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생각」
빠른 이는 14주부터, 통상 18주가 되면 태동을 느끼기 시작해 20주엔 대부분 태동을 경험하게 된다. 기다렸다. 나름 민감한 편이니 다른 이보다 태동을 일찍 느끼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전혀 미동이 없다. 뱃속에서 느껴지는 건 꼬르륵거리는 허기뿐이다. 자문위원에게 물어보니 태아의 움직임은 물고기가 지나가는 ‘뽀로롱’의 느낌이란다. 지금 느껴지는 건 ‘꾸르륵’이니 이건 배고픈 장기가 내는 소리임이 틀림없다.
20주가 되자 태동이다 싶은 툭툭거림이 시작됐다. 신기했다. 아직은 품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움직임으로 동작이 짧고 연약했지만 그 작은 움직임의 시작을 느낄 수 있는 게 임산부의 특권 아니겠는가. 재석이에게도 같은 감정을 알려주기 위해 감동이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면 얼른 그의 두꺼운 손을 배 위에 갖다 댔지만, 녀석은 어찌나 민감하게 알아차리는지 발길질을 멈췄다.
“아빠가 오면 긴장하나 봐.”
잽싸게 손을 가져와도 아무런 느낌이 없던 재석이는 매번 실망하고 만다.
“진짜 움직여?”
감동이와 어미만 소통하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어쩌겠어. 감동이가 더 자랄 때까지 기다려야지.
태동은 점점 격해졌다. 말기에는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움직인다고 하니 겁도 나지만 9개월에 막 접어든 지금까지는 견딜 만한 꿀렁임이다. 감동이는 시도 때도 없이 움직인다. 이게 발로 차는 건지 손으로 때리는 건지 머리로 밀어대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녀석은 꽤 자주 움직이고 있다. 몸뚱이 주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배가 놀랍기만 해 끊임없이 주시한다. 손을 얹어보기도 하고, 말을 걸어보기도 하며 녀석의 움직임에 반응해 줬다. 왠지 그래야 감동이가 엄마의 존재를 인지해 서운해하지 않을 것만 같더라. 맨눈으로도 녀석의 꼬물거림을 식별 가능한 시기가 되자 재석이도 자주 감동이의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었는데, 처음 겪는 색다른 경험에 그도 무척 신기해했다.
아기가 잘 있다는 신호, 태동. 태동이 시작되면 초음파로만 확인하던 아기의 존재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무 탈은 없는지 불안하기만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아기의 움직임을 통해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확인한다. 고로, 움직임이 적거나 가만히 있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어미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괜히 배를 한 번 건드려보고, 음식을 먹거나 자세를 바꿔보며 아기가 반응하길 기다린다. 태동을 통해 태아와 소통도 가능하다는 말에 여러 번 배를 두드리며 말을 걸었으나, 감동이는 불통의 아기였다. 그저 녀석의 일방적인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대꾸해주는 데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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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감동이에게 말을 붙이는 행동이 어색했다. 청각이 완전히 완성되지 않았지만, 부모의 목소리를 자주 들려주는 경험이 아기에게 안정감을 준다는 말에 자주 이야기를 하자 마음은 먹었으나 쉽게 입이 열리지 않더라. 얘가 진짜 듣기는 하나 미심쩍은 데다,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 허공에 대고 대화를 시작한다는 게 참으로 민망하고 무안했다.
가을날이었다. 입맛도 없고 따로 식사를 차리기도 귀찮아 근처 식당에서 김밥이나 한 줄 사 오자 마음먹은 뒤 대충 차려입고 밖으로 나갔다. 이런, 며칠 새 단풍이 형형색색으로 물들었다. 집 인근에는 꽃과 나무가 많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시간의 흐름이 눈으로 명백히 느껴진다. 길 따라 나란한 가로수가 노랑, 빨강으로 물들었구나. 아직 잎이 떨어지기 전이니, 하늘 가득 풍성하기만 한 천연색에 저절로 탄성이 터진다. 너무 집에만 있었나 반성하며 서둘러 주변 광경을 담기 바빴다. 유독 가을을 좋아하는 이라, 벅참이 더 한 것 같다.
‘감동이는 가을을 처음 보겠지?’
문득 든 생각에 용기를 내 감동이에게 말을 건다.
“감동아, 가을이야. 참 이쁘지? 보여? 단풍이 곱게도 졌네. 진짜 좋다. 엄마는 가을을 제일 좋아해. 저건 은행잎이고, 이건….”
분위기에 취해서였을까, 들뜬 기분에 목소리는 한껏 높아져 있다. 주변에 누군가 있었다는 걸, 뒤따르던 사람이 시야에 들어와서야 늦게 알아차리고 만다. 두꺼운 외투를 두르고 나온 덕에 임산부 태도 없다. 바싹 붙어 걸어오던 중년의 아저씨가 힐긋 쳐다보며 곁을 지난다. 그의 눈에는 기분이 지나치게 좋아 이성을 놓아버린 측은한 여성처럼 보였으려나. 손에 휴대전화라도 들고 있을 걸 후회가 들자 두 볼이 길가의 단풍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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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제법 자연스럽게 감동이에게 말을 건다. 나날이 커가는 감동이의 성장을 지켜보고, 콩콩거리는 태동을 느껴가며 다시는 마주하기 힘든 이 순간을 녀석과 담뿍 즐기고 싶다. 매번은 아니지만, 감동이도 때를 맞춰 태동으로 맞장구를 쳐 줄 때가 있다. 그때의 환희는 임산부가 아니라면 절대 경험할 수 없으리. 아닌 걸 알지만 마치 어미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듣는다는 착각에 기쁘고 가슴이 벅찰 때가 많다. 한때는 진짜 아기가 배 속에 있나 의심하며 임산부라는 사실을 깜빡깜빡 잊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감동이가 언제나 함께라는 사실을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형편이 됐다. 시간이 갈수록 솟아오르는 둥근 배와 촉각이 아닌 시각으로도 확인 가능한 태동까지. 처음 해보는 낯선 경험으로 불편했던 시절을 지나 서서히 익숙함에 닿고 있나보다. 임신 후 겪는 모든 변화가 행복에 가까워진다. 수없는 고비를 함께 넘어서인지, 이제야 몸이 안정되어서인지 감동이를 품고 있는 시간이 꽤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