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실제 괴로움

「배부른 생각」

by 미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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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해 온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품은 임산부의 배는 나날이 커지고, 태동은 격해서 언제라도 아기가 배를 뚫고 나올 것만 같다. 예정일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아니, 실은 훨씬 이전부터 상상 출산의 공포는 시작됐다.

주변에 이미 아이를 낳은 이가 많으니, 입으로 전해진 출산 후기도 그에 못지않게 다양하다. 하나, 대부분 고통 강도에 집중된 그녀들의 경험담은 전 과정을 초 단위로 알고 싶은 심신 미약 임산부의 입맛을 충족시키진 못한다. 더욱 상세하고 생동감 넘치는 후일담이 필요하다. 출산의 민낯을 알아야만 했다.


슬슬 겪어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마음이 흔들릴 무렵, 잠들기 전 휴대전화를 쥐고 몇 시간을 보내다 잠드는 게 습관이 되었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상관없었다. 방법은 구분하지 않고 출산 후기라 이름 지어진 모든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상세하면 상세할수록 좋았다. 알고 맞으면 더 아플지도 모르나, 모르고 당하자니 겁이 났다.


일 년에 수만 명의 생명이 태어나듯, 엄마들의 후기도 제각각. 아기를 자신의 몸에서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시간도 천차만별이요, 체감하는 통증이나 출산 방법도 여러 가지다. 병원 도착과 함께 아기를 낳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진통이 시작되고 꼬박 이틀간 몸을 비틀다 아기를 낳았다는 사람도 있다. 소위 무통빨을 받고 견딜 만한 고통 속에서 출산했다는 행운아가 있다면, 악을 질러가며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극한의 고통 속에 힘겨웠다는 가엾은 이도 있다. 낳는 방법은 어떤가. 단순히 아기가 나올 때가 되어 자연분만하거나, 미리 일시를 정하는 제왕절개로 나뉘는 게 아니다. 아기가 나오지 않으면 촉진제를 사용해 유도분만을 하기도 하고, 진통은 진통대로 겪다 응급 수술을 한 경우도 다분하다.

이미 길을 걸어본 자가 남긴 경험담은 낱낱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무지한 이를 몰입하게 한다. 백지장 같던 머릿속에 그려지는 출산 과정이 점점 또렷해지며, 장면이 명확해지는 만큼 들여다보던 이를 더욱 겁먹게 했다. 분만대에 올라간다 상상하니 몸이 떨린다. 해 낼 수 있을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아 뚜렷하지 못한 공포에 빠진다. 더구나 어떤 상황에 부닥쳐 어떤 방식으로 아기를 낳게 될지도 모르니 막막하기만 하구나. 미리 수술을 선택하면 마음 편할지도 모르나, 판단이 서질 않으니 문제다.


문득, 후기를 남긴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이리 글을 써 놓은 걸 보면 그래도 출산할만했던 사람들이 아닐까? 제법 상세한 사진까지 첨부한 예도 많았기에 기록할 정신이 있었다는 건 고통의 문턱에서 저승사자를 만나고 왔다는 최악의 시나리오와는 거리가 먼 경우들이 아닐까 추측한다. 그래. 더한 상황도 있었을 거야. 초보 임산부는 좌절하고 만다.


아플까? 얼마나 아플까? 견딜 수는 있을까? 이미 겪어본 고통이라 아무것도 모른 채 아기를 낳았던 첫째보다, 둘째를 낳을 때 더욱 힘이 들었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대체 얼마나 힘겹기에 그런 말을 했을까.


아직 분만 방법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자연분만과 제왕절개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자신을 대입해 본다.

개복 수술 경험이 있어 제왕절개를 상상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또다시 수술 후 새우등을 한 채 엉거주춤한 날들을 보내게 되겠다 그려보니 회복의 날들이 벌써 지겹다. 완전히 몸 상태를 회복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테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출산의 고통, 자연분만은 선지급제요 제왕절개는 후지급제라. 오래 지나지 않아 아기를 안고 돌봐야 할 텐데 제왕절개 후 얼마나 빨리 회복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자연분만. 자연분만은 미지의 세계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진통하게 될지 모르니 따르는 고통은 예측 불가. 엄마를 닮는다는 속설도 있지만, 전혀 관계없더라는 후기도 많기에 유추를 포기한다. 실제 엄마는 4시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둘째인 나를 출산했다고 한다. 둘째라 경우는 다르지만, 3시간? 그 정도면 해볼 만 할 텐데. 몇십 시간씩 진통을 겪었다는 산모도 많으니 그저 겁이 난다. 원만한 출산을 위해 마지막 달에는 자주 움직이고 운동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많지만, 임신 기간 내내 요가와 수영, 산책을 쉬지 않고 하고도 절대 수월하지 않았다는 또 다른 후기는 잠시나마 희망을 품었던 임산부를 다시 한번 좌절하게 했다.

개중에 막상 출산하니 시원했다는 이야기나 무통 주사를 맞아 그리 힘들지 않았다는 말들도 보였으나, 본인은 그런 운 좋은 사례자가 될 것이라는 자신이 없었기에 소수의 경험담에 귀 기울여 행복한 상상만을 할 수는 없더라.


출산 징조는 어떤가? 가장 궁금하며 극한의 긴장을 안겨주는 부분이 바로 이 항목이다. 대체 언제쯤 병원에 가야 하는 걸까? 누군가는 양수가 터져서, 누군가는 진통이 잦아져서, 누군가는 이슬이라 부르는 출혈이 있어 병원을 찾았기에 무엇이라 똑 부러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진통의 경우를 보자. 가진통이 아닌 진진통이 왔을 때 신속히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의견은 일관적이다. 그건 어찌 구분하는가? 혼이 빠져나갈 듯 정신없는 순간, 진통을 구분하는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산모들은 입을 모은다. 모를 수가 없단다. ‘아, 이러다 내가 죽겠구나.’ 싶을 때가 진진통. 고통의 강도를 수치로도 표현하던데 그런 주관적인 점수 매김으로 어찌 소통이 가능한 걸까. 가진통을 겪더라도 며칠 미리 좀 받아주면 될 텐데 나 죽는다 문을 두드릴 정도가 돼야만 병원에 갈 수 있다니, 냉정한 산부인과 같으니라고. 진통으로 배가 아파 병원을 찾았다가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간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현재 집에서 다니는 병원까지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그리 왔다 갔다 하는 사이, 그것도 집으로 되돌아가는 길에 진진통이 걸려 아기가 나오는 상상을 하니 끔찍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시간이 출퇴근 길이라면? 출산 시간은 또 어떻고. 아기가 시간 정해놓고 나오는 것도 아닌데 새벽에 일이 발생하면 어떡하지? 아니, 혼자 집에 있을 때 전조 증상이 나타나면 어떡한다? 양수가 터지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콸콸 셀 수도 있다던데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초보자에게만은 꽤 심각한 걱정과 고민이 줄줄이 꿰어진 비엔나소시지처럼 끝도 없이 이어졌다.


막달에 가까워 조금은 덜 것 같았던 아기에 대한 걱정이 되레 늘어가고 있다. 28주를 넘기기만 하면 조산하는 때도 아이가 생존할 확률이 확연히 높아진다고는 하나, 결코 아이와 엄마에게 마음 편한 일이 아니다. 예상치 못하게 아기를 빨리 만났다는 몇몇 경우를 보자, 혹시 아기가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이르게 나오지는 않을까 새로운 불안이 시작되었다. 36주를 넘겨야만 건강한 출산을 할 수 있다. 감동이가 그때까지 꼭 붙어있어야 할 텐데. 혹여 어미의 급한 성미를 닮아 일찍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는 않을까 매일같이 녀석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그리 시작된 걱정은 막달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약간의 배 뭉침이나 싸르르한 가벼운 통증에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을 받았다.


상황에 따라 급히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많더라. 자문위원인 후배 녀석도 자연분만을 계획했다가 아이의 심박이 약해져 급히 수술했다 들었다. 미리 수술 일정을 잡아놓은 형편에야 마음의 준비라도 하지만, 엉겁결에 수술을 하게 되는 일도 있다 하니 모든 상황을 미리 염두하는 방법밖엔 없구나.


예정일을 한 달 남겨, 출산에 필요한 물품들을 챙겨본다. 미리 출산 가방을 쌌다. 위기 시 언제든지 들고 나갈 수 있는 생존 가방처럼, 만삭인 임산부에게는 출산 가방이 필수다.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아 커뮤니티를 뒤지고 또 뒤졌다. 가방 크기부터 목록까지 이 또한 개인의 선택이 필요한 영역이라 누군가는 가습기까지 넣어 커다란 여행용 가방에 싸기도 하고, 반대 성향의 이들은 어깨에 멜 정도로 작은 가방 하나만을 들고 가기도 하더라. 평소 모든 짐을 짊어지고 다니는 자신을 잘 알기에, 출산 가방은 부족하지 않은 크기로 준비하기로 한다. 좁은 입원실에 어찌 짐을 두나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챙길 물건을 적다 보니 끝이 없다. 워낙 우려와 염려가 생활인 덕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경우의 수는 많았고, 그에 따른 필요 물품도 너무나 많았다. 때마다 원하는 물건이 손에 닿아야만 걱정많은 임산부는 불안을 덜 수 있을 테다.


언제 어떻게 감동이가 세상으로 나올까. 출산 과정에서 어미의 몸 상태가 어찌 될지도 단정 짓기 어렵다.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날 수 있기만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며,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몸은 더 무거워졌지만, 오늘도 익숙한 동네를 살짝이 걸으며 예상치 못한 순간만은 맞이하지 않기를 속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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