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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 안에서 '일머리'는 어떻게 얻어지는가

성장의 문은 언제나 모호함의 편에 열려있다.

by 브랜딩인가HR인가

주위를 둘러보면 유독 동료들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 있다. 복잡한 문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고, 여러 부서의 이해관계가 얽힌 어려운 과제를 던져줘도 어떻게든 방향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며 "참 일머리가 좋다"고 말한다. 그들의 일머리는 단순히 업무 속도가 빠르거나 지식이 많은 것과는 다른 차원의 능력처럼 보인다. 그것은 마치 정답 없는 문제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자신만의 해법을 찾아내는 단단한 근육과 같다. 그렇다면 그 근육은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리가 성숙해지는 과정은 모호함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확실성은 정체를 낳지만 모호함은 우리를 삶 속으로 더 깊이 끌어당긴다. 도전받지 않는 확신은 경직을 낳고, 경직은 퇴행을 낳는다. 그러나 모호함은 우리에게 발견의 문과 복잡성의 문을, 그리하여 성장의 문을 열어준다. 우리 문화의 건강함과 우리의 개인적인 여정의 방대함은 우리가 더 큰 삶을 위해 모호함을 용인하는 법을 배우는 데 달려 있다."
- 제임스 홀리스 (James Hollis)


조직에서 말하는 '일머리'는 바로 이 '모호함'을 다루는 능력과 직결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핵심을 파악하고, 복잡하게 얽힌 문제의 실타래를 풀어내며, 나아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이러한 일머리는 타고나는 재능이라기보다, 업무 경험의 깊이와 질을 통해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에 가깝다. 특히, '모호함'을 다루는 경험의 총량이 일머리의 수준을 결정한다.


우리가 조직에서 만나는 일은 크게 명확성(↔모호성)과 복잡성(↔단순성)의 두 축으로 나눌 수 있다. 이 네 가지 영역을 거치며 일머리가 어떻게 단련되는지 살펴보면 그 성장 과정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1. 명확하고 단순한 일: 규칙을 익히는 단계다.


이는 정해진 매뉴얼과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잘 닦인 길'과 같다. 주간 보고서 작성, 비용 처리 등 예측 가능한 업무가 이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는 주어진 과업을 실수 없이,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법을 배운다. 성실함과 꼼꼼함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조직의 기본적인 작동 원리와 규칙을 몸에 익히는, 일머리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다지는 시기다.


2. 명확하고 복잡한 일: 시스템을 이해하는 단계다.


목표는 명확하지만 그 과정이 여러 부서, 자원, 기술과 얽혀 있는 '지도가 주어진 미로'와 같다. 사내 시스템 도입 프로젝트처럼, 최종 목표는 정해져 있으나 수많은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계획에 따라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법, 즉 일의 전체적인 구조와 시스템을 파악하는 능력을 기른다. 체계적인 사고와 계획 능력, 협업 능력이 바로 이 과정에서 단련되며 일머리가 한 단계 확장된다.


3. 모호하고 단순한 일: 길을 탐색하는 단계다.


업무의 복잡도는 낮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가 정해지지 않은 '열린 오솔길'이다. 신규 아이디어를 내거나 초기 기획안을 구상하는 업무가 그렇다. 정답이 없기에 다양한 시도와 빠른 실패가 용납되고 권장된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막연함 속에서 작은 실마리를 찾아내고, 동료들과의 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방향을 구체화하는 법을 배운다. 이는 주어진 길을 걷는 것을 넘어, 스스로 길을 탐색하고 창조하는 일머리의 시작이다.


4. 모호하고 복잡한 일: 길을 창조하는 단계다.


목표도 불분명하고 과정마저 복잡하게 얽힌 '안갯속 미로'와 같다. 신사업 모델 개발이나 회사의 핵심 전략 수립과 같은 과업이 여기에 속한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가설을 세우고, 최소한의 자원으로 검증하며, 실패를 통해 배우고, 끊임없는 소통으로 동료들을 설득하며 나아가야 한다. 문제 해결을 넘어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불확실성을 견디며 팀을 이끄는 리더십, 현상 너머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이 요구된다. 진정한 의미의 '일머리'는 바로 이 극심한 모호함과 복잡성을 온몸으로 겪어내며 비로소 완성된다.


결론적으로 조직 안에서 '일머리'는 '확실성'의 영역을 벗어나 '모호함'의 세계로 얼마나 깊이 들어갔느냐에 따라 얻어진다. 명확하고 단순한 일을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절대 일머리를 가질 수 없다. 복잡한 시스템을 이해하고, 나아가 방향 없는 곳에서 길을 찾고, 결국 안갯속에서 새로운 길을 창조해 내는 경험이 쌓일 때, 우리는 비로소 '일 잘하는 사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성장의 문은 언제나 모호함의 편에 열려있다. 당신이 마주한 일이 막막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당신이 퇴보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니라, 일머리를 얻고 더 깊은 전문가의 세계로 들어서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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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인프런 온라인 라이브 세션에서 나눈 이야기의 핵심을 나눕니다. 더 깊은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세요. 복잡하고 막막한 일 앞에서 길을 찾는 법에 대한 저의 생각, 그리고 참가자들의 현실적인 커리어 질문과 답변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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