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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설한장 Apr 04. 2022

벚꽃 아래에서

  

올해도 피기 시작한 벚꽃

  


  늘 이맘때쯤 피는 벚꽃을 보고 있자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중학생이었던 시절, 나는 한 학년 아래인 여학생과 친하게 지냈었다. 한창 사춘기를 겪는 나이의 남녀였지만 나와 그녀 사이에 그런 기류는 거의 없었다. 우리는 쉽게 말해 문학 친구였다. 둘 다 도서부에 소속되어 있었고 책을 좋아했다.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도서실에서 만날 때마다 서로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추천해주고 감상을 들려주곤 했었다. 우리는 그렇게 친해졌다.

  얼마 지나서 그 친구가 블로그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이웃 신청을 하였고 나는 그녀가 쓴 글들을 볼 수 있었다. 인터넷이나 블로그에서 실제로 아는 사람의 글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녀가 쓴 문학적이고 감상적인 다양한 글을 나는 감명받으며 읽었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늘 대하는 겉모습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있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고 관계의 거리감이 한층 친밀해진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내가 쓴 것을 다른 사람이 읽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 우리는 한창 시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그녀의 블로그에도 자작시들이 몇 개 실려 있었다. 그 느낌에 푹 빠진 나는 시를 써보고자 마음먹었다.

  토요일이었을까.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수업이 일찍 끝난 여유 있는 날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가거나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들썩이던 학교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건물 가운데에는 작은 정원이 있었다. 나무 몇 그루와 화단, 의자가 놓인 장소였다. 그 장소를 중학교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였다. 나는 그 정원에 가서 앉았다. 오후의 여유로운 햇빛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 햇빛 아래에서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었다.

  나는 그 벚꽃을 보자마자 마음을 정했다.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내 인생 첫 시가 탄생했다. 나는 벚꽃 아래에서 쓴 이 첫 시가 꽤나 마음에 들었다. 블로그에 올렸고, 그녀를 비롯한 몇 명의 문학 친구들에게도 보여줬다. 어떤 반응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기분이 좋았다. 햇빛이 비치는 건물도, 화사하게 핀 벚꽃도, 고요하게 가라앉은 공기도 모두 잘 담아낸 것 같았다. 처음으로 써 본 시에 스스로 그렇게 만족할 줄은 나 자신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 시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아쉽게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다. 시를 쓰고 만족한 그날로부터 몇 년이 지난 나는 그 시를 다시 읽으며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아무래도 심히 오글거리고 부끄러우며 너무 감성적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쓴 시를 삭제하고 망각의 저편으로 넘겨버렸다.



  그렇게 삭제한 시가 지금에 와서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 요즘같이 벚꽃이 피는 봄이 오면 더욱 그렇다. 아무래도 벚꽃과 봄에 대한 시였기 때문이리라. 그 내용이 조금이라도 떠오르면 좋겠지만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시에 포함된 한 단어조차 떠올릴 수 없다.

  한창 감수성이 풍부하던 중학생이었다. 그 시절 섬세했던 감수성이 내 기억마저 아름답게 바꿔버린 걸까. 그때를 생각하면 벚꽃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학교의 풍경이 샘솟는다. 그리고 설렘, 소망, 사랑과 같은 봄바람을 탄 것처럼 간지러운 감정들도 함께 느끼곤 한다. 긴 시간 너머로 사라진 기억이기에 오히려 더 그렇게 아름답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같은 소재를 가지고 다시 시를 쓴다면 어떨까. 아마 그 시절 쓴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물이 나올 것이다. 사람의 세포는 약 7년을 주기로 교체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세포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완전히 다른 사람일 것이다. 이제는 그때와 같은 시를 쓸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역시 서글퍼진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고 제대로 떠올리기조차 쉽지 않은 시절. 그래서 학창 시절과 청춘을 다룬 여러 이야기들은 그렇게나 아름답고 안타까운 것이리라.

  지금의 나는 아마 같은 것을 느껴도 다르게 표현하겠지. 그것을 어른스러워졌다고, 혹은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오글거리고 부끄럽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나와는 달라졌다.



  올해도 벚꽃은 피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불어온다. 물끄러미 벚꽃을 올려다보는 내 모습에서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겠지. 그리고 지금 이 모습도 떨어지는 벚꽃과 함께 과거로 흘러갈 것이다. 만약 꽃잎처럼 불어오는 봄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갈 수 있다면 지나간 내 모습이 조금이나마 보이지는 않을런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런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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