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기록하고 이렇게 글을 씁니다.
평소의 글을 쓰는 습관에 대한 생각
책을 출간하는 과정을 겪어보면 평소의 글을 모아놓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을 수 있다.
다른 저자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처음부터 주제나 제목을 정해놓고 글을 쓰진 않는다.
그때마다 경험한 대로 생각나는 대로 느끼는 대로 글을 쓰고, 글을 쓰다가도 연관되는 소재가 생각나면 그때마다 찾아서 붙이곤 한다. 시간이 지나 글이 더미를 이루어 쌓이면 각각의 글들을 관통하고 있는 본질적인 유사점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발견하게 된 생각을 다시 글로 옮겨본다.
글로 옮길 때 영감과 힌트를 주는 단어들은 틈틈이 짧은 템포로 기록해놓는다. 네이버 메모, 아이폰 메모, 에버노트나 노트북의 스티커에 그때마다 지나가는 생각들을 잡아둔 짧은 단어와 문장들이 흩어져있다.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단어와 문장들을 어느 날엔가 주섬주섬 주워 담고, 지나간 기억을 더듬고 의미를 곱씹어 보면 어쩌다가 생각하지 못한 좋은 문장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럴 때는 내가 문장을 써놓고도 '과연 내가 쓴 문장이 맞는가'하면서 잠시 자아도취에 빠지기도 한다.
이런 방식으로 네이버 블로그에,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옮기고 포스팅 된 글들 중 출간하고자 하는 책의 내용과 맥락상 잘 연결이 되겠다 싶은 몇몇은 다시 다듬고 보완하여 원고에 싣기도 한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을 만큼 내가 글을 잘 쓴다거나 문장력이 좋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싸이월드의 다이어리나 게시판에 짧은 글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된 나의 글쓰기는 지금까지 진행되어왔으니, 그래도 꾸준히는 써왔다고 할 수 있는데,
그건,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글을 쓰고 잠시 동안 느낄 수 있는 쾌감(?)때문이었다.
머리와 마음속에 떠다니는 복잡한 생각을 마치 작은 서랍장에 하나씩 차곡차곡 쌓어나가며 이어가는 나의 글쓰기는,
햇살 좋은 날 쭈글쭈글한 세탁물을 세탁줄에 하나하나 널어놓는 작업이고, 오랫동안 싱크대 안에 방치된 그릇을 퐁퐁으로 뽀득뽀득 닦아서 건조대에 올려놓는 작업이며, 바닥에 흘린 음료수 때문에 남아있는 자국을 물티슈 안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손톱으로 긁어내는 작업과 같았다.
부글부글 끓고 답답하고 쓸데없는 고민으로 가득했던 마음에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물이 가득 들어있는 주전자로 물을 부어, 나의 정신을 조금 더 명료하고 차분하게 만들어주는 활동이 글쓰기였다.
공부하는 태도를 다룬 고전 <공부하는 삶(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앙주 저)>에는 기록과 글쓰기에 영감을 주는 문장들이 있다. 이 문장들과 함께 평소의 글 쓰는 습관에 대한 생각을 아래와 같이 소개해본다.
우리의 목표는 스스로를 완성하는 것, 스스로 정신을 채우는 것, 앞으로 싸울 전투의 조건과 각자의 신체에 맞는 갑옷을 자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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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기록을 하고 글을 모아놓는 과정은
앞으로 싸울 전투의 조건에 맞는 신체를 만들어놓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올림픽에 참가할 선수가
시합 날을 염두하여 평소의 루틴을 만들고,
자신의 몸과 체력을 만들어놓는 것처럼
글과 말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록과 글쓰기로 근육과 체력을 만들어놓는다.
멋진 코트가 아니라 당신 몸에 맞는 코트를 구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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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코트, 브랜드 코트가 아니라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코트를 찾는다.
나의 생각에 가장 부합하는 글에 밑줄을 긋고,
해당 저자의 사유를 이어 받아
나의 고유한 사유로 연결될 수 있는 문장으로 옮겨 적어본다.
읽기가 정신의 양분이고, 기억이 인성의 일부가 되듯이 노트는 양분과 인성의 저장고다. 읽기, 기억, 노트는 모두 우리를 완성해야 하며, 따라서 우리를 닮아야 하고, 우리의 인성과 역할, 소명을 어느 정도 담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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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말, 내가 쓰는 글이 나의 인성을 나타낸다.
말과 글이 점점 나를 닮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 나의 말과 행동, 그리고 삶 자체가 내가 쓴 글과 일치해야 한다.
독자가 글을 읽었을 때 상상하는 저자의 이미지와 태도가 실제 저자의 모습이 다를 수 있겠으나,
적어도 나는 그 차이를 최소화하고 싶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추어 나의 모습을 가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원래의 고유한 나의 사고와 행동, 가치와 태도가 글에도 고스란히 드러나
실제로 얼굴을 대면하는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