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째진 눈으로 쏜 화살이 한 곳으로만 향한다. 날카로운 촉은 냉랭한 공기를 가르며 재석이에게 날아가 꽂혔다.
임신 초,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고 막연한 억울함에 사로잡혔던 시기가 있다. 살아오며 ‘임신은 축복’이라는 흔한 문장을 지겹도록 접했지만, 축복이라는 포장 속에 감당 불가의 혼란스러운 변화가 있을 거라는 것 또한 알았기에 두려움이 컸다. 고생설이 감도는 알지 못하는 길로 발을 들이려니 떨리고 무섭더라. 더군다나 그 길 초입에서 남편은 잘 가라 손만 흔들어 대는 것 같아 여간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 화살 시위가 당겨진 것은 몸의 변화에서부터다. 초반 급격히 살이 붙고, 몸이 동글동글해져 거울 앞에선 한숨 쉬는 일이 잦아졌다.
“오빠, 나 뚱뚱이가 되어 가는 것 같아.”
“무슨 말이야, 하나도 모르겠는데? 살이 붙었다 해도 감동이 무게지, 자기 무게가 아니야.”
재석이는 틀어진 임산부의 기분을 돌려놓으려 백방 노력했지만, 그의 입에서 뱉어진 말은 임산부의 둥근 배에 튕겨 나와 저 멀리 나자빠져 뒹굴고 만다.
“치, 안 겪어보면 몰라.”
어찌 둘 사이에 생겨난 아기인데 임산부 몸뚱이만 속절없이 변해가는가. 의지와 상관없이 쑥쑥 자라는 신체 이곳저곳이 여간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뿔난 마음은 가장 근거리에 있는 대상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오빠도 나 애 낳기 전까지 살쪄.”
“어?”
그때부터다. 재석이의 밥공기엔 곱절의 밥이 담겼다. 쉴 틈 없이 간식을 먹도록 살뜰히 달다구리를 챙겨다 줬고, 식사 후 그가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을 때는 깊이 잘 수 있도록 몰래 이불을 덮어줬다. 곁에 붙어, 그가 섭취한 모든 영양소가 지방이 되어 쌓이길 정성스레 빌었다. 혼자만 체중이 느는 게 억울했다. 함께 찐다면 그나마 위로가 될 것 같은 놀부 심보. 태생이 날씬한 재석이는 좀처럼 살이 붙지 않았지만, 그래도 2kg 정도 붙었으니 나름의 성과가 있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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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덧이 시작되자 두 번째 고비가 찾아온다. 식욕 자체가 크게 있진 않아 곁에서 재석이가 무얼 먹는데도 심통이 나진 않았다. 다만, 문득 먹고픈 음식이 생겼을 때가 전쟁의 서막이다. 한동안 삼겹살이 그리도 먹고 싶더라. 엄격한 육식 파가 아님에도 생애 그토록 고기를 염원한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입맛이 당겼다. 평일에는 정신없는 재석이 생활을 알기에 주말이 다가오기 며칠 전부터 삼겹살을 먹어야 한다 다정히 언질을 줬고, 제법 넉넉한 기한을 제공했다며 자애로운 자신에게 감탄한다. 드디어 찾아온 주말, 기름진 돼지고기를 먹겠구나 군침을 삼켜대던 못된 임산부는 어수룩한 남편을 대상으로 괜스레 함정을 파대기 시작한다.
“오빠, 오늘 저녁 뭐 먹을까?”
“양고기 먹으러 갈래?”
잔인한 사람.
“알았어….”
토라진 마음은 고까운 자존심에 원하는 바를 내비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양고기를 먹었고, 새벽녘 임산부는 배탈이 났다.
아기를 가진 부인이 먹고 싶은 음식이 생겼다면 천릿길을 달려가서라도 사와야 한다. 말로만 사랑하면 뭐해. 양가죽을 덮어쓴 승냥이 같으니라고. 삼겹살을 삼키지 못한 목구멍에선 울분이 넘쳐흘렀다. 먹고 싶다는 음식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남편이 원망스럽다. 그동안 날 위하는 척 연기였던가. 뱃속 아기가 커갈수록 서운함을 느끼는 임산부의 돌기도 함께 자라나 보다. 참지 못해 재석이를 호출했다.
“오빠, 임산부가 언제 제일 서러운지 알아?”
“응?”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는데, 남편이 피자를 사 왔을 때야.”
“어?”
“햄버거랑 피자랑 비슷한 것 같지? 아니, 너무 달라. 그 둘은 태생부터 달라. 임산부는 피자가 아닌 햄버거가 먹고 싶은 거야. 평생의 한순간, 그 음식이 먹고 싶은 거라고. 다시 그 기회는 오지 않아. 앞으로 먹고 싶다는 걸 명확하게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어…. 그래….”
“내가 분명히 주말에 삼겹살 먹고 싶다고 그랬지!”
“양고기 괜찮다고 하길래…. 말을 하지….”
“됐어!”
그 후로 재석이는 임산부가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사뭇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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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입덧에 시달리면서도 몸이 불어가고 있을 때다. 아직 결혼한 지 1년도 안 된 신혼부부. 퇴근길 재석이는 늘 현관 앞 초인종을 눌렀다. ‘웃음기 가득한 부인이 쪼르르 달려 나와 반갑게 문을 열어 맞아주고, 둘은 껴안고 뱅글뱅글 돌며 재회함을 기뻐한다.’ 정도가 그가 꿈꾸는 시나리오였을까? 물론 감동이를 가지기 전에는 작은 인기척에도 부리나케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반나절이 지나도록 보지 못한 재석이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었고, 얼른 안아주고 싶었으니까. 하나,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몸이 불편하니 기분은 항시 바닥이요, 자세를 바꾸면 속이 불편했기에 여간해선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속을 알 리 없는 자. 재석이는 퇴근 때마다 부인을 소환하는 초인종을 눌러댔다. 현관 비밀번호를 알면서도 굳이 벨을 누르고 입구 앞에서 기다렸다. 임산부가 나와주길 바라는 거다. 어허, 이 사람 보게.
혹여 마음 여린 재석이가 상처받을까 봐 직접 말로 하진 못했지만, 몸으로 강력하게 거절의 의사표시를 한다. 빈집처럼 사람이 있는 기색을 내지 않았고, 긴 침묵이 이어지자 하염없이 기다리던 재석이는 결국 제 손으로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왔다. 그래 그래야지. 이후로도 한동안 재석이의 초인종 누르기는 계속됐지만, 강건한 임산부도 숨죽이기의 고수가 되어간다. 결국, 패배한 남편은 부인 소환을 포기한 채 직접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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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갖기 전, 자주는 아니었지만, 가끔 와인을 마셨다. 누구 못지않은 애주가였으나 큰 수술 후 술자리를 피했기에 간헐적으로 마시는 와인이 몹시도 귀하게 여겨졌다. 기분 따라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입에 대는 포도주는 정말로 달콤하지 않은가. 감동이를 만난 후론 꿈도 못 꿀 일이 되었기에 욕심내진 않는다. 출산 후에 예쁜 안주와 꼭 입에 맞는 와인을 마시겠노라 여러 번 재석이 앞에서 선언하곤 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조촐한 술자리가 벌어지면 그게 그렇게 부럽더라. 화면을 뚫고 들어가고만 싶었다.
“오빠, 나도 술 먹고 싶다. 나도 저렇게 취하고 싶다.”
알코올 한 방울 없이 주정하는 임산부의 철없는 소리에 그는 항시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재석이는 때때로 저녁 밥상에 술을 곁들인다. 맥주 한 캔이나 와인 한 두잔 정도로 가볍게 반주를 즐기는 거다. 마주 앉은 임산부는 서글펐지만 어쩌겠는가. 건강한 감동이를 위해서는 참아야지. 한때는 술을 사랑했던 이였기에 그리 한 모금씩 적셔대는 재석이 마음도 이해한다. 너무도 잘 알아 예쁜 와인잔을 찾아 꺼내줬고, 맛있다 평이 자자한 맥주도 추천해주곤 했다. 문제가 일어난 날은 크리스마스. 연말 분위기를 내느라 미리 와인과 케이크를 준비했다. 차마 넘기진 못하니 사진으로 남길 겸 유리잔 두 개에 와인을 예쁘게 고루 담았다.
“짠-.”
“아, 맛있겠다. 킁킁. 우와, 향도 좋네.”
“그치? 입만 대봐. 한 입 정도는 괜찮아.”
순간, 임산부의 고삐가 풀린다.
“무슨 소리야. 절대 안 돼.”
“에이, 괜찮아.”
와인 잔을 권하는 재석이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아니, 누군 안 마시고 싶어서 참고 있는 줄 알아? 혹시 아기한테 이상이라도 있으면 어쩌려고 그런 무책임한 소리를 해? 남일이야? 왜 그렇게 무신경해?”
임신 기간 내내 금주로 괴로워하던 여성의 분노 폭발. 굳은 표정으로 한참을 뾰족이 쏘아댔다. 미안하지만 아기를 가짐으로써 쌓인 갖은 스트레스도 더해진 듯하다. 아름다울 줄 알았던 크리스마스 저녁은 그렇게 삭막하게 끝나고 만다. 씩씩거리는 부인을 겨우 달랜 뒤, 재석이는 여느 날보다 많은 양의 와인을 마시고는 한껏 등을 굽힌 채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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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를 가지고 불면에 시달렸다. 원체 잠드는 걸 힘들어하던 버릇에다가 호르몬 때문인지 수면 시간이 오락가락 거렸고, 뱃속 아기가 커가며 새벽에도 몇 번이고 화장실에 가야 했으며, 이리저리 옮겨봐도 불편한 자세 때문에 여간해선 곯아떨어지는 일이 쉽지 않았다. 점점 잠자리에 민감해지니 자연히 침대는 임산부의 독차지가 되어 재석이는 바닥에서 잠을 청하기 시작한다. 마음이 편치 않지만, 조금이라도 쉽게 잠들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니 살아도 사는 게 아니더라. 재석이는 따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사실에 굉장한 아쉬움을 보였다. 왜일까? 재석이를 만난 나의 친구들은 농담처럼 후기를 전한다.
“너희 오빠 분리 불안 장애 있는 거 아니야? 크큭.”
그랬다. 재석이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곁에 붙어 있는 걸 좋아하는 밀착형 인간이다. 연애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갔을 때도 맞은 편 자리가 아닌 옆자리에 앉아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그는 마음을 표현하는 여러 방식 중 접촉에 의한 애정 교류를 가장 선호하는 유형이었던 거다.
그런 재석이를 알고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나, 당장 임산부는 몸뚱이가 불편한지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어르고 달래 얼른 그를 지정석으로 돌아가게 유도했다. 하나, 재석이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잠들기 전 잠시라도 침대에 올라와 부인에게 팔베개해주거나 안아준다. 임산부는 나온 배가 걸리적거리는 데다 허리까지 불편하니 그의 애정행각이 실로 괴롭기만 했다. 솔직히 힘들었다. 혼자 바로 눕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곁에 누가 있다는 사실이 참말로 불편하고 답답하다. 그렇다고 당장 내려가라 말하기엔 마음을 상하게 할 것만 같고. 어찌하면 가장 부드러운 방법으로 빠르게 분리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린다.
“오빠, 오빠도 똑바로 자야 어깨가 안 아프지. 내려가서 편하게 자자.”
만성 어깨 결림이 있는 재석이. 사전 정보를 이용해 최대한 그의 안위를 살핀다는 느낌을 주며 임산부 스스로 편리를 챙겼다. 임신 기간 내내 예민해진 후각은 입맞춤도 멀리하게 했으니, 이 점은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한다. 아기를 품은 자는 제몸하나 건사하기도 힘들다. 제발 부인의 변한 형편과 변치 않은 마음만은 알아주길. 오늘도 임산부 전용 전신 베개와 여분의 베개 두 개를 여기저기에 쌓아 홀로 침대 위에서 잠을 청한다. 감동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면 침대 위를 허락해줄게. 그때까지 잘 지내, 재석이. 미안하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