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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라는 말이 불편했던 적이 있나요

[나다움과 우리다움으로 건강한 조직을 만드는 방식 3]

by 브랜딩인가HR인가

‘우리’라는 단어는 익숙합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우리 반’, ‘우리 집’, ‘우리 가족’, ‘우리 회사’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써왔지요. 이 말에는 소속감, 친밀함, 연대 같은 좋은 의미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돌아보면, 우리는 그 ‘우리’라는 말 앞에서 불편함을 느낀 순간도 분명히 있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우리니까”라는 말을 꺼낼 때, 그것은 때로 ‘다르게 생각할 수 없는 분위기’의 시작이었습니다. ‘우리답게 하자’는 말은 종종 ‘왜 너는 우리와 다르냐’는 압박으로 들리기도 했지요. 겉으로는 함께 있지만 속으로는 조심스럽고 피로한 감정이 쌓여갔던 경험, 여러분도 있으셨을 겁니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우리’라는 말은 종종 동질성과 동일함을 전제로 작동해 왔습니다. 그 안에 들어가려면 어느 정도는 나를 접고, 나의 생각과 방식, 감정을 숨기고 따라야 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우리'라는 말이 따뜻한 소속감의 언어이기보다는 자기다움을 포기하게 만드는 말, 조심스러운 침묵을 강요하는 말로 기억되기도 합니다.


이런 경험은 특히 조직 안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팀워크’라는 이름 아래, 솔직한 의견보다는 눈치와 합의가 우선시 되고, ‘조직 문화’라는 말속에 너무 많은 ‘당연한 규칙’들이 숨어 있어서 질문조차 어려운 분위기, 겉으론 부드럽지만 속은 꽉 막힌 ‘좋은 사람들’의 모임. 이런 문화 안에서 ‘우리’는 자칫하면 ‘나’를 잃게 만드는 말이 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우리’를 버릴 수 있을까요?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낡은 이미지와 기대에서 벗어나, ‘우리다움’이란 무엇인지 새롭게 물어야 할 시점입니다.


이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우리다움’은 동질성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연결될 수 있는 힘,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다를 수 있는 분위기, 그리고 각자의 나다움이 서로의 성장을 북돋아 주는 느슨하고 건강한 연대입니다. 예전의 ‘우리’가 희생과 복종, 소속의 조건을 요구했다면, 지금의 ‘우리다움’은 자발성과 선택, 신뢰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관계입니다. 나는 이 공간에서 나로서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존재 자체가 배제되지 않는다는 감각. 바로 그것이 ‘우리다움’을 구성하는 핵심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질문이 필요합니다.


‘우리’라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불편한 경험이었을지를 상상해 보는 것.

조직에서 반복되는 관행이 소외의 기제가 되지 않았는지 돌아보는 것.

그리고 각자가 안전하게 다를 수 있도록 만드는 구조를 고민하는 것.


우리다움은 이제, ‘우리’라는 말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숨 막히던 언어를, 숨 쉴 수 있는 언어로 바꾸는 것.

조심하느라 멀어졌던 사이를, 질문하고 존중하는 사이로 전환하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다움’이란 말을 자신의 언어로 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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