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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기록 Jan 05. 2021

수도권 지하철노선도 예찬






내 방 벽에는 내 눈높이에 딱 좋은 위치에


수도권 지하철노선도가 붙어 있다.



요즘 같이 스마트한 시대에


종이 지하철 노선도 따윈 볼 일이 없다지만


벽시계가 없으면 답답한 것처럼


 지하철노선도가 없으면 답답하다.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


수첩에 지하철 노선도를 넣어 다니면서


지하철로 이동시 꺼내보며


가야 할 역까지의 환승 경로와


내려야 할 역까지 몇 정거장이 남았나


손가락으로 짚어보곤 했다.



지방에서 올라 온 나는


지하철노선도를 자주 꺼내 보면서


서울의 낯선 지리를 익혀 나갔다.



그 덕에 내가 가 보지 못한 지역이라도


역 이름만 대면 대략 어디쯤인지


머릿속에 지하철노선도가 펼쳐진다.


그래서 지금은 서울토박이 남편보다


서울 지리에 더 밝다.



그래도 누군가는 스마트폰이 날로 똑똑해지는데


종이 지하철노선도는 구식이지 않냐고 하지만


전화로 누군가와 약속장소를 정할 때


벽에 붙은 지하철노선도를 보면서


내가 타고 가야 할 지하철 경로와


상대방이 타고 와야 할 지하철까지


한 눈에 알 수 있어 약속장소 잡기가 수월하다.



내가 사는 동네도, 친구 동네도 아닌


제 3의 장소를 약속장소로 정할 때는


무척 편리하다.


서로간 거리가 멀어 중간에서


만나자고 할 때도 요긴하다.



처음 서울에 왔던 20년 전과 비교해서


지금은 지하철 노선이 아주 복잡해졌다.


십년이면 있던 산도 없어지고


없었던 강도 생기는데 


지하철 노선도의 변화는 실로 엄청나다.



서울의 겉모습이 어마어마한 변신을 하는 동안


땅속에서도 부지런히 길을 내고 있었다.


지하철은 그 도시 경제의 바로미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 도시를 지탱하는데


그 역할은 엄청난 것이다.



복잡한 미로 같은 지하철은


서울이라는 거대한 아름드리나무가 당당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도록


지탱하는 뿌리 같다.



혈관 같은 지하 레일과 신선한 혈액인 지하철,


그 안의 수 많은 승객들은 헤모글로빈.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서울을 이처럼 찬란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오늘도 지하철은 신선한 혈액을


수혈 받으며 막힘없이 돈다.



20년 전 낯선 서울 하늘 아래에서


나의 타향살이가 잘 뿌리 내릴 수 있도록


지하철 노선도는 이정표이자 안내자였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의 지하철 노선도 예찬에


남편은 액자에 고이 넣어서


걸어 놓으라며 한마디 보탠다.


남편은 이렇게나 멋이 없다.



이 글을 적고 또 적잖이 세월이 흘러

내 방 벽에도 내 가방에도

더이상 지하철노선도는 없다.

없던 지하철역이 생기고

있던 종이 노선도가 사라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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