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지운다고 지워지겠습니까
지우개
색이 진했던 탓일까요
지울수록 너저분히 번지는
청춘의 흔적입니다
꾹 눌러 쓴 탓일까요
지울수록 투명히 각인되는
청춘의 집요함입니다
지우겠다고 지운 것인데 말이지요
한 움큼 쌓인 시커먼 가루는
또 선뜻 버릴 수가 없습니다
어째서 그것을 정성스레
뭉치고 밀고 있노라면 어느덧
또 하나의 직사각형이 완성될 것이고
그것을 기어코 진정한 지우개라
나는 또다시 명명할 것이지만
글쎄요,
어디 지운다고 지워지겠습니까
청춘의 우리란 것은
지울수록 선명해질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