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시작한 이유 & 마지막으로 멈춰있는 이유
난 20대 초까지는 많이 아파서 누워있는 시간이나 병원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렇다고 누워만 있을 수 있는 가정형편은 아니라서 조금 나아진 몸으로(겉으로 보면 멀쩡하니까) 00 홈쇼핑 고객센터에 상담사로 취업을 했다. 그 무렵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세상은 몸이 아프고 불편해도, 경력단절이라고 해도 전화기 1대면 모두 해결되어 집에서도 일 할 수 있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직업에 비해 긴 시간 동안 일 할 수 있으며 근무환경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면접 보기 전까지 남보다 잘하는 장점 한 가지는 준비하고 싶었다. 나에게 그건 애국가를 치며 타자수를 늘리는 거였다. 컴퓨터 학원은 다니지 못했던 시기였으니까, 업무 할 때 분명히 무기가 될 거라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분명히 기업체마다 서로 다른 전산을 사용하고, 교육받게 되니 당장은 필요하지 않겠지만 업무를 할 때는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았다.
이 상황에서 누구나 시작할 수 있기에 나도 면접은 당연히 합격했고, 한 달 가까운 교육을 받고, 고객센터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단시간 내 답변내용을 찾아내고, 대기시간에 따른 양해멘트 후 짧게 정리해서 안내해 드리고, 끝 인사 전에 이력을 쓸 수 있어야 했다. 교육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한 번에 세 가지를 동시에 빠르게 할 수 있다 보니 하루 콜 수는 월등히 증가했고, 콜과 콜 사이의 시간도 단축할 수 있었다.
그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상담원이라고 하면 114'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기업들도 콜 업무의 중요성을 생각하게 됐었고, 그러다 보니 콜센터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텔레마케터로 처음 입사하게 된 00 홈쇼핑은 단연 홈쇼핑 중에서는 1위'였고, 고객층이 주부들이었기에 표지모델도 몸값이 비싼 배용*이었다. 저는 우선 1년 동안은 본사에서 새벽 1시에 끝이 나는 시간대를 선택을 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집으로 안 가고, 콜센터 근처에 아직도 있는 정동극장에서 ‘만원에 영화 3편’을 보거나 대중교통의 첫 시간까지 새벽이슬을 맞아가며 방황을 했다. 그렇게 나에게는 동료들과 업무를 끝나고 보내는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고 즐거웠지만 업무는 점점 과부하 상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단순 주문접수와 배송날짜 안내로 간단했다. 하지만 새벽업무이기에 114로 전화해야 되는 요청내용도 인입되기에 안내해줘야 했으며 욕을 하거나 취객과 변태들한테도 친절한 안내로 콜을 자제해 달라고 응대요청을 해야 했던 업무가 반복되었다. 그때부터 난 퇴사를 늘 하고 싶어졌다. 사실 4년이 넘었는데도 일반상담원에서 관리자가 되지 못하기도 하니까 잠깐 쉬어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사직서를 냈다. 더 이상 369로도 버티지 힘들었기에 4년 이상의 경력이 이력서에 남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얼마든지 재입사가 가능하니까 말이다.
그 후 도쿄로 첫 배낭여행을 다녀오면서 콜센터 업무를 선택하는 기준이 달라졌다. 역시 여행은 생각의 전환을 시켜준다. 내가 ‘갑’이 될 수 있는 업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니 친한 동생의 권유로 아예 다른 인바운드가 아닌 ‘아웃바운드’를 선택하게 됐고, 그 업무는 ‘채권’이었다. 대부분의 텔레마케터들은 선택하지 않는 업무 중 하나지만 호기심도 많았던 나는 ‘갑’이 되는 콜 업무이니 상담을 할 때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급여는 조금이라도 많다는 생각에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5~6년 정도 이 업무를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급여’ 생각만 하며 일하다 보니 오래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돈’이 중요하지 않으며 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은 업무라고 생각하자 또 다른 업무로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