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다움과 우리다움으로 건강한 조직을 만드는 방식 4]
퇴근길, 카페에 들러 노트북을 켰다.
무심코 팀 슬랙 채널을 열자, 업무 메시지가 빗발치듯 쌓여 있었다.
누군가는 다음 주 일정 조율을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새로운 프로젝트 관련 문서를 노션에 업데이트해두었다는 알림을 남겼다.
줌 회의 초대장도 몇 개 더 와 있었다.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명백했다.
대화창은 끊임없이 깜빡였고, 공유 폴더는 실시간으로 갱신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메시지는 쉼 없이 오가는데,
그 안에 '내가 말하고 있다'는 감각은 전혀 없었다.
답장도 달리고, 이모지도 눌리고, 파일도 주고받지만,
누구 하나 내 이야기를 '진짜 듣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팀 노션 페이지에 올린 의견에는 '확인했습니다'라는 짧은 댓글만 남겨졌고,
슬랙에서는 각자의 할 일만 정리된 채 대화는 흐르지 않았다.
줌 회의 중에도 비슷했다.
"다른 의견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에, 정적을 깨는 건 늘 "없습니다" 한마디.
누구도 반박하지 않고,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회의.
다 끝나고 나서도, 나는 과연 누구와 무엇을 공유했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대화하고 공유하고 회의하지만,
정작 누군가와 정서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말은 하는데, 듣는 사람이 없다.
함께 일하고 있는데, 공감의 감각은 어디에도 없다.
이런 감정은 그저 ‘내가 예민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다.
지금 이 시대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은 존중되지만,
관계의 감각은 점점 둔해지는 시대다.
'연결됨'이라는 단어는 기술적으로는 충만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점점 말라가고 있는 시대.
슬랙에 표시된 '활동 중' 초록 불빛처럼,
우리는 서로 존재를 확인할 수는 있지만,
서로의 마음에 닿을 수는 없는 채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다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장면이 떠오르시나요?
긴밀하게 협업하는 팀의 모습일 수도 있고, 같은 목표를 향해 걷는 프로젝트 그룹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다움은 구체적인 행동이나 구조로만 설명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관계에서 감지되는 어떤 ‘느낌’, ‘분위기’, 그리고 ‘온도’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고, 누구와의 대화에서는 말끝을 조심하게 됩니다. 어떤 회의는 긴장과 경쟁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고, 또 어떤 회의는 말 한마디에 서로가 웃음을 나눕니다. ‘우리다움’은 바로 이런 사이의 감도(感度) 속에서 비로소 존재합니다.
우리다움은 동일함이 아니라 다름이 안전하게 머무를 수 있는 환경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 환경의 온도는 리더나 동료 한 사람의 말투, 회의의 흐름, 의견을 묻는 질문 하나, 반응 하나에서 서서히 형성되어 가는 것이죠.
‘우리다움’은 화려한 비전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매일의 순간들이 조금씩 누적되어 만들어지는 감정의 층위입니다.
아침 인사가 오가는 톤, 누군가의 말이 끝났을 때의 반응,
의견 충돌 후의 회복 방식,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서로를 어떤 방식으로 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조직은 구조이기 이전에 관계의 집합입니다.
그 안에 어떤 감정이 흐르고 있는지를 섬세하게 바라볼 때,
우리는 ‘일하는 방식’뿐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방식’을 다르게 설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같이 있음’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함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다움은 그 질문에 대한 일상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요즘 시대의 조직은,
‘같이 있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곳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감각’을 설계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