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설한장 Mar 30. 2022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오랜만에 지하철을 타러 집을 나섰다. 친구가 소개해 준 간단한 단기 알바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일을 쉬고 있는 나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생활비 획득의 찬스였다.

  일 자체는 어렵지 않다고 들었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오전 6시 30분까지 지정된 장소에 도착해야 했다. 지하철 시간을 찾아보니 5시 30분 즈음에 오는 첫 차를 타야만 시간에 맞출 수 있었다. 해도 떠오르지 않은 어두컴컴한 새벽에 눈을 떠야 한다니, 아침잠이 많은 내겐 힘겨운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일은 일이니까. 소개해 준 친구의 체면도 있고 하니 지각은 절대로 해선 안 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늦지 않게 일어난 나는 오전 5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집을 나섰다. 거리에는 차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레 지하철에도 사람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플랫폼에서부터 첫차를 기다리는 사람이 꽤 많이 서 있었다. 게다가 시간에 맞춰 도착한 지하철에는 이미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타 있었다. 이렇게 이른 새벽부터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이 많을 줄은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사람이 붐비는 첫 차는 나를 태우고 출발했다. 역을 지날수록 타는 사람은 더 많아졌고, 열차 내 사람의 밀도는 빠르게 높아졌다. 출퇴근 혼잡한 시간에 비하면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이었지만 새벽 시간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숫자였다. 세상 사람들 정말 열심히 사는구나. 새삼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을 다니던 지난 3년간 매일같이 타던 지하철은 늘 사람들로 가득했다. 시간대는 달랐지만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을 타고 있자니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 시절 내 모습은 어떠했는가. 출퇴근 시간에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에서 자리에 앉는 것은 어지간히 운이 좋은 날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보통은 사람들 사이에 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이 최선이었다. 기운이 남아 있는 날에는 유튜브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했지만 지친 날에는 손잡이에 힘 없이 매달린 채 어서 빨리 집에 도착하기만을 바랬었다.

  지하철에 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내 몸에는 그렇게 각인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손잡이를 잡고 가만히 서 있자니 몸에 피로가 쌓이는 것 같았고 마음도 가라앉는 것 같았다. 언젠가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서 지하철의 고통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떠올랐다. 매일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타는 사람들의 고통에 비하면 매일 달리기를 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라고. 그의 말처럼 사람이 가득한 지하철에서 그저 시간을 버티는 것은 생각보다 고통스러운 일인 것 같았다. 지하철에 탄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힘이 넘치거나, 생기발랄하거나, 웃는 얼굴은 별로 없으니까. 그보다는 지친 얼굴, 우울한 얼굴, 무표정한 얼굴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런 얼굴이었다.

  그저 일터와 집을 오가는 시간. 새로움과 설렘은 사라지고 일상 속으로 완벽하게 녹아든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치이면서 그저 버텨야 하는 시간. 그런 시간들에서 해방된 나는 오랜만에 겪는 이 상황을 조금 신선하게 느끼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문득 나는 매일 지하철을 타야 하는 사람들보다 행복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곧 사라졌다. 소속된 곳이 없어 느끼는 불안 때문일까.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앞날 때문일까. 행복이라는 단어는 이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지하철의 고통에서 자유로운 내가 행복한 걸까, 일상에 속박된 다른 사람들이 더 행복한 걸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질문은 허전한 감정만 남기고 금세 사라졌다.

  터널을 빠져나온 지하철 밖으로 한강의 야경이 눈에 들어왔다. 반짝이는 불빛이 살짝 밝아오는 남색 하늘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지만 아직 햇빛은 보이지 않았다. 현장에 도착에 일을 시작했을 즈음에는 해가 떠오르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바라본 한강의 풍경이 눈 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