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전통의...? 아니 42년 동고동락 한 우리 집 주소 ^^
난 가끔 핸드폰의 사진첩 폴더 중 옛날사진들을 본다. 이 날도 사진들을 본 후에 재개발로 아파트 주차장이 된 옛날 우리 집의 땅을 지나가다 보게 됐고, 어느새 그 집에 대한 추억들로 머릿속이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리 집의 주소는 209-8번지 10통 1반으로 이제는 사용하지 않게 된 주소이다. 그래서인지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우리 집은 우선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있었다. 그리고 왼쪽에는 엄마, 아빠와 1남 3녀가 살고 있는 4개의 방과 부엌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방 한 칸과 다락, 그리고 부엌이 있는 4개의 월세방이 있었다. 그리고 화장실은 공동 화장실이라 밖에 있었다. (문득 개조 후 실내에 화장실이 생겨 너무 좋았던 기억도 난다. ‘이제 비가 와도 우산 안 쓰고 화장실 갈 수 있다 ‘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화장실 왼쪽으로 항아리들이 있고, 화장실 뒤편으로는 연탄을 보관했었고, 항아리들 앞에는 펌프가 있는 수돗가가 있었던 위치가 시골이라면 믿을 만한 70평의 42년 된 집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렸을 때 난 함께 사는 친구들과 늦게까지 마당에서 놀 수 있어 좋았고, 겨울엔 바로 옆에 공터가 있어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 수 있어서 좋았었다. 그리고 때론 초저녁까진 피아노도 마음껏 칠 수 있었다. 물론 시골처럼 쑥을 캐거나 개구리를 잡아야 하는 일이 생기면 동네에서 해결이 됐었다. 그러다 보니 10년까진 나에게도 우리 집이 좋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후 20년까진 정말 집만 있었기 때문에 가족 모두에게 힘든 나날이었고, 여섯 식구들의 전쟁터였었다. 그래도 지나 보니 그때 날마다 전투할 수밖에 없어도 집만이라도 있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내가 30살이 될 때까지 겨울이 되면 너무 심하게 추웠던 기억뿐이다. 특히 화장실과 샤워실은 장난 아니게 추웠다. 버텨보려 해도 어느새 친구네 집에서 자는 횟수가 늘어났고, 20대 때 결혼 한 언니와 여동생네 신혼집에서도 길게 지내기도 했었다. 생각해 보면 이때 가장 집이 싫었고, 미웠었다. 물론 추웠던 기억 외에 한 가지 더 있었다.
그건 다양한 곤충도 아닌 벌레들이 많아서 어떻게 막을 수도 없고, 겨울이 되면 더 심하게 방까지 들어왔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방에서 뭔가 지나가는 걸 자세히 보게 되었다. 분명히 지네가 아니라 ‘전갈’이었다. 잠시 후 난 ‘설마 물진 않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 졸려 잠을 자게 됐고 그다음 날 눈을 뜨니 목이랑 오른쪽 다리가 이상했다. 아주 많이 뻐근했다. 손으로 만져보면 뭔가에 물린 자국이 느껴지기도 했다.
점점 월세로 사는 가족들이 떠나고 우리 집만 살게 됐다. 요즘 세상에 원룸처럼 사람을 들이기에는 워낙 위험해서 어느 순간부터 받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결혼해서 떠난 남동생을 빼니 이제 우리 집은 아빠, 엄마, 나 밖에 남지 않았다. 정말 의리로 남았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겨울엔 여전히 추위를 참아내고, 여름엔 양동이가 7개 정도 필요했지만 버틸 만했으며 봄, 가을의 우리 집은 마당에선 상추가 크기 바빴고, 늦었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대청마루를 만들어서 삼겹살을 먹기도 했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재개발이 확정이 났다. 이후 이사 가는 날까지 난 자주 마당에 나와있었고, 잊지 않으려고 사진을 많이 찍었다. 정말이지 밤에 찍으면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사진인데도 말이다.
어느새 내 나이만큼 낡을 정도로 애써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사하는 날에 난 우리 집한테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