것이 한치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일이라 만약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종합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안전할 테다. 예정일보다 아기가 먼저 태어난다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신생아집중치료실로 가야 할 경우는 종합병원이 최선이다. 1, 2차 병원에는 갖춰지지 않은 시설이니 출산 후 이동하는 것보다 처음부터 3차 병원에서 출산하는 게 아무래도 낫다. 거제도에 사는 오빠 회사 동료는 부인이 2차 병원에서 아이를 낳던 도중 위급한 상황이 와 종합병원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을 맞았단다. 당시 그 지역에 종합병원이 없었기에 다른 지역까지 가야 했고, 이동 중 말로 다 하지 못할 대단한 고비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출산이라는 게 변수를 알 수 없다. 아무런 이상 증상 없이 아이를 낳는 사람도 있지만, 갖은 고비를 넘겨 겨우 출산하는 예도 있고 최악의 경우엔 입에 담을 수 없는 나쁜 결과를 맞는 이도 있다. 닥쳐올 상황을 예측하는 건 어떤 방법으로도 장담할 수 없다. 1, 2차 병원이 안전하지 않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큰 병을 한 번 앓았던 이는 더는 상급 개념이 없는 종합병원에서야 마음을 놓을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한동안 두 병원을 번갈아 가며 진료를 받았다. 어떤 기준으로도 답을 내릴 수 없어 장시간 우유부단했다. 출산만으로도 벅차게 겁이 나는데, 아이를 낳고 느낄 병원에서의 아득함이 두려웠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더욱 그럴 것 같았다. 무지함에 타인의 친절함을 갈구하고 있지 않을까 벌써 서운함을 느낀다. 본인만 참으면 아무래도 아기에겐 큰 병원이 낫겠다는 판단으로 나름 용기를 내 몇 주 동안은 종합병원에서만 진료를 받았으나, 출산이 가까워지자 다시금 망설임이 고개를 든다. 주저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 기존 병원을 다시 찾아 원장님과 상담했음에도 타인이 결정해 줄 일은 아무것도 없더라. 예정일이 한 달 남짓 남은 지금도 어느 병원에서 출산할지 완전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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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병원을 고민하다 자연히 아이를 낳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자연분만할 것인가, 제왕절개를 할 것인가. 직장을 다니며 만났던 또래의 아이 엄마들은 입을 모아 제왕절개를 추천했다. 자연분만을 택했을 때 아이가 금방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의 상황이 되면 엄청나게 고생하게 된다며 겁을 줬다. 어쩌면 의도와 상관없이 자연분만이 어려운 경우도 생길 수 있단다. 원하는 날짜를 정해 수술을 받는 것이 마음 편한 결정이라 귀띔한다. 그렇다고 제왕절개가 쉬운 일도 아니다. 이미 배를 한 번 째본 이로써,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는 그 고통은 익숙히 알고 있다. 출산 경험이 있던 그녀들의 조언은 출산 과정은 예측불허의 상황이기 때문에 그나마 미리 점쳐 볼 수 있는 고통을 택하라는 뜻인 듯했다.
얼마 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고등학교 친구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그간 알지 못한 서로의 시간을 축약해 나눴고, 친구는 200일 전 뒤늦게 둘째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첫째를 낳고 아이가 몸이 좋질 않아 둘째 계획이 많이 늦어졌다는 속내를 연이어 털어놨다. 첫째 아이를 제왕절개로 낳았는데 그 과정에서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지 못했으며 자세히는 알 수 없었지만, 친구가 보지 못한 그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생겼던 것 같았다. 함부로 물어보기 힘든 구석이라 자세히 듣진 못했으나 꽤 힘든 시간을 보낸 듯했다. 둘째도 상황상 수술을 택해야 했는데, 아이를 꺼내 상태를 확인하고 수면 마취에 들어가겠다는 약속을 단단히 한 뒤 수술대에 올랐다고 한다. 친구는 가능하다면 꼭 자연분만하라 도움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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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도 수많은 선택지가 임산부 앞길에 첩첩이 쌓여있다. 아기의 성장 사진 촬영 여부, 조리원 선택과 기간, 산후 도우미 신청, 모유 수유, 지나치게 많은 아기용품 선별, 출산 후 검진을 위한 병원 결정.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도움을 받기엔 워낙에 의견이 분분한 것들이라 특정한 손을 가려 잡아 보기도 어렵다. 각자 태어남에 개성이 넘치니 키워내는 방식도 다양할 테지. 어떤 선택이든 장단점이 있고, 겪어낸 이들의 말도 모두 다르니 혼란스러움에 초보 임산부는 포기하고만 싶다. 어느 시기까지는 미뤄두기가 가능했으나, 출산일에 다다르자 마음이 널을 뛴다. 결국엔 엄마와 아기 성향에 따라 결정해야 함을 알지만, 아직 겪지 못한 자는 아무 기준이 없음에 갑갑함만 가득하다. 선택에는 당연한 책임이 따르는 법, 혹 잘못된 결정일까 그것이 가장 불안하다. 수습하면 된다는 배포가 제법 컸다. 제법 큰일 앞에서도 너무도 신속했던 대범한 이였는데, 모든 선택의 결과가 감동이와 연결되니 매사 조심스럽기만 하다.
더 미룰 수 없는 날이 다가온다. 어떤 선택을 하든 초보 엄마이니 너그러이 자신을 용서할 수 있기를. 미리 걱정하고 마침맞아야 안심하는 꽉 막힌 마음은 제쳐두고, 다신 없을 아기와의 즐거운 좌충우돌을 기대하며 시원하게 웃어 넘길 수 있는 여유를 갖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