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의 편지 : 조직의 우상을 섬기는 당신에게> 열 세번째 편지
J가 너의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전보다 훨씬 더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는 소식 잘 받아 보았다. 그 덕분에 옆에 있는 다른 팀원들도 덩달아 네 지시를 더욱 성실히 따르게 되었다는 것이 내겐 더 고무적인 소식이구나.
그동안 자신의 욕망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욕망이 현실이 되는 순간, 자신의 욕망을 점검하며 불을 지피게 되는 게야. 그렇기 때문에 조직 안에서 몇몇 사람들의 욕망을 현실로 만들어 보여 줄 필요가 있는 거다. 욕망이 실현되어 만들어진 현실이 그동안 경험해 온 일상의 삶을 압도할 정도로 강력하여 누구에게나 매혹적으로 느껴질수록 좋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이 꿈꾸는 세계로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지금 현실에서 제시되는 규율과 원칙을 따를 수밖에 없지.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모두 동일한 명령에 복종하면서도 각기 자신의 욕망에 따르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성공을 위한 집단의 강력한 분위기와 질서는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야. 그래서 스탠리 쿠니츠(Stanley Kunitz)라는 시인은 ‘삶의 원동력은 첫째도 욕망, 둘째도 욕망, 셋째도 욕망’이라고 했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좇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반응하는 녀석들이 있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은 그동안 네가 봐왔던 사람들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다른 것이지. 그들은 남들보다 더 많은 월급이나 높은 지위를 꿈꾸지 않는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가 높아지고 더 많은 권한을 갖게 되는 것을 오히려 부담스러워 할 확률이 높다. 이들은 가능한 조직 안에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 가능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남들에게 알리지 않으면서 조직 안에서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바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에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면서 전체 진행 상황과 앞뒤의 업무적인 연결을 고민하지 않고 일을 처리하지. 그들에게 일을 진행하는 기준이 되는 서로 간의 약속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조직 안에서 튀지 않고 오랫동안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보전하는 것이 그들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인 게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너와 같은 리더들은 그들을 무기력해 보인다고, 아니 실제로 그들이 무기력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의욕이 없고 정체되어 있다고 판단하겠지. 하지만 천만에! 그들은 너나 J와는 조금 다른 모양새의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사과 박스 안에 서로 다른 크기와 모양새로 담겨 있는 사과처럼, 어항 안에서 서로 다른 색깔과 생김새로 유영하는 물고기들처럼 말이야. 다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쓸모에 따라 그 쓰임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게지. 어떤 사과는 명절 선물 상자에 예쁘게 담겨 백화점으로 팔려 나가는 반면, 또 다른 사과는 땅에 버려져 썩어 버린다. 어떤 물고기는 큰 수족관에서 자신의 재주를 마음껏 뽐내는 반면, 또 다른 물고기는 며칠 동안 오염된 어항 속에서 방치된 채 죽음을 맞이하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꿈과 목표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암 그렇고 말고. 하지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그릇에 따라 스스로의 운명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
평소에 고래는 멸치 같은 것들을 신경 쓰며 살지 않는다. 더 큰 꿈을 향해 대양을 헤엄치는 것이 고래의 역할이지. 고래는 배가 고플 때 그저 입을 한번 크게 벌려서 작은 물고기들을 꿀꺽 삼켜 버린다. 멸치 같은 작은 물고기들의 존재 가치는 이런 상황에 있는 것 아니겠니? 자기보다 훨씬 큰 포식자의 먹이가 되어 그의 배를 채워 주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자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란 말이다. 생태계란 잘 조직되어 있는 거대한 시스템이라 만일 멸치 같은 작은 물고기가 모두 없어진다면 결국 고래도 배를 굶주리고 말 것이다. 고래가 고래일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그와 같은 크기의 바다 동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 수없이 많은 작고 약한 동물들이 함께 있기에 고래는 자유롭게 여기저기 헤엄칠 수 있고 그 막대한 에너지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게야. 조직 안의 생태계도 이와 같다. A급 인재가 A급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이유는 B급, C급 인재가 주변에 함께 있기 때문 아니겠니?
따라서, 그들의 꿈이 네가 가진 것과 비교해 보잘것없다고 꿈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서는 곤란하다. 그들이 ‘안분지족’하고자 하는 꿈을 무시하지 말고 존중해 주거라. 그리고 그들이 새로운 모임을 가지기보다는 익숙하고 편한 사람들만 만난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들이 말하는 조직이나 상사에 대한 불만에 공감을 표시해 주면서 너 역시 추가적인 가십거리를 공유한다면 그들은 네게 특별한 유대감을 느끼게 될 게야. 이런 방식으로 그들과 전략적으로 친분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너의 능력과 지위가 돋보일 수 있도록 만들어라. 그들은 평소에도 자신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고 특별한 고민과 판단 없이 지시를 그대로 이행하는 것을 편하게 생각하니, 곧 너의 순종적인 오른팔이 되어 줄 것이다.
어떤 사람과 욕망의 크기가 다르다고 해서 그의 쓸모를 등한시하진 말아라. 그의 욕망을 존중해 주고 그가 가진 그릇의 크기에 맞추어 눈높이를 조절해 주는 약간의 배려를 한다면 언젠가 그가 네게 좋은 쓸모가 되어줄 게야. 혹시나 너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그가 네게 존중을 표시하지 않는다고 해서 언짢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그들은 네가 아니더라도 본인을 감추기 위해 스스로 피해야 할 천적들이 많아 네게 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적당히 그들을 필요에 맞게 다루다가 어느 순간 뱃속으로 삼키면 그들은 그 뱃속이 원래부터 있던 자신의 자리인 줄 알고 적응해 갈 것이다.
사람의 존재 이유는 각자 다르다는 것을 기억하렴. 조직에는 자신의 성장을 고민하며 스스로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애쓰는 너와 같은 A급 인재가 반드시 필요하지. 하지만 A급 인재의 우월한 능력과 기여, 헌신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B급, C급 인재도 꼭 필요하단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꺼려 하고 문제 해결보다는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고민하는 이들은 조직을 운영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래야 조직의 규율과 질서가 유지되는 법이거든. 조직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수용한다는 것은 각자의 욕망을 수용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지. 네가 이를 통해 리더로서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길, 나는 늘 응원한단다.
그럼 오늘도 승리하렴.
너를 아끼는 Dilemma
딜레마의 질문
조직 안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욕망은 무엇인가? 그 욕망은 현실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
조직 안에서 자신을 숨기고 타인의 기대나 요청에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 사람들을 현재 우리 조직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조직 안의 구성원을 A Player, B Player, C player 등으로 구별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가? 필요하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필요하지 않다면, 조직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수용하는 바람직한 모습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가?
<딜레마의 편지 : 조직의 우상을 섬기는 당신에게> 는 종이책과 전자책으로 출판되었습니다.
<조직문화 3부작 시리즈>, 나답게 성장하고 우리다운 조직문화를 만들고 싶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