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어린이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by 자애

김소영 작가가 어린이를 바라보는 어른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부모이기에, 선생이기에 아이를 지도, 안내, 훈육의 목적이 아니다. 어른이란 그저 어린아이보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나 세상에서 조금의 시간을 먼저 보낸 존재일 뿐, 아이에 대한 장악력이나 위압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때문에 아이를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어른들이 한 번쯤은 육아서적의 카테고리에서 벗어난 이 에세이를 접하면 새로운 마음의 울림이 있을 거라 생각된다. 내가 그랬다.


작가의 인사말부터 남다르다.

’ 어린 시절의 한 부분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을 아는 것이 저의 큰 영광입니다.‘

마치 노벨상을 수상한 위인에게 선사하는듯한 작가의 인사말을 그대로 나의 아이에게 소개해주었다. 아이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지 나를 꼬옥 안아준다.


어른이 볼 때에는, 아이는 신발 신는 것도 느리고, 선반 위에 있는 물건도 잘 찾지 못한다. 아이의 신체도 능력도 자라나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작은지, 지금의 순간에도 자라나는 중인지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다. 심지어 나조차도 나의 아이를 보면서 작고 작았던 아기였을 때에는 아기가 계속 아기일 것 만 같았고, 어린이인 지금 계속 어린아이 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 때는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나의 아이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고, 어린이가 아닌 때이다.


작가는 독서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을 가까이서 보면서 마치 나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해 준다.

진수성찬을 성수진찬이라고 말하고, 삐삐는 말괄량이를 말량광이로 (미치광이 느낌과 비슷하게) 말하기도 한다. 통일은 이루어져야 한다는 학교에서의 수업을 듣고, 왜 학교에서는 통일의 좋은 점만 가르쳐주는 건지, 통일을 이룰 때면 어린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정도일 텐데 그러면 어린이들의 의견을 물어봐야 하는 건 아닌지, 그러니까 공교육을 하는 학교에서는 통일의 안 좋은 점도 가르쳐주어야 하는 게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나의 아이가 보여주었던 어린이 특유의 말랑말랑 해지는 장면을 떠올려본다.

자주 갔던 목욕탕에서 마주친 할머니와 “몇 살이니? 예쁘네” 같은 간단한 스몰토크를 마치고

“이제 할머니 알았으니까 또 마주치면 모른 척하지 말고 아는 척해야 해~ 알았지?”

“우리 이제 아는 사이잖아요.”

이 말이 들렸던 주변의 어른들 모두 가만히 미소 지었다.

어린이들이 주는 브레이킹은 지금의 어른들의 것과는 다르고 참신한 데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게 신기하다.

어린이들만이 주는 순간이 있다.


이 책은 아이를 존중하는 어른의 이야기다.

아이를 인격체로 대하라, 아이는 우리의 미래다.라는 오래되어 의미도 잃어버린 식상한 말이 아니라, 지금의 요즘 어린이와 함께 살아가는 요즘 어른들이 아이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들려준다. 그 어떤 양육서적보다. 아이를 위한 부모의 자기 계발 서적보다 마음이 동했다.

작가는 ‘아이는 나라의 미래다’라는 오래된 말에도 아이에게 나라의 미래에 대한 짐을 짊어지워줄 것이 아니라, 나라의 오늘부터 어른들이 잘 짊어지자고 이야기한다. 어린이들에게 스치울 모든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는 따뜻함에 어린이와 함께 사는 나의 시선을 돌아본다.


‘유엔 아동 권리 협약 12조‘

”아동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어른들은 아동의 의견을 잘 듣고 중요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

이 책에서 처음 본 협약의 조약 내용을 내 마음에 선서처럼 새겨본다.




월요일 연재