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1일 슬랙에서 해고당했다. 당시 한국에서 원격근무 중이어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8월 14일 새벽에 업무용 랩탑이 갑자기 잠겨 벼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매니저에게 연락해 보니 HR과 얘기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며칠 뒤 HR과 미팅을 했는데 내가 회사의 법규를 위반했다고 했다. 내가 운영하던 슬랙 주식방 "Rage Against The Market (RATM)"에서 회사 기밀을 유출했다는 것이다.
RATM은 2016년부터 지인들을 모아서 내가 운영하던 슬랙 주식방인데, 넷플릭스를 통해 알게 된 한인 형들과 워털루 동창들이 모여서 주식 외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채팅방이었다. 멤버들이 대부분 빅테크에서 일하는 엔지니어였는데 워낙 친한 사이여서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여과 없이 공유했다. 2020년 아마존이 슬랙을 도입한다는 소식을 사내 공지에서 들었는데, 이걸 내가 RATM에 공유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해고 시기가 원망스러웠는데, 승진 심사를 통과했다고 매니저에게 축하 전화를 받은 게 고작 일주일 전이였다. 그리고 현재의 와이프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시민권을 신청하고 와이프와 함께 미국 시애틀로 이사 가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와이프는 미국을 가기 위해 다니던 회사에서 퇴사했고 공교롭게도 나도 같은 날 해고당했다.
처음에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끝인 줄 알았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RATM에 내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해도 아무도 답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활발했던 채팅방이 너무 고요했다. 그리고 슬랙 HR로부터 “사법기관”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어떤 “사법기관”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급하게 미국으로 돌아와서 한 RATM 멤버에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의 변호사로부터 더 이상 연락하지 말라는 답변을 받았다.
2020년 9월 15일 SEC 소환장을 받았다. 내가 코로나를 피해서 한국에 가있었던 터라 소환장을 직접 전달받지는 못하고 암호화된 이메일을 통해 받았다. 와이프와 미국 유타에서 로드트립 중이었는데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급하게 변호사를 고용해서 사건을 의뢰했다. 변호사는 SEC와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며칠 뒤 변호사는 암울한 뉴스를 알려왔다. Western District of Washington 소속의 검사도 SEC와 병행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시민권 신청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이때 와이프한테 모든 걸 털어놓고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 나와 정말 결혼할 건지 선택하라고 물어봤다. 결혼을 취소한다면 양가 부모님에게 뭐라 설명할지 막막했다. 너무 고맙게도 와이프는 나와 함께 하겠다고 했다.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와 직장을 구하고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새 직장에 적응하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미국에서는 변호사와 사건 진행 상황을 계속 공유했다. 만일 와이프가 없었더라면 내가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을지 상상할 수도 없다.
2021년 3월 2일 결혼을 3주 앞둔 시점에 SEC, 검사, 그리고 FBI에게 줌으로 원격 심문을 받기로 했다. 심문을 받으면서 비로소 어떤 이유로 내가 조사받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RATM에서 전직 넷플릭스 직원들이 내부자 거래를 했다고 했다. 그래서 RATM을 들여다봤는데 넷플릭스 외에도 문제 될 만한 대화들이 있어서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특히 2017년 이후 내가 했던 주식 거래가 내부자 거래가 아닌지 추궁했다. RATM 멤버들이 TWLO, CLDR 등을 함께 트레이드한 것에 때문에 내부자 거래가 아닌지 의심했다. 난 결백을 주장했다.
원격 심문 이후 더 이상 변호사에게 연락이 없었다. 2021년 8월 18일 SEC의 넷플릭스 내부자 거래 조사에 대한 공식 발표가 있었다. 사건의 전말은 넷플릭스를 다니던 J 씨가 친동생과 친구에게 가입자수 정보를 실적 발표 전에 공유했고 이들은 이 정보를 가지고 30억 원 이상의 수익을 실현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외 2명의 연루자도 있었는데 이들은 J 씨와 친동생에게 내부자 정보를 전달한 혐의를 받았다. 이 모든 일이 내가 운영하고 있던 RATM에서 수년간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2021년 12월 3일 J 씨와 2명에 대한 법원 판결이 나왔다. 3명 모두 1-2년 남짓의 형량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이중 한 명이 이번달 출소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와이프는 이 모든 일이 나에게는 축복이라고 했다. 이번에 조사를 받지 않았으면 나도 더 큰 죄를 지었을 거라고 했다. 이번 일을 통해 경각심을 느끼고 불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게 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나도 이에 너무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