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통역이 될까요‘
보는 내내 마지막은 결국 해피엔딩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편이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도, 드라마의 방영시간 내내 주인공의 갈등과 어긋남의 안타까움을 함께하는 시청자에게도 그 편이 마음의 안정을 주니까.
해피엔딩은 맞기는 하다. 하지만 예전 이야기들처럼 ‘그래서 둘은 사랑했고 결혼했고 같이 늙었고…’ 이런 끝이 아니어서 여운이 더 남았다.
서로의 마음이 맞닿은 그 행복함의 시간에 같이 있음에도, 주인공은 끝까지 자기를 놓지 않았다.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음도 아니고 사랑이 부족함도, 마음이 부족함도 아니었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도 사랑해 주는 사람이 나타났다며 자기 자신의 슬픔과 불안은 이제 아무 상관없다고 묵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힘으로 자기 자신을 탐구했다.
그 점이 기특하고 또 부러웠다.
내가 저 나이 청년이었을때 나도 저렇게 스스로 좀 더 오래, 잘 서 있으려 해 볼걸 하고.
여주인공은 이중인격도 정신분열증도 아니었다.
스스로 외면했던 자기 자신‘들’과의 통합의 과정이었다.
어릴 적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부모와 어른들도, 스스로 불안이라 생각했던 것들과도 조화하며 대화하며 풀어나갔다.
남주인공의 환경도 평범하지 않았던 점이 흥미로웠다.
겉으로는 안정되고 침착하고 훌륭해 보이는 사람도 과거의 실수를 외면하며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자유롭지 못했다.
남다른 가정환경을 등 돌려왔지만 결국은 마주하고 풀어나간다.
그 한 인간들의 과거의 나와 지금의 감정을 가진 나가 어른이라는 시간이 되면서까지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하나의 나로 통합하려 애쓰는 모습에 나를 투영했다.
누구나 다 자기 자신과 싸우고 화해하고 끌어안고 안아주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구나.
어른의 시간을 살고 있다고 해서 자기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안아주는 건 아니구나.
결국 하나의 내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 만들어가는 거구나.
나라의 말이 달라 연결해 주는 ‘통역’이라는 매개를 통해, 사람사이의 ’ 통역‘ 나 스스로와의 ’ 통역‘을 생각하게 한 드라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