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순간 삶의 신비와 기쁨을 발견하기 위한 아들과의 약속
사랑하는 우리 아들 본이에게
본이야, 안녕?
우리 본이에게 아빠가 처음으로 긴 편지를 써보는 것 같네.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종종 친구들끼리 손편지를 주고 받기도 했고, 엄마랑도 본이 낳기 전에는 가끔 기념일에 손으로 쓴 엽서나 편지를 서로 교환했었는데… 요즘엔 핸드폰으로 워낙 빠르게 메시지를 주고 받아서 인지, 아니면 너무 바쁘게 사는 삶 때문인지 이런 편지를 주고 받는게 참 어렵구나. 사람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건 속도나 편리함보다는 그 사람에게 쏟는 시간의 정도 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도 앞으로 살면서 가끔은 서로 편지를 주고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오늘 본이가 학교를 하루 쉬게 되어서, 아침부터 아빠 엄마랑 브런치도 먹으러 가고 저녁에 같이 동네 산책도 하고.. 아빠는 오늘 참 행복했단다. 그 행복은 단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본이가 건강하고 밝고 멋잇게 성장하고 있는 것을 곁에서 볼 수 있는 감사와 기쁨 때문인 것 같아. 미트볼이나 토스트처럼 아빠,엄마와 같이 맛잇는 것을 함께 먹을 수 있을 때, 디지털카메라로 마치 유튜버가 된 것처럼 신나게 너만의 영상을 촬영하고 있을 때, 색종이와 테이프로 종이 박스를 오리고 붙여가며 너만의 작은 세상을 만들고 있을 때, 카페 옆 잔디밭에서 아빠에게 지는 것이 싫어서 빠른 걸음으로 달려나갈 때에도 그때마다 본인의 웃음소리, 표정, 손과 발동작 하나하나가 아빠 눈에는 ‘기적’처럼 느껴진다.
기적은 무언가 요란스럽게 거대한 행운이 찾아오는 일이 아니라 시간에 기대어 켜켜이 쌓여진 일상의 순간에서 느껴지는 선물 같은 거라고 생각하거든. 7년 전에 태어난 본이는 아주 작고 너무 어려서 밥도 혼자 못 먹고 신발도 혼자 못 신고, 대소변도 혼자 가리지 못해서 모든 것을 엄마와 아빠가 도와주어야 했는데, 이제는 카메라를 한 손에 쥐고 본이 만의 스토리로 촬영을 하고, 영어로 몇몇의 노래를 부를 정도이니 이 얼마나 큰 기적이니. 항상 되풀이되는 날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이처럼 본이는 매일매일 주님의 은혜 가운데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었고 그 안에서 아빠와 엄마도 본이를 통해 더 부모다운 부모로 성숙해갈 수 있어서 참 감사해.
본이가 생각하는 ‘부모다운 부모’란 무엇일까? 이 다음에 본이가 커서, 어쩌면 스무살이 넘었을 때? 부모다운 부모에 대해서 답해 보라고 한다면, 우리 본이는 뭐라고 답할까?
아빠도 엄마도 지금으로선 부모다운 부모에 대해서 명확하게 정답을 말하긴 어려울 것 같아 (어쩌면 인생 끝까지 이 답을 찾아가는 과정 일 것도 같지만) 하지만 아빠는 최근에 나의 ‘옳음’을 자녀에게 강요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나이를 먹을수록 경험이 쌓이면서 삶의 많은 상황들에 대해 자신만의 관점이 생기거든.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상식’을 넘어 ‘고집’이 되면 나의 생각이 옳고, 그에 반하는 생각들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 다른 사람(가족 포함)을 위하는 척 나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지만, 실은 ‘내 생각이 정답이다’라고 생각하는 교만인지도 모르겠어.
사실 누구에게나 상황이 같지는 않고, 결과는 알 수 없는 것인데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옳음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게 되면 늘 관계가 상하게 된다. 그래서 아빠가 아무리 본이의 아빠여도 본이에게 아빠의 생각을 무조건 강요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하지만 종종 본이가 아직 어리고 세상을 잘 모른다는 생각에 아빠가 강하게 본이에게 이야기를 할 때가 있는 것 같아.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한번, 두번 말하면 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는 생각’, ‘아이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아빠 스스로 가지고 있는 생각과 편견이 종종 아빠를 사로잡아서 본이에게 짜증 섞인 큰소리를 내도록 만드는 것 같구나.
본이가 가끔 아빠랑 놀 때 ‘아빠, 힘 쓰지마’ 라고 이야기하는데 아빠는 몸에서, 그리고 목소리에서 힘을 빼는 법을 잘 몰랐던 사람이야. 항상 긴장한 상태로 몸에 잔뜩 힘을 주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에 익숙해져 있는 아빠는 어쩌면 그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고 착각한 것일지도 몰라. 사실 우리는 조금 더 느슨하게 힘을 빼고 있어야 하나님과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더 큰 승리와 평안함을 얻을 수 있는데 말이야.
본이야, 아빠는 이제부터 ‘힘을 빼는 연습’을 해보려고 해. 모든 상황에서 온 몸과 마음에 잔뜩 힘주고 있던 나를 좀 더 내려놓고 하나님에게 맡기는 연습을 해보려고 해. 아빠의 마음에 하나님이 더 자주, 그리고 편안하게 초대되실 수 있도록 세상과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배워보려고 해. 아빠는 ‘힘을 뺀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는데, 본이는 지금부터 알고 있으니 아빠보다 하나님과 친해지고 하나님을 통해 더 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아빠는 하나님이 본이를 지으신대로, 본이가 지음받은대로 살아가길 바란단다.
본이야, 아빠와 엄마는 본이의 삶을 늘 응원하고 기대해.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하나님이 본이를 지으신 목적을 발견하고, 그 분과의 관계 속에서 본이가 삶을 통해 이루어가는 소망을 기대하는 거란다. 네가 언제 어떠한 모습으로 있든 변함없이 아빠와 엄마는 본이를 사랑하고 응원할거야.
본이야, 아빠와 엄마의 아들로 우리에게 와주어서
아빠와 엄마가 이전보다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주어서
만만치 않은 하지만 살아볼 만한 이 삶을 우리가 가족으로서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고 감사하구나.
매 순간 삶의 신비와 기쁨, 주님의 은혜와 축복을 발견하며 풍성한 삶을 누리는 우리 이길.
2025년 4월 11일,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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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나를 일깨워주는,
나보다 큰 스승인 우리 아들 본이와의 약속을 다시 곱씹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